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네트워크 구축, 해외진출 모색 … 회계 투명성 제고 위한 제도개선 시급

먼저 삼일회계법인의 창립 3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감회가 새로울텐데요.그렇습니다. 처음 문을 연 3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회계나 감사기준이 미비한데다 수준도 낮았습니다. 난립한 수많은 회계사무소들이 세금을 적게 내려고 개인이나 합동 등의 간판을 내걸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대형화 전문화 조직화 국제화가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법인으로 시작해 30여년을 버텨왔습니다. 이제 30년이 지난 지금 아직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한국적 회계기법의 토양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선진국 대형 회계법인들과 동등한 위치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봅니다.현대건설이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얼마 전에 현대건설의 감사자료를 발표하시고 대손처리를 주장하셨습니다. 현대건설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사실 이번 현대건설에 대한 감사는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엄하게 했습니다. 공기지연에 따른 잠재손실 등과 같은 미래손실까지 모두 반영한데다 공사현장도 수십차례 직접 다닐 정도로 정밀하게 감사했습니다. 때문에 현대건설에서 서운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엄격하게 했습니다.현대건설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하나이며 우리 나라 건설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국가경제에서 막중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건설업은 다이내믹한 업종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일단 궤도에 오르면 수익 창출이 쉽고 규모도 큽니다. 따라서 출자전환 등의 방법을 통해 정상화시키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회계업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과거와 같지 않고 회계의 투명성과 선진화에 대한 요구도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회계업계나 회계사들이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회계사로 첫 발을 내디딜 때부터 자신에게는 물론 동료 후배들에게 직업윤리에 대해 누누이 강조하고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올바르게 일을 처리한다는 명성을 얻으면 장기적으로 득이 된다고 생각했죠.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투명한 회계감사를 위한 노력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밖에 내놓고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고 자랑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계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죠. 저희 삼일도 인사이동이나 업무개선 지침 등을 통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계사들의 의식과 자세를 가다듬는 일 못지 않게 제도적인 장치와 구조를 만드는 일도 중요합니다.그런 점에서 회계관련 기준이나 법률의 개정 등과 필요한 사항은 없습니까.잘 지적하셨습니다. 회계의 불투명성을 이야기하면서 회계사들을 비난하지만 사실 대부분 합법적인 불투명성이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회계기준은 국제기준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적용기준이 제각각이었습니다.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 분류만 해도 몇 년 사이에 적용기준이 몇 번 바뀌면서 일부 은행들은 결산시 조단위의 차이가 났습니다. 이는 정부의 정책이 바뀌면서 나타난 것이지 회계사들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이로 인해 회계사회가 비난받고 힘들었습니다.IT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혁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는지요.IMF는 우리에게 충격과 함께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전파했습니다. 회계업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새로운 기법과 지표의 개발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IT혁명에 따른 방향전환으로 이어집니다. 회계사들은 대차대조표 상에 나타나지 않는 기업가치를 분석하고 평가하며 예측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특별한 자산도 없고 영업능력도 미미하며 인원도 기껏해야 수십명 안팎에 불과한 닷컴기업들이 전통의 재래기업들의 주식보다 수십배씩 높게 거래되는 현상은 새로운 해석의 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준비해야 합니다.인포마인을 코스닥에 등록시킨데 이어 최근에는 벤처인큐베이팅, 섬유B2B 진출 등 첨단산업으로 활발히 진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그렇습니다. 삼일은 지난 99년 설립한 삼일회계법인 e비즈니스센터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개발한 중소기업을 지원했습니다. 