★ 백인종 OK택시 기사(전 노스웨스트항공 영업이사)“몸에 밴 친절로 제2인생 질주”항공사 근무경험 1백% 활용 ‘보람’ … 택시문화 선도 의욕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본사를 둔 OK택시의 백인종(57) 기사는 노스웨스트항공 영업이사 출신이다. 대학졸업 후 대한항공 스튜어드로 입사, 사무장이 된 후 노스웨스트항공으로 옮겨 고속승진을 거듭했던 왕년의 루키. 세계 곳곳을 누비던 그가 서울 구석구석으로 손님을 나르는 택시기사로 변신했다.“지금은 택시기사 백인종입니다. 현재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운전이고, 특히 친절한 서비스에 자신 있으니 딱 맞는 직업을 고른 셈이지요.”온화한 인상의 백씨는 택시운전에 자신의 전문성을 접목시키고 있다. 노스웨스트항공 시절 홍콩에서 2개월간 서비스 트레이닝을 받고 돌아와 승무원 교육을 도맡았던 경험을 살려 ‘친절한 택시 서비스’를 실천하고 있는 것. 고객을 직접 대하는 대중교통이라는 점에서 비행기나 택시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재취업 번번히 실패 ‘쓰라린 경험’도백씨는 지난 97년말 노스웨스트항공이 아시아권 노선을 대폭 축소하는 과정에서 명예퇴직했다. 3분의 2에 달하는 직원을 감축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이었다. 이후 컴퓨터를 배우면서 일식조리사 자격까지 취득했지만 재취업은 그림의 떡이었다.퇴직금을 밑천삼아 창업도 해 보았다. 하지만 1년간 운영하면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결국 정리하고 말았다.“작더라도 보람있는 일을 하며 고정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던중 택시운전이 떠올랐습니다. 17년 운전경력을 살리면서 여러 사람과 만날 수 있고, 서울지리를 꿸 수 있는 기회도 되니 좋겠다 싶었죠. 무엇보다 항공사 경험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냈습니다.”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택시운전사 자격시험을 치르기까지 수차례 망설였다. 하지만 합격을 하고 택시회사에 입사하고 나니 주변 친구들은 “어려운 결정을 했다”며 격려했다. 장성한 1남1녀도 “훌륭한 기사님이 되시라”며 환영했다.백씨는 외국인 손님 응대에 관심이 많다. 일어와 영어실력을 기반으로 ‘친절한 한국 택시’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또 합승이나 교통법규 위반에 절대 반대한다. 원칙대로, 친절하게 안전운전하는 것이 수입을 늘리는 것 보다 몇 배 중요하다고 믿는 까닭이다.물론 어려운 점도 있다. 1주일 단위로 돌아오는 밤 근무는 정신적 피로를 쌓이게 한다. 밤새 만취한 손님을 상대하다 보니 ‘요지경 세상’을 실감하는 때가 많다고.“지금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이전에 무슨 일을 했건, 현재 하는 일에서 만족을 찾는 것이 현명한 세상살이죠. 앞으로 1년간 더 해 본 후 진로를 결정할 겁니다. 택시 서비스가 한단계 높아지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만.”백씨가 몸담고 있는 OK택시는 업계에서 ‘친절택시’로 소문난 곳. 택시기사들을 상대로 본격적인 친절 서비스 교육을 해보고 싶다는게 또다른 희망이다.★ 심언구·강주영 한네트-ims 자동차정비사(한국통신 명예퇴직자)정비공부 구슬땀 ‘당당한 변신’기름때 묻히면 어떠랴 당찬 각오, 명퇴 2년여만에 ‘내사업’ 일궈“자동차가 고장나면 공장에 맡길 줄이나 알았지, 직접 정비하게 될 줄은 몰랐죠. 퇴직할 때는 앞이 깜깜하더니 요즘은 자동차에서 장미빛 비전을 봅니다.”한국통신에서 명예퇴직한지 2년 남짓만에 자동차정비사로 변신한 심언구(50, 사진 오른쪽)·강주영(57)씨. 이들은 눈이 많이 내린 지난 1월8일 아침, 옛 동료들이 근무하고 있는 서울 양천구 신정동 한국통신 주차장에서 무료 정비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젊은 후배가 “선배님, 이거 미안해서 안됩니다”며 만류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료 서비스 받아보고 괜찮으면 계속 이용하게”라며 명함을 쥐어주었다.