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서비스 많고 가입자 저조… 2008년 활성화 기대

“솔직히 마음이 불편합니다. 국내 지원은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면서 해외 수출에만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습니다.”삼성전자가 지난 8월8일 미국 스프린트넥스텔과 와이브로(모바일 와이맥스)의 미국 내 서비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KT는 내심 속이 쓰렸다.지난 6월부터 세계 최초로 와이브로 상용서비스를 시작했지만 국내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미국에 장비공급을 발표해 버린 것. 삼성전자는 미국에 와이브로 장비를 공급하게 되지만 국내 대다수 언론매체는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마치 서비스사업을 하게 된 것처럼 보도해 더 속이 쓰렸다.한국이 주도적으로 만든 최초의 기술이라고 평가되는 와이브로가 미국 기간통신사업에 채택된 것은 국가적으로는 기쁜 일임에 분명하지만 국내 사업자인 KT로서는 기뻐할 수만은 없다. 보도와는 너무나 다른 초라한 현실 때문이다.초라한 실적… 가입자 350명KT는 지난 6월1일부터 와이브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내 최초는 물론 세계 최초 상용서비스다. 상용서비스라고 한다면 가입자를 직접 모집하고 서비스 이용료를 받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서비스 시작 두 달이 지났지만 가입자는 8월17일 현재 KT가 약 350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KT에서 와이브로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홍원표 KT 휴대인터넷사업본부장은 “애정을 가지고 봐달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초라한 가입자 현실보다 아직 극복해야 할 점이 많다는 뜻이다. 즉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서비스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것. 홍본부장의 읍소가 아니더라도 KT의 상용서비스는 아직까지 ‘준상용서비스’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와이브로 전용 단말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삼성전자에서 지난해 11월 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단말기를 급조했지만 조악한 수준이란 평가를 들었다. 전용단말기는 내년 상반기에나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노트북에 PCMCIA카드를 꽂아서 사용하는 형태다. PCMCIA카드는 수십만원대를 호가한다. 현재 무선랜도 USB메모리 형태로 바뀌는 상황인데 과거 초기 무선랜카드 형태인 PCMCIA카드로는 도저히 시장성을 담보할 수 없다.서비스도 강남과 분당 일대에만 된다. 시범서비스와 상용서비스 커버리지 차이는 신촌과 송파를 첨가했을 뿐이다. 가장 큰 시장인 서울에서도 아직 다 서비스가 안된다.KT는 기지국과 중계기 등 망 구축에 이미 2,000억원을 투자했고 연말까지 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KT가 와이브로 투자를 늦출 것이라는 예상을 했지만 컨퍼런스콜에서 투자를 연말까지 지속하겠다고 밝혔다.그러나 전문가들은 KT가 와이브로 투자에 대해 재고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KT도 공개적으로 “투자는 예정대로 진행한다. 그러나 시장상황에 따르겠다”고 발표한 상태다.와이브로 전국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최소 1조원 이상의 투자비용이 필요하다. 와이브로 시장성이 받쳐주지 않는 한 혼자 투자해 봐야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더구나 KT와 같이 와이브로 사업권을 갖고 있는 SK텔레콤은 KT에 맞불을 놓을 생각이 전혀 없다. 서울 안암동 일부 지역에서 서비스하는 SK텔레콤 와이브로의 가입자수는 겨우 20명. 이 정도라면 상용서비스가 아닌 직원간 테스트하는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SK텔레콤도 연말까지 와이브로에만 1,7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그러나 SK텔레콤은 3.5세대 이동통신 고속하향패킷접속(HSDPA)에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와이브로 투자에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이 정도라면 초라한 와이브로 서비스라고 해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닐 것이다.와이브로 서비스의 초라한 현실의 이면에는 너무나 빨리 변하는 기술과 시장상황이 존재한다. 