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 시대를 웃겼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받은 상만 헤아려도 다섯 손가락이 모자란다. 그는 하나의 장르를 창안했다. 성인개그다. 흔히 ‘음담패설’이라고 불린 섹시한 유머의 일인자다. 그의 야시시한 농담에 나이 지긋한 중년 신사와 부인들이 배를 쥐고 웃었다. 그는 ‘스탠드업 코미디’의 달인이다. 마이크 하나만 쥐어주면 엄숙한 공간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개그맨 서인석은 그런 인물이었다.그가 돌아온다. 대한민국 성인들의 웃음보를 마구 찔러대다 돌연 사라졌던 그가 무대에 다시 선다. 성인개그, 스탠드업 코미디 등 그의 전매특허를 되살린 공연이 개막을 앞두고 있다. 전설적 공연인 <코미디 클럽>의 간판스타였던 왕년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원 없이 웃겨주겠다는 것이다. 공연 이름도 ‘웃으러 옵쇼’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따 ‘웃쇼’로 정했다.‘미성년자는 오지 마세요’스탠드업 코미디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원맨쇼’다. 조연도 없고 세트도 없이 웃기는 쇼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인지 국내에 스탠드업 코미디는 멸종 위기에 이른 상태다. 올 초 개그맨 김형곤씨가 사망하면서 희미했던 명맥이 더욱 위태로워졌다. 이렇다 할 후계자도 없다. 서씨는 이번 공연을 계기로 스탠드업 코미디의 부활을 알리겠다고 다짐한다.“한 사람이 1시간 이상 오직 입담만으로 웃기려면 보통 노력이 없으면 안됩니다. 요즘 방송은 거의 여러 사람이 극의 형태로 진행하는 게 유행이어서 스탠드업 코미디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죠. 국내에 스탠드업 코미디를 할 수 있는 코미디언이 자취를 감춘 것도 무리가 아닌 셈입니다. 하지만 스탠드업 코미디가 굉장히 매력적인 장르라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어요. 관객 분위기를 보면서 탄력적으로 진행할 수 있고 소재에도 제한이 없죠. 시사적인 문제에 빠르게 대응할 수도 있고요.”서씨는 고 김형곤씨가 주도했던 <코미디 클럽>에 출연하면서 스탠드업 코미디 훈련을 쌓아갈 수 있었다. 예매를 하지 않으면 볼 수 없었던 <코미디 클럽>의 전성기를 이끈 주인공도 바로 그다.“추석 명절 때였어요. 같이 출연하던 개그맨들이 특집방송 때문에 전원 ‘펑크’를 냈어요. 3시간 동안 혼자 공연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전에는 그렇게 오래 한 적이 없어 불안했는데 막상 해보니 되더라고요. 제가 스탠드업 코미디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지금이라면 10시간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쇼’는 미성년자 입장불가다. 어른들끼리 웃어보자는 의도다. 사실 아이들과 함께 야한 농담을 듣는 것은 민망한 일이기도 하다. 실제로 손아랫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잘 웃지 않던 연장자들도 같은 연령대끼리 모이면 훨씬 잘 웃는다고 서씨는 설명한다. 성인들은 스트레스는 더 많이 받지만 정작 웃을 기회가 적은 것도 ‘웃쇼’를 기획한 이유다. 방송을 아무리 돌려봐도 성인들이 웃을 만한 코미디 프로그램은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워낙 ‘성인개그의 대가’로 알려진데다 미성년자의 출입도 막았으니 음탕한 농짓거리가 질펀하게 이어질 것이란 짐작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정치, 경제, 사회, 가족,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곳에서 웃음을 발견하자는 것이다. <코미디 클럽> 시절 안기부에서 2번이나 불렀을 정도로 꽤 신랄한 정치 개그를 해봐서 낯선 장르도 아니다. 하지만 ‘Y 담’이 빠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 경제가 ‘반찬’이라면 ‘Y 담’은 ‘밥’이란다.“개그는 무조건 웃겨야 합니다. 요즘 고품격 유머라는 말이 유행인데 품위 찾다가 웃기지 못하면 소용없어요. 그런 면에서 ‘Y 담’은 가장 대중적인 웃음코드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웃을 수 있는 소재잖아요. 