두 사람은 자동차정비가 임무지만 각각 대표이사, 이사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한국통신 퇴직자 지원단체인 ‘KT그린플랜지원센터’에서 창업 컨설팅을 한 자동차정비 및 유통회사 ‘한네트-ims’의 기둥들이기 때문. 이 회사는 두 사람을 포함, 3명의 주주가 각각 2천~4천만원을 출자해 만든 ‘1백% 종업원지주회사’다. 정비기기 회사와 건설회사에서 현물투자를 받아 번듯한 정비공장도 운영중이다.대표이사인 심언구씨는 30년간 한국통신에서 재직하다 99년6월 명예퇴직했다. 처음엔 퇴직자 대부분이 그렇듯 창업을 고려했지만 경험이 없던 터라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마침 지원센터에서 사업설계를 끝낸 자동차정비사업을 접하고 참여를 결심했다.재기성공 부러운 시선 ‘뿌듯’27년 동안 전화케이블 수리사원으로 일했던 강주영씨는 99년1월 퇴직한 후 우여곡절 끝에 합류했다. 믿었던 이웃에게 사기를 당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화장품 판매에 나섰는가 하면, 15년전 따 놓았던 자격증으로 시작한 부동산중개업소를 6개월만에 그만둔 경력도 있다. 계속된 실패 탓에 합류가 조심스러웠지만 밝은 미래에 희망을 걸고 참여했다고.“명퇴 후 ‘불쌍하다’ ‘안됐다’고 하던 시선이 ‘부럽다’로 바뀌었습니다. 먼저 세상으로 나가 안정된 기반을 닦고 있다는 의미지요. 자동차정비사업에 관심있는 후배들에게는 문을 활짝 열 생각입니다. 앞으로 확장해야 할 사업이 많거든요.”두 사람은 올해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을 취득, 완벽한 정비사로 다시 태어날 계획이다. 이미 필기시험은 합격한 상태. 더불어 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 정비시스템과 자동차 유통사업 진출 계획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2년내에 전국 규모의 자동차 정비체인 및 유통업체로 키운다는게 이들의 목표다.★ 안옥분·정선옥 인덕노인복지회관 간호사(전 서울시 간호직공무원)나누는 삶 통해 퇴직아픔 ‘훌훌’“보건소 근무 노하우 봉사로 펼치자” 치매노인 도우미 자청안옥분(64, 사진 오른쪽)·정선옥(64)씨는 38년동안 서울시 간호직 공무원으로 일한 단짝이다. 안옥분씨는 퇴직 전 서울시립 서대문병원에서 일했고 정선옥씨는 서울시내 보건소에서 정년을 맞았다. 동갑 나이에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해 온 이들은 각별한 우애로 퇴직 후에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언젠가 정년이 올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기분이 들더군요.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체력과 열정이 있는데 나가라니, 무척 섭섭한 마음이었어요. 집에 가만히 있다간 없던 병도 걸릴 것 같아 우리 손이 필요한 곳이 없나 찾아나선 겁니다.”98년6월 나란히 정년퇴직한 두 사람은 채 한 달도 집에서 쉬지 못했다. 쾌활한 말투에서 엿보이듯 수십년 해 온 일을 금세 접을 느긋한 성격이 아니다. 결국 후배가 소개한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의 치매노인수용시설 인덕노인복지회관에서 ‘노인의 친구’ 역할을 자청했다. 환자에 비해 간호인력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99년2월, 인근에 시립 은평노인종합복지관이 문을 열자 두 사람은 더 분주해졌다. 이곳에 설치된 진료실에서도 정기 의료진료 서비스를 시작해 간호사를 필요로 했기 때문. 요즘은 매주 화요일, 금요일에 의사가 방문할 때 진료를 도와주고 나머지 날은 인덕복지회관에서 보내고 있다.두 간호사가 헌신적으로 봉사하자 두 기관에서는 ‘교통비’ 명목으로 작은 사례를 하고자 했다.하지만 이들은 “돈을 준다면 일을 하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절했다고. 은평노인종합복지관 고재욱 부장은 “얼마 안되는 교통비 가운데 절반 정도를 후원금으로 내는데도 미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두 사람은 틈날 때마다 간호사 후배와 퇴직자들에게 봉사활동을 해 보라고 권한다. 