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세계시장에서 인기를 끈 국내기업 제품들은 ‘성능 좋고 가격 싼’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성능 좋고 디자인은 더 좋은’ 공통점이 있다.디자인이 기술을 리드하는 시대, 세계시장에서 명성을 떨치는 제품들은 그만의 특별한 디자인 스토리를 갖고 있다.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아웃소싱을 하기도 하고, 내부에서 역량을 키우기도 한다. 처음부터 디자인 인프라 강화에 눈을 떴는가 하면, 뒤늦게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박을 터뜨린 사례도 있다. 첫 출시 때 비실비실했던 제품이 디자인 강화 후 깜짝 놀랄 만큼 매출 신장을 이룬 경우도 적잖다.특히 세계 유수 디자인상을 휩쓰는 정보통신 관련 제품의 사례에는 반짝이는 성공 키워드가 곳곳에 숨어 있다.레인콤 아이리버레인콤은 이노디자인에 디자인 분야를 아웃소싱,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해 단숨에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미국 회사에 MP3플레이어와 CDP를 ODM(제조업자개발생산) 방식으로 수출하던 중소기업이 디자인에 승부를 걸어 세계를 석권한 이야기는 이미 ‘전설’이 됐다. 또 디자인을 매개로 한 두 회사의 협력관계가 경제연구소의 연구과제가 될 만큼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지난 2001년, 양덕준 레인콤 사장은 우연히 <12억짜리 냅킨 한 장>이란 김영세 이노디자인 사장의 자서전을 읽었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양사장은 이 책에서 감명을 받아 함께 일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2002년 1월, 미국 CES에서 만난 두 사람은 전격적으로 협력 체결을 맺었다.당시 레인콤은 한국의 이름 없는 벤처회사였다. 반면 이노디자인은 삼성전자 애니콜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업디자인 제품을 출시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지명도 높은 회사. 후일 김영세 사장은 양덕준 사장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디자인 이해도를 높이 평가, 손을 잡았다고 밝혔다. 현재 이노디자인은 레인콤 매출의 일정 비율을 로열티로 받는 방식으로 협력관계를 이어가고 있다.협력 체결 이후 아이리버 제품에는 이노디자인의 ‘손길’이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레인콤은 김영세 사장의 사진을 실루엣 처리해 새겨넣는가 하면, 제품에 ‘DESIGN BY INNO’라는 문구를 새겨 디자인 저작권을 높이 평가했다.이노디자인과의 최초의 협력제품은 2002년 초 출시된 iMP-350(Slim-X). 초슬림 MP3 CD플레이어로 단숨에 미국 시장점유율 1위로 떠올랐다. 또 2002년 6월 디자인이 완성된 iFP-100(프리즘) 모델은 네모반듯한 디자인 일색이었던 MP3플레이어의 고정관념을 깬 삼각기둥 형태의 디자인으로 빅히트를 쳤다.레인콤의 디자인 중시 경영은 ‘구겨서라도 넣어라’는 말로 집약된다. 레인콤 경영진이 기술진에 한 말로, 제품사이즈나 디자인은 건드리지 말고 어떻게든 회로 등을 기술적으로 구현하라는 뜻이다. 이는 디자인업체를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 협력관계로 인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레인콤 관계자는 “이노디자인과의 협력을 통해 비록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이라도 좋은 디자인업체와 손잡아 일류제품을 만들면 세계를 석권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밝혔다. 이는 통상 디자인의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디자인업체를 하청업체로 인식, 엔지니어들의 입김이 강한 다른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레인콤은 최근에도 N10, H10 등 신제품을 개발해 세빗 2005 등 세계무대에서 호평을 받았다. 특히 N10은 독일 레드닷어워드에서 제품 디자인 부문을 수상하는 등 진가를 계속해서 확인 중이다.삼성전자 애니콜“디자인센터를 보면 삼성전자의 미래 비전을 확인할 수 있고, 바쁘게 움직이는 디자이너들에게서 독창성과 열정,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최근 삼성전자 디자인센터를 방문한 세계 각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의 공통된 표현이다. 삼성전자 디자인이 얼마나 강한 파워를 갖고 있는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실제로 <비즈니스위크> 등 세계 유력지들은 삼성전자 디자인을 브랜드 가치 급상승의 주요인으로 언급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삼성전자의 디자인 중시 전략은 지난 96년부터 본격화됐다. 