즉 와이브로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 한국에는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와이브로는 SK텔레콤과 KTF가 사운을 걸고 뛰어든 HSDPA와 시장이 중첩된다. 와이브로는 고속 이동 데이터 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택시나 지하철에서 e메일을 주고받거나 동영상으로 전화를 하는 이용자를 잡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확히 HSDPA가 지향하는 시장과도 같다.무선랜도 와이브로와 같이 이동 데이터 시장을 노리고 있다. KT 네스팟과 하나로텔레콤의 하나포스윙 등 사설망 무선랜이 존재하지만 소위 무선공유기로 불리는 공중망 무선랜이 하나둘씩 보급돼 어디서나 인터넷을 쓸 수 있다는 점도 KT에는 위험요소다. 폰닷컴이라는 무선랜 공유업체도 생겼다.전문가들은 공중망 무선랜이 급속도로 보급된다면 와이브로의 잠재시장도 잠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예상을 뛰어넘는 투자비도 사업자 얼굴에 주름을 더하고 있다.와이브로 2.0으로 승부해야와이브로 기지국은 반경이 평균 500m인 피코셀로 이뤄진다. 반면 이동통신 기지국은 2∼10㎞다. 주파수 압축 기술이 좋아져서 이동통신의 효율은 높아지고 있다. 와이브로는 이동통신보다 기지국을 더 깔아야 한다. 장비업체는 삼성전자, 포스데이타뿐이며 시장이 크지 않아 기지국 하나에 들어가는 장비만 최소 1억원이다.따라서 KT나 SK텔레콤이 구상한 대로 전국 주요 도시에 와이브로 기지국을 구축하려면 최소 1조원에서 최대 3조원까지 들어간다는 분석이 나온다.투자비가 많이 들어도 가입자가 많고 수익이 나면 사업자들은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다. 그러나 와이브로는 주력시장 ‘데이터’이기 때문에 투자 대비 수익을 의심하는 상황이다. 와이브로에 대한 본격적인 회의론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와이브로를 회사의 ‘차세대 먹을거리’로 인식하고 사업을 추진 중인 KT는 투자비를 줄이지 않지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할지에 대해 고민 중이다. 일단 KT는 향후 와이브로 서비스가 대중적 시장이 아닌 이동통신의 보완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이 같은 판단은 테스트 결과 고객이 와이브로에 요구하는 서비스가 KT가 애초 구상했던 것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와이브로를 써본 고객들은 와이브로와 휴대전화를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KT는 애초 무선인터넷 정도로 판단했기 때문에 주요 포인트를 연결하는 수준으로 생각했으나 사용자들은 휴대전화 수준의 전국망을 원한 것이다.그러나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는 없다. 때문에 KT는 와이브로 특성을 살려 비즈니스 시장에 접목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네트워크 반경은 좁지만 애플리케이션 차원에서 서비스 구현은 훨씬 깊게 하겠다는 방안인 셈이다.전문가들은 지금 시장에 선보인 와이브로 사업 모델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한목소리로 평가한다. 서비스는 비싸고 커버리지는 작다. 한마디로 ‘지금까지는’ 메리트 없는 서비스임에 분명하다.그러나 와이브로에 음성을 탑재하고 방송서비스가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와이브로에 인터넷전화(VoIP) 형식으로 음성서비스를 하고 실시간 방송을 보는 것은 기술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안된다. 단 현재 KT는 KTF 자회사, SK텔레콤은 이동통신서비스를 본업으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와이브로 VoIP가 시장을 잠식할 수 있기 때문에 음성서비스를 꺼리고 있을 뿐이다. 또 방송위원회에서 신규 통신서비스에도 방송법을 적용하겠다는 규제 상황이 변수다.와이브로와 CDMA의 듀얼모드 듀얼밴드 서비스도 와이브로 초기시장을 열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와이브로가 데이터, CDMA를 통해 음성을 동시에 서비스한다면 와이브로 가입자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결국 시장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한국도 미국 스프린트넥스텔이 와이브로(모바일 와이맥스) 서비스를 개시하는 시점인 2008년이 돼야 와이브로 서비스가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KT와 SK텔레콤, 그리고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의 와이브로 활성화 의지에 따라 그 시기를 조금이나마 당겨줄 수 있을 뿐이다.손재권·전자신문 IT 산업부 기자 gjac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