창업에서부터 이들의 1차 목표인 코스닥 상장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10년 전부터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출혈을 감내하면서 투자해온 결실이 막 이뤄지는 시점입니다. 특히 삼일이 공들여온 e-web21, ecomtextile.com 등의 벤처기업은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이러한 IT업종으로의 본격 진출은 회계서비스라는 본업으로서의 새로운 시장창출과 기술환경변화에 따른 회계기법의 발전, 경영컨설팅의 확대 등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 급격히 발전하는 IT산업환경에서 타 기업의 모델이 될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첨단 IT업종에 직간접적으로 꾸준히 참여할 것입니다.삼일회계법인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삼일이라는 이름에는 회계법인의 세 가지 업무영역인 회계감사, 세무, 경영자문의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자는 뜻이 있습니다. 지금 그 목표는 어지간히 달성됐다고 생각합니다. 삼일은 소속 회계사들의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소속 회계사 1천3백여명 중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만도 3백60명이 넘습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괄목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자부합니다.다만 일찍이 기업이 발달하고 그에 따라 회계기법이 고도화된 선진국에 비해 아직 규모가 크게 작습니다. 대형화가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인회계사의 능력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삼일은 1999년부터 소속 공인회계사 숫자를 3천명으로 늘리는 ‘삼일삼천(三逸三千)플랜’을 추진중입니다. 이 목표가 달성되면 우리가 목표하는 국제 네트워크화의 토대가 마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국제네트워크는 해외 진출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중국 진출을 시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7∼8년 전부터 고구려의 옛 땅이라 할 수 있는 동북 3성, 즉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에 있는 회계사사무소 등과 상호 협력하면서 정보교류를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본격적으로 직접 진출하는 것은 때가 이르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30여년간 삼일회계법인을 정상으로 이끌어오면서 나름대로 가진 경영철학도 있을텐데요.윤석철 교수의 <경영학적 사고의 틀 designtimesp=20904>이라는 저서에서 ‘우회축적’이라는 교훈을 얻어 이를 적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어느 조직이 장기적인 시간 위에서 발휘할 수 있는 큰 힘의 원천은 우회를 통한 힘의 축적에 있다는 원리입니다. 삼일의 전신인 기아합동회계사 시절 전직원의 해외 연수를 조건으로 내건 회사합병이나, 직원들의 해외연수를 적극적으로 실시해 많은 미국 회계사를 배출한 것이나 모두 우회축적의 정신으로 시도한 일들입니다. 덕분에 매년 20%씩 조직이 성장했으며 이를 다시 삼일의 인재들에게 재투자했습니다. 그 결과 삼일이 최고·최대의 회계법인이 됐다고 생각합니다.약력서태식회장은 1938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고를 졸업하고 58년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61년 계리사(지금의 공인회계사)시험에 합격했으며 졸업후 64년 삼일회계법인의 전신인 기아합동회계사무소를 설립했다. 70년 선진회계기법 도입을 목표로 외국사와 합병했다가 71년 경영권을 회수해 당시 회계법인 ‘빅8’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 소유 회계법인이 됐으며 77년에 지금의 삼일회계법인으로 이름을 바꿨다. 87년에는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89년에는 CAPA(아태지역 공인회계사연맹) 회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주량은 맥주 1병이며 취미생활로 ‘상당한 실력’으로 소문난 스키와 음악감상을 즐긴다. 최근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 designtimesp=20911>를 탐독중이며 가족은 부인 이경씨와 1남3녀가 있다.Profile in Mirror소탈한 우직스러움과 은근한 끈기. 인터뷰 내내 서태식 회장이 풍긴 분위기다. 샤프한 인상을 가진 스테레오 타입의 회계사가 아니다. 말을 건네기가 조심스러운 경영자 타입은 더더욱 아니다. 30여년간 회계감사의 ‘정도’만을 고집해온 점을 “곰처럼 미련했다”고 스스럼없이 표현할 정도로 격의가 없다. 때문에 수차례 손해를 보기도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사소한 이익을 탐하지 않는 회계사. 그런 고집스러움과 소탈함이 서회장을 회계사회에서 존경하는 선배로 서슴없이 맨 앞에 꼽도록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유난히 인재를 강조하는 것도 서회장의 우직스러운 경영스타일이 어떤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사람이 재산’이라는 생각에 장기적으로 인재확보와 양성에 전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지금 다른 어느 회계법인보다 많은 회계사들이 함께 일하며 그들에 대한 서회장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삼일의 저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정리·변성수 기자 sasha@kbizweek.com사진·황선민기자 hsm8844@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