이때 ‘디자인 혁명의 해’를 선포한 이후 경영성과에 기여한 디자인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세계 양대 디자인상으로 불리는 미국 IDEA와 독일 iF 디자인상을 휩쓰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휴대전화 브랜드 애니콜의 전적이 두드러진다. 그도 그럴 것이 디자인센터의 450여 디자이너 가운데 200여명이 휴대전화 디자인에 매달리고 있다. 이들이 애니콜 신화의 주춧돌인 셈이다.특히 애니콜 T100, E700, D500으로 이어지는 휴대전화 신화는 디자인 파워를 확인케 하는 사례로 손꼽힌다. 독일 레드닷어워드와 홍콩디자인아시아어워드를 석권한 T100의 경우, 얇고 작은 휴대전화가 대세였던 당시의 시장 트렌드를 넓고 사용하기 편한 컨셉으로 바꿔 놓았다. 기계적인 느낌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컬러와 질감 등을 감성적 코드에 맞춰 사용자 편의를 고려한 게 적중한 것이다. T100 디자인에 대한 호평은 매출로 연결돼 2002년 5월 출시 이후 단일모델로 1,000만대 이상의 판매기록을 세웠다. 일명 ‘이건희폰’으로 불리며 매출액만 3조원, 이익 1조원을 올렸다.‘벤츠폰’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E700도 경영에 기여한 디자인으로 손꼽힌다. 외장 안테나를 제거한 새로운 모습으로 T100을 잇는 명품 휴대전화로 명성을 떨치더니 출시 5개월 만에 200만대를 돌파했다.이 계보를 이어 최근 출시된 D500은 이미 세계 각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에서 ‘블루블랙폰’으로 불리는 이 모델은 출시 4개월 만에 유럽 판매량 300만대를 넘어서는 심상치 않은 기록을 세우고 있다. 기존 제품의 판매실적을 넘어서 사상 최대 대박을 터뜨릴 태세다. 삼성전자는 “부품수급이 어려울 정도로 주문이 쏟아지고 있어 1년 안에 판매량이 1,000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라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한편 지난해 독특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었던 가로보기 휴대전화, 일명 ‘가로본능’의 후속 모델 V600(가로본능Ⅱ)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만 출시된 이 모델은 기존 제품에 비해 크기가 작아지고 곡선미가 강조돼 한층 세련미가 더해졌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게다가 LCD 액정화면만 옆으로 돌려 방송이나 게임을 즐기게 만들어 편의성도 높였다. 삼성전자는 가로보기 휴대전화를 유럽, 중국시장에서 위성DMB용으로 내놓을 계획이어서 또 한번 바람몰이가 예상된다.엠피오 MP3플레이어레인콤과 함께 대표적인 MP3플레이어 전문업체로 손꼽히는 엠피오는 동종업계에선 드물게 자체 디자인팀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인력 가운데 10%를 디자인 전문인력으로 배치할 만큼 투자와 관심이 남다르다. 매년 7~10개의 디자인을 쏟아내며 ‘디자인 차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엠피오가 디자인에 주목한 배경에는 우중구 사장의 디자인 중시 전략이 자리잡고 있다. 형제들이 패션, 인테리어업계에서 중진으로 활동할 만큼 디자인과 밀접한데다 평소 ‘MP3플레이어는 패션제품’이라는 확고한 소신이 작용한 결과다. 이에 걸맞게 엠피오의 모토도 ‘높은 테크놀로지를 보유한 디자인 회사’다.디자인을 중시한 결과는 경영성과로 연결되고 있다. 브랜드 파워를 내세우는 글로벌업체와 저가를 무기로 한 중국업체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호응을 받고 있는 비결은 품질은 물론 뛰어난 디자인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엠피오는 지난해 전체 판매량 중 90%를 해외시장에 공급했다. 올해도 매출의 85% 가량을 해외에서 거둘 계획이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세계 5위권 MP3플레이어업체로 도약하며 매출 850억원(추정치)을 거뒀고, 올해는 두배 가까운 1,6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잡았다.엠피오 디자인은 이미 해외시장에서 톡톡히 인정받고 있다. FL100이 지난 2003년 iF 디자인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는 FL300이 다시 같은 상을 수상해 저력을 재확인했다. 또 올인원 MP3플레이어인 ‘붐’(FG100)도 독일의 유명 매체인 빌트(Bild) 인터넷판의 ‘베스트 MP3플레이어’로 선정됐다. 