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후 즉석간담회 개최… 동류의식 높이는 기회로 활용

일하는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파베르(Home Faber)라는 말이 있다. 일이나 노동을 한다는 것이 인간을 특징짓는 기본적인 속성 중의 하나임을 지적하는 단어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일을 부담스러워한다.일에서 의미를 찾기 전에 지치고 피곤함을 느껴 무너져 버린다. 일찍이 마르크스가 주장했듯 노동으로부터 인간이 소외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일에 의미를 찾지 못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지도 모른다.그러나 일하기 훌륭한 기업(Great Workplace)들은 다양한 제도와 관행을 통해 노동으로부터의 소외가 보완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한두 가지의 제도나 관행으로 훌륭한 일터(Great Workplace)가 되지 않지만 그 같은 제도와 관행이 덩어리가 돼 일관된 가치체계를 반영하고 문화로 정착될 때 일하기 훌륭한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글로벌스포츠(대표이사 조용노)가 실시하고 있는 ‘수요 마라톤’ 제도는 하나의 이벤트를 업무현장과 밀접하게 연결시켜 일하는 재미와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높이는 프로그램이 되고 있다. 글로벌스포츠는 뉴밸런스, 버켄스탁, 리프 등 유명 브랜드의 스포츠용품을 판매하는 유통회사다.회사의 직원들은 매주 수요일이 되면 운동화를 신고 출근한다. 업무가 끝나는 오후 5시가 되면 전직원이 참여하는 수요 마라톤이 열리기 때문이다. 거리는 8~10㎞ 정도로 단축마라톤이다. 참가가 강제되지는 않는다.그러나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건강을 생각해 대부분 참가한다. 코스와 거리는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 기획부서에서 정한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난 후에는 즉석 간담회로 연결된다. 남녀, 상하, 부서의 차이를 뛰어넘어 모두가 ‘외로운’ 마라토너의 순간을 거쳐 조성된 자리이기에 오가는 대화에는 거침이 없다.마케팅부의 이민희씨는 “처음에는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수요 마라톤 모임 이후로 한 주가 가볍게 지나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숨이 턱에 차오를 만큼 뛰고 있자면 어렵게만 느껴지던 상사가 달리기 친구로 느껴진다”고 말한다.회사의 수요 마라톤은 신제품 출시에 앞선 품평회의 일환으로도 활용된다. 뉴밸런스를 비롯한 신제품의 출시를 앞두고 있을 때는 임직원이 직접 샘플제품을 체험, 소비자의 입장에서 제품을 따져보는 것이다.꽉 막힌 회의실을 벗어나 직접 마라토너가 돼 제품을 경험함으로써 살아 있는 아이디어가 등장한다. 당초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효과는 컸다. 최근 이 회사의 히트상품이었던 뉴밸런스 러닝화 시리즈도 마찬가지 과정을 통해 출시됐으며 사전에 사용해 본 임직원은 소비자에게 좀더 피부에 와닿는 구매결정의 코멘트를 해줄 수 있었다.이미 1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수요 마라톤의 전통은 조용노 사장의 마라톤에 대한 남다른 애착에서 비롯됐다. 마라톤애호가이기도 한 그는 어렵게 결승점을 향해 달릴 때만큼 사람이 겸허해지고 솔직해지기는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때문에 임직원 모두가 그 같은 순간을 맛보고 그 연장에서 의견교환의 자리를 가질 때 속내를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회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글로벌스포츠는 뉴밸런스의 이름으로 지난해 6개의 마라톤대회를 후원했다. 또한 자체적으로 ‘러닝스쿨’이라는 동호회를 운영, 러닝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체계화된 러닝교육을 제공하고 있다.마라톤 코치, 정형외과 전문의, 전문영양학자들이 초빙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호주의 족부의학전문가를 세미나 강사로 초빙했다. 달리기를 할 때 발에 미치는 영향이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며, 때문에 동호회원 정도로 달리기 애호가인 사람들에게는 스스로에게 맞는 러닝화가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충분히 전달됐다. 임직원은 이 같은 전문가 과정에 수혜자가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각자가 한 사람의 러닝전문가로 육성되고 있다.마케팅팀의 김동렬 과장은 “수요일 마라톤 모임과 같이 틀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회의 문화를 통해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사고방식과 트렌드를 배워나가고 있다”며 “단순한 직원 복지 프로그램 이상의 효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엘테크의 브레인스토밍글로벌스포츠의 수요 마라톤 대회는 어렵지 않게 생각해낼 수 있는 하나의 이벤트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이벤트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 ‘겉치레만 신경 쓰는 이벤트성으로…’와 같은 좋지 못한 의미의 형용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벤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포천 100대 기업’ 중에서도 펀(Fun)경영으로 유명한 사우스웨스트항공의 경우 경영현장이 수많은 이벤트들로 꽉 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비행기 안에서 생일을 맞은 승객의 축하 이벤트까지 할 정도다. 결국 이벤트의 문제는 일과성으로, 생색만 내기에 바쁜 행사가 된다는 데 있다.수요 마라톤의 경우 회사가 지향하는 열린 회의문화로 이어지는 정례화된 이벤트라는 점에서 남다른 면을 갖고 있다. 열린 회의가 된다는 것은 장소의 문제는 아니다. 야외에서 한다고 열린 회의가 되고 건물 안에서 한다고 닫힌 회의가 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얼마나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렴할 태세를 갖췄는가 하는 점이다.이런 면에서 마라톤이라는 과정은 열린 회의로 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극기 과정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참가자들은 외롭게 한계를 넘어온, 동등한 사람으로 거듭나 회의에 임하게 된다.열린 회의를 위한 정례화된 행사문화로써 수요 마라톤은 분명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라톤을 마친 참가자들의 심리상황이 열린 회의를 위해 좀더 긍정적일 것이란 얘기다. 물론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행사 직후가 아닌 일상의 경영현장에서도 열린 대화를 소중히 여기는 구성원들의 인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나 관행들의 정착이다.하나의 이벤트로 볼 수도 있지만 수요 마라톤은 신뢰경영(도표참조)의 측면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갖는다. 제품을 기획하고 세일즈하고 홍보하는 회사의 구성원에게 수요 마라톤은 마라톤 이상으로 업무의 연장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그 업무의 연장이 마라톤이라는 형태를 띰으로써 더욱 재미(Fun)적인 요소를 담게 된다. 나아가 자부심을 위해서도 긍정적인 제도다. 모두가 덧씌워진 직급의 상하관계를 벗어던지고 똑같은 입장에서 달리는 행위를 함께함으로써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류의식을 높일 수 있다. 회사는 수요 마라톤, 그 자체는 물론 그것을 통해 얻고자 하는 열린 문화, 함께하는 문화에 대한 주지와 각인을 통해 독특한 문화로 자리잡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