개그맨이 너무 똑똑한 척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웃쇼’는 일종의 강의로 기획됐다. 웃을 수 있고 웃길 수 있는 소재와 방법을 전수해 주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간단한 필기도구를 필히 지참하라는 ‘근엄한’ 주문을 한다. 평범한 직장인이든 기업의 CEO든 어디를 가도 좌중을 뒤집어놓을 수 있는 유머 한자락씩은 얻어갈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열정 리더십’, ‘CEO 유머’, ‘골프 유머’, ‘펀 마케팅 유머’ 등 다양한 테마로 엮어나갈 예정이다.“한 달에 한 번은 전체 구성을 바꾸고 공연 당일의 뉴스나 화제를 활용해 매일 매일 새로운 웃음을 만들어낼 겁니다. 같은 테마라도 공연마다 최소한 30%는 다른 유머를 선보일 겁니다.”1인 코미디지만 다양한 우정출연진도 무대에 오른다. 신상훈 한국종합예술대 개그 학부장, 이재선 명지대 교수, 시인이자 유머 컨설턴트인 용해원씨, 서울대병원의 강승완 교수, 웃음치료전문가인 김미진 강사 등의 출연이 예정돼 있다. 명사들의 유머기술을 전해주려는 의도다. 사물 개그로 유명한 후배 개그맨 서남용씨도 힘을 보탠다.‘성숙한 코미디 선보일 터’서씨가 10여년 전 떠난 방송과 공연계로 돌아온 것은 고 김형곤씨의 역할이 지대했다. 사망하기 며칠 전 전화로 “대학로에서 <코미디 클럽>을 재건하자. 카네기 공연도 잡혀 있다. 옛날처럼 함께 해보자”고 간곡히 부탁했던 것이다. 서씨는 김씨와 더불어 스탠드업 코미디를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코미디언이었던 것이다.“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이 자연스레 생기더라고요. 개그계를 떠났지만 실제로는 떠나지 않았다는 느낌, 한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다시 일으켜야겠다는 소명감, 나는 죽을 때까지 개그맨이라는 자각 같은 게 한꺼번에 들었죠. 저를 다시 코미디의 세계로 불러들인 사람은 형곤이 형이었습니다.”화제가 고 김형곤씨로 돌아가자 서씨 눈가는 이내 축축해졌다. 사실 고 김형곤씨와 서씨는 떨어뜨려 놓을 수 없는 사이였다. 우정과 신뢰, 배신과 실망, 애정과 미움이 복잡하게 얽힌 관계다. <코미디 클럽>을 시작하고 떠난 것도, 방송에서 인기를 얻고 멀어진 것도 모두 고 김형곤씨와의 인연이 만든 일이었다. 코미디계를 떠난 후 겪어야 했던 고생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김씨의 영안실에서 서씨가 유난히 목놓아 운 것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우여곡절을 겪고 먼 길을 돌아 복귀한 만큼 코미디에 대한 서씨의 애정은 더욱 깊어졌다. 특히 고 김형곤씨의 마지막 바람이기도 한 ‘스탠드업 코미디 부활’에 온힘을 다할 생각이다. 이번 ‘웃쇼’도 그를 위한 방편이다.방송복귀도 계획하고 있다. 이미 KBS의 심야 코미디 프로그램인 <폭소클럽>에 여러차례 출연한 바 있다. 현재 <폭소클럽>은 막을 내린 상태지만 조만간 방송이 재개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서씨는 프레젠테이션 개그를 선보일 계획이다.출판도 앞두고 있다. 원고는 이미 완성됐고 출판사를 정하는 대로 책을 낼 계획이다. 펀 리더십, CEO를 위한 유머 등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는 설명이다.“예전에는 그야말로 천방지축이었어요. 무조건 많이 웃겨야 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덜 웃겨도 메시지가 있는 웃음을 주고 싶습니다. 성숙한 코미디라고 할 수도 있겠죠. 나이도 먹었고 그동안 겪은 희로애락도 적잖은 만큼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인터뷰 막바지에 서씨는 공연상품권을 건넸다. 상품권의 상단에 ‘엔돌핀 상품권’이란 문구가 이색적이었다. 웃을 때 분비된다는 엔돌핀을 얻을 수 있는 티켓이란 의미다. 서씨는 “15초 웃으면 1㏄의 엔돌핀이 분비되는데 돈으로 치면 2,000만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서 “단순한 공연 이상의 가치를 주겠다”며 활짝 웃었다.약력: 1962년생. 아주대 국문과·산업대학원 졸업. 87년 KBS 신인무대 대상. 88년 KBS 스타탄생 대상. 90년 KBS대학개그콘테스트 금상. 91년 KBS 코미디대상 신인상. 93년 SBS 창사 공로상. 연세대·건국대·광운대 등 출강. △저서: <앗! 세상이 뜨겁다> <서인석의 CEO 유머(CD)> 등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