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첫 방송 후 지금까지 장수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격동 50년’과 요즘 TV 방영 중인 ‘영웅시대’는 공통점을 지녔다. 둘 다 한국경제의 성장사를 녹여낸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인물과 에피소드 중심인 이들 프로그램과는 달리 숫자로 본 한국경제 60년은 어떤 모습일까. 주요 통계지표로 한국경제 60년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감개무량해진다.수출 및 GNP먼저 한국무역협회의 ‘무역통계’를 토대로 수출을 살펴보면 48년부터 2003년까지 55년 동안 무려 약 8,810배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8년 2,230만달러에 지나지 않았지만 60년 3,280만달러, 70년 8억3,520만달러로 10년 사이 급성장했다. 특히 경제가 급성장하며 80년 175억490만달러, 90년 약 650억달러, 2000년 약 1,723억달러로 늘어갔다. 2003년에는 수출액 1,938억달러를 기록하며 교역규모에서 세계 12위로 올라섰다. 우리나라의 교역순위는 지난 83년 12위로 떠오른 이래 줄곧 11위에서 13위 사이에서 등락을 거듭해 왔다.그후 IMF 외환위기를 맞아 98년 14위로 하락한 다음 줄곧 13위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2003년 사상 최대의 수출입 실적에 힘입어 세계 12대 무역대국으로 재부상했다.각국의 국민경제 수준을 한눈에 보여주는 1인당 국민총생산(GNP)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53년 67달러이던 1인당 국민총생산은 60년 79달러로 100달러 미만을 머물다가 63년 100달러를 기록하며 100달러선에 진입했다. 70년 253달러를 보인 후 78년 1,011달러로 1,000달러를 돌파했다. 80년 1,597달러, 83년 2,014달러를 보이며 젖먹이 아이처럼 쑥쑥 성장해 갔다. 서울올림픽을 개최한 88년에는 4,295달러로 4,000달러를 넘어섰고 90년 5,883달러를 보이다가 95년에는 대망의 1만달러를 넘어서며 1만37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와 함께 97년 9,511달러로 하강곡선을 그리게 됐다. 그후 외환위기 극복과 함께 1인당 국민총생산은 다시 증가해 2003년 1만2,646달러를 나타냈다.물가 및 생활수준하루가 다르게 경제가 성장하던 70년대 은행에 입행한 백병남씨(56)는 “대학졸업 후 은행에 들어가서 2년차 되던 77년, 첫 월급은 세금을 뗀 후 12만8,900원이었다”며 “본봉 6만3,600원, 직책수당 3만6,000원, 출납수당 9만원, 중식대 9,600원, 금융수당이 2만5,440원으로 세전 소득합계가 14만3,640원이었다”고 회상했다. 대형할인점에서 쇼핑할 때 카트의 절반만 채워도 10만원이 훌쩍 넘어서는 요즘으로서는 당시 상황이 상상이 안될 법하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소비자물가지수 변화를 살펴보면 그때 그 시절이 머릿속에 그려진다.통계청이 2000년을 100으로 기준 잡아 발표한 소비자 물가지수를 살펴보면 45년은 0.001이었다. 50년에는 0.04, 60년 2.0, 70년 7.4를 보이다가 70년대가 지난 80년에 이르자 33.2로 급상승했다. 90년 60.9, 2000년 100.0, 2003년 110.7을 기록했다. 그래프로 보면 45년 0에 가까운 수치에서 시작한 소비자물가지수는 2003년 110을 넘어섰다.도시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을 살펴봐도 물가 추이와 생활수준 향상을 눈치챌 수 있다. 63년 도시근로자 한 가구당 월소득은 5,990원이었다. 70년에는 2만8,180원, 80년에는 8배 이상 늘어 한달에 23만4,086원을 벌어들였다. 90년 94만3,272원에서 2000년 238만6,947원을 보이며 10년 사이에 2배 이상의 월소득을 벌어들였다. 2003년에는 294만26원을 보이며 300만원의 고지를 넘보게 됐다.자동차 등록대수 역시 급변한 한국인의 생활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48년 1만2,300대이던 자동차는 60년 3만800대로, 70년 12만6,500대로 급증했다. 80년 52만7,700대, 90년 339만4,800대로 10년 사이 6배 이상 늘었다. 또 다른 10년이 지나며 2000년에 이르자 1,205만9,000여대로 대한민국 국토를 오가는 자동차는 1,000만대를 넘어섰다. 1가구 1차량을 넘어서 1가구당 2대 이상의 차량을 지닌 가구수도 자연히 증가했다.