하지만 흔쾌히 받아들이는 이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쉽게 시작했다가 쉽게 그만두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 사명감이 없으면 오래 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일하는 즐거움과 봉사하는 보람으로 퇴직 이후 삶을 꾸리는 것도 아주 훌륭한 은퇴 프로젝트예요.”★ 안세훈 연세암센터 호스피스(전 쿠웨이트 대사)“암 환자 돌보며 새삶에 감사”간암투병 후 자원봉사 결심 … 왕복 3시간 거리도 마다안해나지막한 목소리와 따뜻한 눈빛. 신촌세브란스병원 암병동에서 말기암 환자와 여생을 함께하는 호스피스 안세훈(67)씨는 예전부터 그 자리에 있은 듯한 모습이다.“이 병원에서 간암 수술을 받고 회복된 후부터 남은 삶은 ‘덤’이라 여기기로 했지요. 처음엔 병원 접수 창구에서 안내 일이라도 도울 참이었지만 같은 처지였던 암환자들을 직접 돕는 것이 낫겠다 싶어 호스피스로 생각을 바꿨습니다.”안씨는 쿠웨이트 대사와 시드니 총영사 등을 거친 고위 외교관 출신. 한때는 야심만만한 정치 지망생이었고 92년 외무부에서 퇴직한 뒤에는 극동방송 부사장으로 일하기도 했다.95년의 간암 수술은 그에겐 인생의 전환계기였다. 30여년의 외교관 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와 음주가 간암으로 발전, 목숨을 위협했던 그때 ‘다시 살게 된다면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수술후 회복이 순조로웠고 의사가 활동을 허락한 99년9월부터는 3개월 동안 호스피스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1월부터 암병동 호스피스를 시작,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안씨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까지 암병동 곳곳을 누빈다. 과천에서 세브란스병원까지 왕복 3시간 거리를 지하철로 다니고 있다. 최근엔 호스피스사무실에서 관직 경험이 있는 그에게 행정업무를 도와달라고 요청해 더욱 바빠졌다. 자선음악회나 소식지 편집 같은 ‘과외 활동’도 열심이다.남성 호스피스 부족 … 자원봉사 늘어야안씨는 호스피스를 비롯한 자원봉사제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연세대 총장과 병원장을 수시로 만나 다양한 ‘로비’를 벌이는 것도 중요한 임무로 생각한다. 호스피스와 도움의 손길을 받는 환자가 늘어나려면 병원측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선진국의 판단 기준은 자원봉사가 얼마나 확대돼 있는가입니다. 특히 생활의 여유가 있는 연금생활자들이 봉사를 ‘생활’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미미한 수준이죠. 미국에선 은퇴한 교장선생님이 스쿨버스를 운전하는 걸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봉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지요.”안씨는 지난해 45명의 환자를 떠나보냈다. 임종 2~3개월 전에 만나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보살핀 사람들이다. 하지만 수많은 암환자들이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호스피스가 거의 여성들이라는 점도 부끄러워한다. “남성 퇴직자들이 봉사활동에 참여, 행복하고 아름다운 노년을 보냈으면”하는게 그의 소망이다.★ 안원길·윤석면 서울 송파 ‘호랑이 할아버지’ (건설업체 퇴직자)동네 파수꾼 … 노년기 ‘활력’골목환경 개선 등 비지땀, 주민·행정기관 가교역할 ‘톡톡’서울 송파구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아침마다 ‘호랑이 할아버지’들이 동네 골목 곳곳으로 나가 온갖 일에 훈수를 두는 모습이다. 쓰레기를 몰래 버린 사람, 주·정차 규칙을 위반한 사람, 불량스런 청소년들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호랑이 할아버지에게 걸리면 어김없이 쓴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안원길(60, 66쪽 사진 오른쪽)·윤석면(67)씨는 송파구 가락본동 소속 ‘호랑이 할아버지’다. 