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수출 회사로 사업 시작해 해외시장 개척 주력… 지난해 코스닥 등록

‘미니멈’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여성을 주 타깃으로 하는 여성의류 브랜드다. 런칭 4년 만에 국내 여성의류 대표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중국과 베트남에서도 미니멈 브랜드가 한류열풍을 대변하고 있다. 한마디로 뜨고 있는 것.‘미니멈’을 톱브랜드 반열에 올려놓은 주인공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정호코리아의 소장중 사장(45ㆍ사진)이다. 그는 생산기능공 출신이다. 충남 논산에서 7남매 중 다섯째였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올라와 가방공장에 취직했다.이곳에 4년 동안 있으면서 가방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당시 견습생이 기술을 배워 작업라인에 앉으려면 3년 이상 걸렸다. 그런데 소사장은 10개월 만에 작업라인에 앉아 재봉틀을 돌렸다. “처음에는 재봉틀을 못 만지게 하더라고요. 물건을 나르고 청소하는 등의 허드렛일만 했습니다.”그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원단 조각에 박음질을 하며 가방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한 번이라도 더 해 보려고 매일 점심을 굶다시피 했다. 그러던 어느날 문제가 생겼다. 박음질 도중에 재봉틀이 갑자기 멈췄다. 밑실(실타래)이 망가져 버린 것이다.“얼마나 걱정이 되든지 등에 식은땀이 쫙 흐르더라고요.” 그는 그날 선배 기술자에게 크게 혼났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소사장의 기술욕심은 대단했다. 그이후에도 매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혼자 연습했다. 악착같은 집념은 그를 10개월 만에 기술자로 만들었다.1979년 가방생산업체인 한웅으로 옮겼다. 이곳에서 사업가의 길로 들어서는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3개월쯤 지나자 사장이 그를 불러 라인을 맡길 테니 알아서 해 보라며 넘겨줬다. 21살에 사장이 됐다. 처음에는 잠도 못잤다.업계 특성상 사장보다 나이가 많은 기술자들을 데리고 일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부대꼈다. 생산만 하다 관리, 영업, 구매 등 모든 것을 총괄하다 보니 그의 몸은 매일 천근만근이었다. “진통제를 먹어가며 회사를 꾸려나갔습니다.”군입대로 사업을 접어야 했고, 82년 제대한 후 그 이듬해에 가방수출을 하는 고려물산에 생산직원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4년 넘게 근무하면서 기술과 수출 방식 등을 익혔다. 나름대로 사업을 위한 준비가 됐다고 판단한 그는 88년 3월, 서른 살에 가방수출회사를 세웠다.서울 내발산동에 5평을 임대했고 여직원 한 명이 고작이었다. 그는 디자인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디자인이 완성돼 갈 때쯤 운도 따랐다. 네덜란드에 여행용 가방 3,000개 1만5,000달러어치 수출계약을 맺었다.“에이전트를 하던 친구의 소개로 샘플을 들고 네덜란드로 갔는데 그 자리에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소사장의 출발은 자랑스럽게도 수출이었다. 그는 번 돈으로 디자인 개발을 계속했다. 10여개 모델을 개발한 그는 89년 초 프랑스 최대의 가방수입업체인 GYL에 여행용 가방 샘플을 보냈다.샘플을 본 GYL 구매담당자가 회사를 방문, 매월 3만개씩 1년간 공급해 달라는 주문을 했다. 무려 200만달러어치였다. 신생회사가 이 같은 규모의 수출계약을 따내자 업계에서는 놀라워했다. “주변에서는 우려 반 기대 반의 눈빛을 보냈어요. 하지만 기회를 잃지 않으려고 최상의 제품을 만들어 보냈습니다.” 대성공이었다. 제품을 받은 바이어는 “BON! BON!”을 외쳤고 주문량을 더욱 늘렸다.정호코리아는 92년 9월 베트남에 진출했다. 중국업체들이 늘어나면서 한국 제품은 가격경쟁력을 잃고 있다며 GYL측에서 해외이전을 주문해 왔다. 그래서 소사장은 베트남에 진출하기로 하고 철저한 현지조사를 통해 베트남 기업과 합작해 하이퐁에 공장을 세웠다. 사세가 커지자 96년에는 합작을 청산하고 단독법인으로 전환했다.이때 미국의 퀵실버, 스페인의 자라 등 세계적인 의류 및 가방업체를 거래선으로 확보하고 연간 1,000만달러 이상 수출하는 업체로 키웠다. “베트남에 진출할 당시 현지인들이 지나친 보상을 요구하며 생떼를 쓰는 바람에 설득하느라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설득하는 데만 1년이 걸렸어요. 지금은 입사하고 싶어 하는 회사가 됐습니다.”소사장의 베트남인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다. 그는 현지인들을 위해 매년 무료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전쟁미망인들에게 생활비도 지원해주고 있다. 소사장은 하이퐁지역에서 존경받는 외국인 중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이때까지만 해도 정호코리아는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수출했다.“내 브랜드를 갖고 싶었습니다.” 소사장은 98년 초 ‘콤비엠비’ 유니섹스용 의류브랜드를 내놓고 의류사업에 뛰어들었다. 그해 5월 이화여대 앞에 안테나숍을 열고 소비자 반응을 살폈지만 신통치 않아 5개월 만에 접었다. 그는 브랜드를 런칭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재도전에 나선 소사장은 이듬해 미니멈을 갤러리아, 신세계 등 유명백화점에서 런칭했다. 매장을 연 몇 달간 매출이 오르지 않아 백화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밤을 새우며 소주잔을 기울인 날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에 코피를 쏟아가며 미련할 정도로 디자인 개발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장에 들러 소비자 반응을 살폈다.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1년 6개월쯤 지나자 매출이 급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백화점 입점도 늘었다. 정호코리아는 현재 국내 주요 백화점에 25개의 미니멈 매장을 운영하는 여성의류 대표브랜드로 자리잡았다.지난해에는 코스닥에 등록했고, 중국 칭다오에도 가방공장을 설립해 생산제품 전량을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소사장은 중국과 베트남의 의류 시장에서 미니멈 브랜드로 다시 한 번 한류바람을 일으키겠다는 비전을 세우고 추진 중이다.지난 2000년 베트남 하노이에 이어 지난해 하이퐁의 중심가에 매장을 냈다. 상류층을 공략대상으로 삼고 있다. “월 평균 3,000만~5,000만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반응이 좋습니다.”중국에는 다롄, 항조우, 난징 등에 4개의 미니멈 매장을 운영 중이다. 올 연말까지 베이징, 상하이, 칭다오 등지에 매장을 추가로 오픈해 중국 내 매장수를 총 20개로 늘릴 계획이다.소사장은 월 평균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인터넷 패션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와 관련, “지난 3년간 꾸준히 투자한 성과”라며 “향후 2~3년 내에 월 평균 5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쇼핑몰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정호코리아는 최근 서울 우면동에 10층짜리 사옥을 마련해 입주했다. 지난해 매출 220억원을 올렸으며 올해는 280억원(순이익 24억원)이 목표다. (02-3460-9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