인구 100명당 전화 가입자수는 55년부터 60년까지 0명, 65녀 0.7명, 70년 1.5명, 75년 3명을 보였다. 85년 16명으로 증가세를 보인 뒤 90년 31명, 95년 41.2명 수준에 이르렀다. 95년의 일본 전화가입자수가 48.8명, 대만 43명, 미국 62.6명, 스웨덴 68.1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전화 가입자수로도 생활수준을 간파할 수 있다.자본시장80년 1월4일을 100으로 한 연평균 종합주가지수를 살펴보면 지난 75년은 79.8에 머물렀다. 이후 80년 108.9에서 89년 918.6을 나타내며 9년 만에 8배 이상 수직상승했다. 하지만 90년 747을 기록하며 증권사 직원과 투자자들은 쓴잔을 마셔야 했다.4년이 지난 94년 주자지수는 연평균 965.70을 보였고, 최고치는 1138.75를 기록하기도 했다. 95년에도 주식 풍년은 이어져 연평균 934.74, 최고점 1016.77을 나타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가 닥쳐오면서 자본시장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97년 654.48, 98년 406.07로 주가지수는 날개 꺾인 천사꼴이 됐다. 이후 외환위기를 극복하며 종합주가지수도 부활의 움직임을 보였다. 99년 연평균 종합주가지수는 806.83, 2000년에는 734.22를 나타냈다. 2000년에는 최고점 1059.04를 보였지만 연말이 다가오며 최저점 500.60을 찍으며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했다.2001년에는 연평균 572.83으로 다시 내려앉았다. 그후 2002년에는 756.98, 2003년에는 679.83을 보이며 종합주가지수는 포물선을 그리고 있다. 상장종목수를 살펴보면 63년 17개, 70년 63개로 100개를 넘어서지 못했다. 72년 97개에서 이듬해인 73년 급증해 200개, 80년 437개가 상장종목이었다. 89년 1,000개를 돌파해 1,284개를 기록했다. 90년 1,115개, 91년 1,013개로 감소 추이를 보이다가 다시 증가해 95년 1,122개를 기록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에는 958개였다.상장주식 시가총액은 64년 100억원, 70년 979억원에서 급증해 80년 2조5,266억원이었다. 90년 79조197억원, 94년 151조2,172억원을 보였다. 2003년 상장주식 시가총액은 298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605조원의 49.3%를 차지했다.돋보기 다른 나라와 비교한 경제 외형선박 건조량·D램 매출액 세계 1위한국무역협회가 2004년 8월 내놓은 <207개 경제ㆍ무역ㆍ사회 지표로 본 대한민국 2004>를 살펴보면 세계 속 한국의 입지를 확인할 수 있다.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무역기구(WTO), 국제연합(UN) 등의 최신 통계자료를 인용해 한국 위상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선박건조량, D램 매출액, TFT-LCD 출하, CDMA 휴대전화 단말기 판매,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편직물 수출 등은 한국이 세계에서 1위를 기록하는 지표다. 반면 투명성 및 부패지수 35위, 삶의 질 34위, 물가상승률 6위 등 개선해야 할 부문도 보인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11위, 교역규모 12위, 1인당 수출액 40위, 서비스수출 17위, 외환보유고 4위, 반덤핑 피소 3위, 세계 시장점유율 1위 품목수는 13위를 차지했다. 주요 산업별 순위를 살펴보면 휴대전화 판매 3위, 자동차 생산 6위, 자동차 보유대수 12위, 조강 생산량 5위, 가정용 냉장고 생산 4위, 세탁기 생산 5위, 맥주생산 16위 등이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수 역시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인구 100명당 21.3명으로 2위인 홍콩 14.6명과 3위 캐나다 11.5명을 앞서며 인터넷 강국임을 확인했다. 56년 전인 48년 한국의 수출액은 2,230만달러. 48년 당시 1억달러 미만의 수치를 보였던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손에 꼽혔다. 시리아 3,600만달러, 파나마 2,400만달러, 케냐 4,700만달러 등이었다. 격동의 40년 세월을 보낸 후 96년 한국의 수출액은 약 1,297억달러였다. 반면 시리아는 약 40억달러, 파나마 약 28억달러, 케냐 약 21억달러로, 이중 수출액이 가장 많은 시리아조차 한국의 33% 미만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