지난해 8월부터 활동을 시작해 동네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들은 아침 8시에 만나 20ℓ 쓰레기 봉투와 집게를 들고 2시간 동안 뒷골목 구석구석을 누빈다. 하수도가 막힌 곳은 없나, 간밤에 보안등이 깨지진 않았나 이리저리 시선을 주다보면 오전이 훌쩍 지나간다. 그야말로 ‘동네 파수꾼’인 셈.“30년 이상 한 동네에 살다보니 골목 모든 곳이 내 집 마당 같습니다. 내 집을 깨끗하게 하는 마음으로 매일 골목에 나서지요. 우리가 활동하기 시작한 뒤로 동네가 환해졌다는 이야길 들을 때 가장 기분 좋습니다.”내 집같은 골목 청소 … 주민들도 호응호랑이 할아버지는 송파구에서 만든 자원봉사조직이다. 60세 이상 노인 3백86명이 관내 28개 동에 흩어져 활동 중이다. 옛날 동네를 거닐며 ‘어른’ 역할을 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현대판으로 재현, 좋은 평을 받고 있다.안원길씨는 젊은시절 중동 등에서 일한 건설맨 출신. 지난 86년 담석과 대장에 이상이 와 큰 수술을 받으면서 남보다 일찍 은퇴했다. 이후 윤석면씨와 함께 새마을지도자협의회에 몸담으면서 폐식용유로 비누를 만들어 재활용품과 교환해 주는 등 봉사에 나섰다.“처음엔 ‘당신들이 뭔데 참견하느냐’, ‘환경미화원 아니냐’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미리 나와 청소를 하고 따뜻한 차를 내오는 사람도 많아졌어요.”동사무소 입장에선 호랑이 할아버지들이 보배나 다름없다. 골목 환경을 개선하는 이들의 역할이 주민들의 자발적인 행정 참여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 문홍범 가락본동장은 “행정력이 미치기 힘든 뒷골목 세세한 부분까지 체크해 주민과 행정기관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이들은 하루 3천원의 ‘보수’를 받고 있다. 하지만 돈보다는 봉사하면서 얻는 보람과 만족이 훨씬 크다. 이들의 활약으로 가락본동은 송파구 호랑이 할아버지 가운데 1위 평가를 받았다.★ 서창진 답사가이드 겸 현대자동차 딜러(전 중학교 국어교사)“보람·수입 한번에 … 신바람”두직업 찰떡궁합 …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서창진(49)씨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활발한 표정과 몸짓으로 나타났다. 능숙한 솜씨로 몰고온 7인승 지프형 승용차도 몸에 잘 맞는 옷처럼 어울렸다. 여느 아줌마와 좀 달라보인다. 서씨는 지난해부터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이다.지난해 2월, 서울 송파 오륜중학교에서 25년간의 국어교사 생활을 마감했다. 정년은 몇 년 남아 있었고 교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으나 너무 달라져버린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냥 정년 때까지 버틸수도 있었지만 타성에 젖어 교단에 서느니 차라리 떠나는게 낫다고 생각했다.새로운 직업을 갖기 위해 열심히 이곳 저곳 기웃거리던 중, 자동차 딜러를 해 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평소 차에 관심이 많았지만 막상 뛰어들려고 하니 망설여졌다. 자녀들도 교사라는 점잖은 직업을 갖고 있던 엄마가 차를 팔러 다니는 ‘불명예스러운’일을 하겠다고 하니 반기지 않았다.학교를 그만둘 무렵의 결심이 떠올랐다. “교사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해 보기로 마음먹지 않았던가. 게다가 사람 만나는 것과 차를 워낙 좋아하니 잘 할 수 있을 것이다.”결단은 내렸지만 처음부터 모든게 어려웠다. 하지만 영업을 할 바에야 영업의 달인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나도 당신들처럼 진짜 영업을 해 봤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당당해져야겠다고 생각, 몸사리지 않고 덤볐다. 경력은 채 6개월이 안되지만 이제까지 모두 25대를 팔았다. 점차 이력이 붙기 시작한 요즘엔 그간 공들인 노력의 결과가 슬슬 나타나 판매에 가속이 붙고 있다.