우중구 사장은 “세계적 권위의 산업디자인상 수상과 유력 매체의 베스트제품 선정은 엠피오의 디자인과 제품경쟁력이 세계 수준임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서울통신기술 홈네트워크 시스템홈네트워크 전문기업이자 삼성전자 자회사인 서울통신기술도 자체 디자인팀의 역량을 기반으로 세계시장의 호평을 받고 있다. 이지온(EZON) 월 패드(Wall Pad: 모델명 SHN-8070)는 홈네트워크 제품으로는 국내 최초로 독일 iF 디자인상(2005년)을 수상, 화제를 모았다. 이 회사 역시 디자인 우선 경영을 기반으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수상작은 기존의 홈오토메이션 기능에다 조명, 가스밸브, 난방보일러, 현관제어 등 홈네트워크 기능을 함께 구현하는 시큐리티 중심의 최첨단 제품.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조작이 편리한데다 알루미늄 재질로 만든 외형이 세련되고 심플하다. 이미 충북 오창, 화성 동탄신도시 아파트에 100% 적용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월 패드 디자인 개발의 배경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제품만의 단독 디자인을 보지 않고 전체적인 인테리어 조화 측면을 고려했다는 것. 공간구성의 한 요소, 건축적인 요소가 되는 디자인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또 사용성을 높이는 측면에서 버튼 크기를 키우되 전체 디자인은 미니멀 컨셉에 맞췄다. iF 디자인상을 수상한 것도 기존 홈오토메이션 제품의 단순함을 넘어 이를 네트워크로 발전시킨 기술적인 진보, 인테리어 조화를 고려한 디자인이 좋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돋보기 중소기업 성공사례‘디자인 신경 썼더니 매출 20배 늘었어요’중소기업이 디자인에 눈을 뜨면? 십중팔구 몇 배의 매출증대 효과를 낸다. 이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의 톱디자인전문회사 선정, 석세스디자인 상품 선정 등을 통해 여실히 증명되는 사실이다. 우수한 기능과 디자인이 만나 상품경쟁력과 기업가치가 극대화되는 사례가 적잖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 개발비 대비 평균 20배 이상의 매출 효과를 내는 것으로 분석됐다.동진플라스틱사는 인라인스케이트 보호헬멧을 개발하면서 세올디자인의 유선형 디자인을 접목했다. 내피 압축 스티로폼을 적용해 안정성을 향상시키고 앞머리 부분에 회전팬과 야간안전표시를 넣어 소비자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회사는 단일모델로 매출액 40억원을 달성했다.라이벌코리아는 지난 96년 선풍적 인기를 끈 ‘다마고치’보다 진화한 인공지능형 애완인형 로그보(LOGBO)를 내놓았다. 드라마 <슬픈연가>에 PPL로 소개돼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거운 이 제품은 눈사람 형상 디자인이 특징. 출시 한달 만에 10만개 예약판매를 했고 올 한해만 100만개 매출이 기대되고 있다.에이텍사의 LCD 일체형 PC 플랫톱(Flattop)은 디자인의 파워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관공서, 전시회 등에서 폭넓은 시장을 확보한 이 제품은 복잡한 케이블 연결 없이 간단히 사용할 수 있는데다 11kg의 초경량으로 이동이 편리하고 공간활용도 쉽게 만들었다. 3,900만원의 디자인 개발비로 30억원의 판매실적을 기록했다.디에스테크의 욕실용 살균청정기, 오토전자의 블루투스 무선헤드셋 등도 놀라운 성과를 거둔 디자인상품으로 꼽힌다. 심플하고 사용이 편리한 미래지향적 디자인을 추구한 살균청정기는 출시와 함께 호평을 받기 시작, 판매 6개월 만에 50억원 매출을 달성했다. 무선헤드셋 역시 미래지향적 외관과 착용감 최적화를 통해 월 5만대 이상의 수출효과를 보고 있다. 또 국내 블루투스 시장 개척에도 큰 기여를 해 4개월 동안 55억원 매출을 기록했다.씨씨전자가 개발한 DVD 콤보 기능의 LCD TV 크레도(CREDO)는 콤팩트한 디자인이 공간 활용을 수월하게 만들어 인기몰이 중이다. 이미 디자인 개발 후 2개월 동안 8억8,000만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일신정밀공업의 광섬유복합처리장치 옵티머스(Optimus)Ⅰ의 경우 대중적인 상품은 아니지만 디자인을 중시해 눈길을 끈다. 광케이블의 생산과정에서 사용되는 이 제품은 ‘최소형화’를 목표로 개발됐다. 기계적인 이미지를 배제한 라운드 처리 등 디자인에 과감하게 투자, 기업이미지 개선과 제품의 부가가치 상승효과를 거뒀다는 평이다. 디자인 개발 후 3개월간 약 3억7,000만원의 매출을 달성했다.데코리의 스케이트보드 ESS보드는 특허 출원에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기존 스케이트보드와 형태는 유사하지만 구조와 원리가 전혀 다른 이 제품은 좁은 장소에서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레저스포츠상품. 제품 가치와 생산성을 고려한 디자인을 개발, 각종 디자인상을 수상했으며 판매 5개월 만에 70억원의 수출실적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