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을 위한 패션 제안

최근 기르기 시작한 ‘직딩(직장인을 일컫는 은어)’ A 대리의 콧수염은 직장 내 단연 화젯거리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콧수염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되곤 하는데 가끔씩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흐뭇해지곤 하는 A 대리였다.하지만 문제는 지나친 간섭과 곱지 않은 시선이다. 특히 상사들의 직접적인 지적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A 대리는 오늘도 잠들기 전 내일 눈을 뜨면 면도를 할까 말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A 대리의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의외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최근 정보기술(IT) 업계나 광고 업계 등 창의적인 업무를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는 자유로운 차림을 권장하지만 좀 더 조직화되고 체계적인 지휘 체계를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는 옷차림에 있어서 어느 정도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이 부분에서 필자는 케케묵은 질문을 하려고 한다. 과연 개인의 개성은 조직의 통일성에 악영향을 미치는가.미국이나 일본 등의 선진국의 경우 슈트를 입으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나타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는 그들이 슈트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도 여러 종류의 스타일이 존재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그에 맞게 자신의 헤어스타일, 타이, 구두 등의 아이템을 매치해 자신을 표현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개성의 추구가 자연스러운 일이며 직장에서도 문제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필자는 한국 남성들의 패션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결코 미국이나 일본 남성들에 비해 뒤처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보다는 단체를 우선시하는 한국인 특유의 결속력이 패션에 대한 과감성을 축소시키지 않았나 싶다.과거 한국 사회는 결속력을 중요시했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데 원동력이 되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개념도 같이 변화해 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과거의 결속력은 마치 군대처럼 누구 하나 모난 행동 없이 같은 뜻으로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수많은 개성들이 모여 융화되기도 하고 부딪치기도 하면서 예측할 수 없는 최고의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개개인의 개성들은 단체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개성은 존중돼야 마땅하고 끊임없이 발전 돼야만 한다.하지만 아직도 패션에서 만큼은 이러한 개성이 존중 받지 못하고 있다. 의견도, 아이디어도 개성이 요구되는 요즘, 하필 겉모습에 대한 제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특히 수염의 경우 수천 년간 수염을 기르는 것을 당연시하던 우리 민족이 단 100여 년 기간 동안 수염을 기르지 않았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이토록 바뀐 것은 놀라운 일이다. 수염 기른 남자는 방탕하다거나 불성실하다는 식의 편견은 개인에게도 사회적으로도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수염뿐만이 아니다. 조금만 튀는 색상의 타이를 매면 너무 요란하다는 식의 지적은 너무 고루해 보인다. 트렌드를 따른 타이트한 슈트를 보는 싸늘한 시선 역시 마찬가지다. 어째서 평생을 같은 스타일의 슈트를 입어야 하는가.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직장인들의 브리프 케이스가 천편일률적으로 생긴 이유는 그것들이 사용의 편의상 가장 이상적인 디자인이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웬만해서는 튀지 않으려는 직장인들의 습성 때문이다.브라운 컬러의 날렵한 윙팁 구두를 보면서 감탄하는 남성에게 직접 신으라고 하면 고개를 젓는 이유는 그 구두가 직장 내에서 얼마나 주목을 받게 될지 알기 때문이다. 또한 향수를 뿌리고 출근하는 날에는 왜 꼭 여자 만나러 가느냐는 둥의 질 낮은 농담을 들어야 하는가. 남자들의 패션 중 가장 민감한 부분인 헤어스타일에 있어서는 더욱 심하다.직장인들에게 있어 헤어스타일의 변화란 지구와 소행성이 충돌하는 일 만큼이나 드문 일이다.직장 내에서 제재를 받는 일들은 이처럼 수두룩하다. 이러한 상황은 개성보다 단체를 중시하는 사회 풍토로 인해 패션을 경시하는 현상 때문이거니와 그런 상황을 당연시 여길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안일함에도 문제가 있다.특히 개성을 꾸밀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어찌 보면 기본권을 박탈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런 문제를 당연히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위험한 발상이다.필자의 회사 ‘오피스 에이치’의 K 팀장은 머리를 거의 밀어버린, 일명 ‘스킨헤드’의 헤어스타일을 입사 전부터 고수해 왔다. 그리고 그는 첫 입사 면접에서도 머리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면 입사를 거부하겠다고 당당히 밝혔고 난 그러한 그의 확고한 자기 주관이 마음에 들어 채용한 바 있다.이런 그의 헤어스타일은 개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남과 확연히 구분지어 주는 트레이드마크가 됐으며 그가 더욱 크리에이티브하게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지난 2년 동안 필자는 그의 튀는 헤어스타일로 인해 회사의 조직과 사회성이 저해된 증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K 팀장의 예처럼 그 변화의 시작으로 이유 없이 금기시되는 것들에 대해 반기를 들어보자.앞서 말한 콧수염이나, 허리선이 수려한 좀 야하면서도 타이트한 슈트, 컬러풀한 과감한 넥타이, 눈에 튀는 구두, 확 느낄 수 있는 강한 향수 등이 직장 내에서 암묵적으로 금기시돼야 할 이유가 있는지 우리 조직 사회에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단지 남들과 다르게 튄다는 이유만으로 조직 사회의 협력과 조화를 해친다고 과연 그 누가 확신하며 정의할 수 있단 말인가.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그저 튀는 것과 미적으로 뛰어나서 튀어 보이는 것을 확실히 구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패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그저 튀기만 하는 옷차림은 그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일종의 공해다. 개성은 반드시 매력적이어야만 한다. 개성이 상대방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때 그 개성을 추구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직장 내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슈트 차림이 영업을 하고, 개성 넘치는 턱수염, 구레나룻, 콧수염의 샐러리맨들이 회의를 하고 앞가르마, 옆가르마 등 다양한 헤어스타일의 남성들이 경쟁하는 사회, 멋진 브리프 케이스와 구두를 칭찬하는 사회, 자신을 표현해 주는 향수가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사회, 그리고 그 안에 그보다 더 다양한 아이디어와 열정이 공존하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진정한 탈 획일화 조직 사회가 아닐까 싶다.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1994년 호주 매쿼리대학 졸업. 95~96년 닥터마틴·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대행사 오피스에이치 설립. 각종 패션지 지큐·앙앙·바자 등에 칼럼 기고. 저서에 샴페인 에세이 ‘250,000,000버블 by 샴페인맨’이 있음.황의건·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