“특별한 제2인생 찾자” 정신재무장 하기도서씨는 직업이 또 하나 있다. ‘역사탐방연구회(www.hiskorea.org)’라는 답사여행 전문 단체의 문화유적답사 가이드. 딜러 일이 즐겁긴 했지만 지적 호기심같은 욕구는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역사탐방연구회 문을 두드렸다. 여기서 양성과정을 이수하고, 지난해 6월부터 답사 가이드로 일하고 있다.교사로 재직중일 때부터 문화 유산과 여행에 관심이 많아 마음 맞는 동료끼리 모임을 만들어 공부도 하고 함께 답사도 다녔었다. 지방도로와 비포장도로로 다니기를 좋아하고, PC통신 동호회 ‘오프로드’ 에 가입해 활동할 정도로 여행 마니아이던 취미를 십분 활용한 것이다.주로 역사탐방연구회가 주선하는 중고등학생들의 단체 답사와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로 형성되는 소그룹의 답사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다. 답사 여행이 대중화되지는 않아서 일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달에 두세 차례는 가이드로 나선다.서씨는 좋은 가이드가 되기 위해 매주 정기적으로 역사 스터디 모임도 갖고 있다. 가이드와 딜러로 일해 한 달에 벌어들이는 수입은 평균 2백여만원.서씨는 두 개의 직업이 찰떡궁합이라고 생각한다. 답사는 자동차 여행이 대부분이라 차와 길에 대한 지식이 큰 도움이 되고, 여행으로 알게 된 사람들에게 차를 팔 기회도 생긴다.“예전에는 경제에 무지했어요.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니까 크게 낭비만 안하고 살면 됐죠. 지금은 경제 감각도 생기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고, 보람도 있어서 더할나위 없이 좋습니다.”★ 황하림 평촌 경남아파트 관리소장(전 현대중공업 이사)“젊음 유지엔 일이 최고예요”10여년전 노후대비용 자격증 취득, 퇴직후 재취업 성공경기도 평촌 무궁화마을 경남아파트 관리소장 황하림(63)씨는 4년 경력의 주택관리사다. 학력 및 경력만을 놓고볼 때 주택관리사로서는 ‘최고’에 속한다. 서울대 상대를 나왔고 현대중공업에서 12년을 근무, 이사로 퇴직했다.퇴직 무렵이던 90년3월 노후대비용으로 주택관리사보 자격증을 취득해 뒀다. 주택관리사 시험은 기업에서 근무할 때 항상 접했던 회계·세법 등에 관련된 내용이 많아 공부가 수월했다. 퇴직 후 한 중소기업에 이사 자리가 생겨, 7년 더 이 기업에서 일했다. 그리고는 인천시 부평의 1천5백세대 대형 아파트단지에 관리소장으로 취직, 주택관리사 일을 시작했다.조직문화 낯설어 처음엔 마음고생도월수입은 2백50여만원으로 괜찮은 편이다. 황씨가 자격증을 취득했을 때는 사정이 나았지만, 요즘에는 자격증 취득 인원 2만명에 비해 관리사무소는 8천여개밖에 되지 않아 자격증이 있어도 바로 취업하기가 어렵다. 원만한 대인관계와 통솔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너무 젊은 사람보다는 사회 경험이 많은 사람이 선호되는 편이다.공동재산 관리와 유지, 관리비 징수 운영을 비롯해 주민들의 모든 생활 편의를 책임지는 것이 아파트 관리소장의 업무다. 주민 생활의 모든 편의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하려고 들면 한이 없다.주민들에게 쾌적한 주거환경을 만들어 주고, 그래서 그들이 만족해할 때는 보람도 크다. 하지만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얼굴 붉히고 자존심 상하는 일도 가끔 있다.대기업에서만 오래 일했던 그에겐 조직 문화가 워낙 달라서 처음엔 적응이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경력 4년째로 접어드는 지금은 이력이 붙어 원만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글쎄, 이젠 쉴 만한 나이가 됐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하지. 그래도 아직 일 할 수 있는데 쉬면 좀 뭐하지 않냐. 친구들은 거의 다 집에 노는데 그러면 금방 늙더라고.”쑥스럽다며 한사코 이름 밝히지 않기를 부탁했다. 하림은 그의 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