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609호 (2007년 08월 06일)

재능 있는 작가 ‘찜’… 미술시장 ‘족집게’

기사입력 2007.08.01 오후 02:30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미술 전시회를 관람하는 일은 일상에서 벗어난 작은 일탈과도 같다. 미술관은 학생 시절 방학 숙제 때문에 방문한 후, 세월이 흘러 아이의 숙제를 위해 대를 이어가며 어쩌다가 한 번 들르는 곳이 됐다. 그래도 요즘은 미술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편이다. 유명 작가의 작품이 상상을 초월하는 고가에 팔리는 일이 뉴스가 되면서 미술품 경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외부와 소통하지 못한 채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강태호 씨(37)는 숨어 있는 작가들을 발굴해 그들의 작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가 일하고 있는 일주아트센터는 일주학술문화재단과 흥국생명이 후원하는 비영리 단체다. 전시 공간은 22m 높이의 조각물인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망치질하는 사람’이 지키고 선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에 있다. 일주아트센터의 특이한 점은 전시를 통한 수익 창출이 아닌 창작자 후원을 위한 기획과 홍보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미술과 손쉽게 만날 수 있도록 미술과 관련된 DVD, 잡지, 단편영화, 서적 등 다양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공간인 일주아카이브도 마련해 놓았다.

창작자를 위한 ‘둥지’ 만드는 사람

디렉터인 강 씨가 하는 일은 우선 작가를 찾는 일이다. 그가 일하는 곳이 관객 수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업 갤러리가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압력 없이 진솔하게 작가를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금 이 시기에 맞아떨어지는 예술 언어를 전달할 수 있는 작가라면 일주아트 스페이스에 설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갖춘 셈이다. 특히 그는 기존 작가들과의 유사점을 찾기 힘들수록 높은 점수를 준다.

“의외로 좋은 작가들이 외면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능 있는 작가들의 활동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제가 할 일이지요. 예술도 사람 사는 일의 하나입니다. 대중의 입장에서 한 작가의 취향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 연관성을 찾아나갑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작가를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편이다. 그보다는 작가를 찾은 후 기획하고 방향성을 논의하는 일이 힘들다. 그가 주력하는 현대미술은 경제 문화 영화 광고 등 사회의 모든 분야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디렉터는 작가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영감을 불어넣으며 가능한 한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또한 작품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큐레이터, 작품 세계를 글로 풀어낼 카피라이터들을 평소에 많이 알아두어야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들과 전시를 만들어낼 수 있다.

“되도록이면 한국 작가와 같이할 수 있는 외국 작가의 작품을 초빙합니다. 전시의 질을 높이고 한국 작가를 외부에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때로는 해외 작가를 섭외하는 일에 꼬박 1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좋은 전시를 많이 하는 비영리 공간이라는 점을 홍보해서 위상을 높이는 것이 과제입니다.”

그에게 전시회 연출은 하나의 학문이다. 단순한 재미보다 안에 담긴 메시지를 중요시하는 그에게는 전시 기획이 예술의 의미를 끝까지 추적하며 쉽게 풀어내는 탐구의 과정이다. 특히 예술과 그래픽디자인의 경계가 모호한 현대미술을 다루며, 무엇이 미술을 미술답게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전시를 진행한다.

그의 이력은 다소 특이하다. 학부는 미국의 조지워싱턴대 정치학과(Political Science)를 졸업했다. 학부 시절 히틀러, 마르크시즘, 사회주의 등을 배우면서 ‘정치와 예술’을 주제로 에세이를 리포트한 것이 예술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다. 그 이후 예술에 푹 빠져 미술사 등 예술과 관련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그러나 졸업 후 바로 미술 분야로 진입하지는 못했다.

경제를 아는 것이 모든 일의 기본이라는 부친의 가르침 덕에 고등학교 때부터 주식 투자를 했다는 그는 한때 금융계에 몸담기도 했다. 금융 컨설팅 회사에서 자금 유치를 담당할 무렵, 뉴욕에서 아트 컨설팅을 하고 있는 그의 누나가 현대미술품을 수집하는 본격적인 컬렉팅을 제안했다. 결국은 아트 디렉터로 정착했고 개인적으로 여전히 컬렉터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올해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컬렉터의 선택’ 전시에 자신의 소장품들을 출품하고 직접 큐레이팅하기도 했다.

‘예술 접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마음’

“저에게 예술은 단지 아름답고 예뻐서 끌리는 대상이 아닙니다.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원인 모를 공허함을 느끼지만 예술을 통해 유한한 인생 속에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트 디렉팅을 하면서 누군가와 공감하고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기분 좋습니다. 손바닥 만한 작품에서도 자신만의 만족을 찾을 수 있다면 누구나 예술을 마주할 자격이 충분합니다.”

예술을 접할 때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진심’이다. 장난처럼 보이는 예술에도 진실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작품을 포장하고 과장하는 작가는 오래가지 못하며 작가를 후원하는 디렉터나 접하는 대중 역시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전시를 통해 디렉터, 작가, 대중 모두가 성장할 수가 있다.

“예술을 표면적으로 바라볼 때 가장 속이 상합니다. 예쁘면 착할 것이고, 돈 많은 집안에서 자랐으면 교육을 잘 받았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외모와 물질 지상주의적인 시선으로 예술을 볼 수는 없지요. 쉽게 보이는 전시에서도 오랜 세월 진심을 담은 많은 노력을 읽어내 주었으면 합니다.”

그는 누구나 자신만의 감수성으로 예술을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고 제쳐두지 말고 작가와 자신의 감수성을 비교하며 질문을 던지기 바란다. 작품을 소개하는 글을 함께 읽으며 관람객 스스로 해답을 발견하는 일이 필요하다. 예술을 대할 때는 작가의 메시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당부다.

그가 현재 준비하고 있는 전시는 9월에 있을 T.A.Z다. 일주아트센터에서 1년에 한 번 마련하는 전시회로,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1층이 깜짝 변신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건축가, 사진가, 조각가 3인을 한데 묶어 각기 비슷하면서 또 다른 언어를 전달할 수 있게 했다. 그는 공들인 전시가 시작되는 날에는 허탈감을 느낀다고 할 만큼 이번에도 모든 것을 쏟아 부어 구석구석 흠 없이 준비하고 있다.

“컬렉팅과 디렉팅을 하면 할수록 작가와 예술, 사회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자신과 통하는 사람, 또 자기 자신을 매번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이니까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평생 예술을 떠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약력: 1971년생. 1995년 조지워싱턴대 졸업. 마르코 파파 ‘Auto Sacrifice’ 기획. 대림미술관 ‘컬렉터의 선택: 컬렉션2’ 참여.

김희연 객원기자 foolf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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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7-08-01 1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