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천 외교안보연구원장

1963년 외교관들의 교육을 위해 탄생한 외교안보연구원은 외교통상부 산하 직속 연구 기관이다. 1977년 현재의 모습으로 확대 개편되면서 그 모습을 갖춘 외교안보연구원은 30년이 넘는 역사 동안 한국 외교 안보 정책의 ‘싱크탱크’로 자리 매김해 왔다. 특히 최근에는 ‘글로벌리더십’ 과정을 설립해 타 부처의 국장급 공무원들에게도 ‘외교적 마인드’를 교육하고 있는 중이다. 2008년 말 한경비즈니스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 조사에서 외교·안보·통일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책 연구소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외교안보연구원의 이순천 원장을 만나 경쟁력의 비결과 외교적 현안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외교안보연구원의 큰 특징은 연구진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외교 정책의 입안 및 수립에 관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반관반민의 ‘1.5트랙’의 성격을 띠고 있어 민간의 뜻을 정부에, 정부의 뜻을 민간에 전달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습니다. 아울러 타 부처 공무원들을 교육하면서 각 부처와의 관계를 증진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요인은 30년 이상 축적된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며 각 연구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이룬 ‘스타 연구진’이 포진돼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현재 교수의 수가 15명, 연구원이 8명, 외교관 출신 교수가 2명입니다. 인력을 늘리는 것은 관련 법이 바뀌고 예산이 늘어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닙니다. 모자라는 연구 인력을 보강하기 위해 객원교수제와 겸임교수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박사학위를 받은 6명의 객원교수와 타 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10여 명의 겸임교수가 있습니다. 그간 우리 외교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강 위주로 이뤄졌기 때문에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에 대한 연구 인력이 부족합니다. 또 군축, 원자력 협력, 국제기구 등의 분야에 대한 충분한 인력이 없어 이런 부분을 커버하기 위해 능력 있는 분들을 모시고 있습니다.한국과 미국은 부시 정부 말기 ‘21세기 전략동맹’으로 나가기로 천명했습니다. 오바마 미 대통령 역시 ‘글로벌 동맹’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고 있죠. 이 둘은 결국 같은 말입니다. 군사적 동맹을 넘어 정치 경제 문화를 포괄하는 동맹, 한반도를 넘어 아시아와 전 세계의 이슈를 포괄하는 동맹으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다만 이 경우 우리나라가 더 많은 범세계적 이슈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책임이 느는 것도 당연하죠. 하지만 우리의 경제 규모나 국격에 맞춰 당연히 짊어져야 할 짐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이 외에 아마도 한·미 간의 가장 큰 현안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일 겁니다. 실제로 미국은 당면한 경제 위기를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당분간은 한·미 FTA가 빠르게 진행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한·미 FTA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강조점은 ‘공정무역’이지 ‘보호무역’이 아닙니다. 한·미 FTA는 양자의 이익에 따른 선택이므로 장기적으론 긍정적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봅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추진되는 미국·파나마 FTA가 올 6월 의회를 통과하고 나면 한·미 FTA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봅니다.미 국무장관이 인준 청문회에서 이 같은 취지의 말을 한 것은 청문회 과정상의 ‘필요에 의한 발언’으로 봅니다. 즉, ‘정치적 발언’인 것이죠. 또 ‘필요하다면’, 그리고 ‘한국이 원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아울러 한·미 FTA는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영역입니다. 현재 론 커크가 대표 후보자인데 아직 인준도 거치지 않았고 인준 이후에도 3~6개월은 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하므로 그 후에나 구체적인 한·미 FTA에 대한 이슈가 미국 내서 거론될 듯합니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 시스템은 전승국을 중심으로 이뤄진 ‘브레턴우즈 체제’라고 볼 수 있죠. 이 시스템을 이끌 능력과 의지를 갖췄던 미국이 최근 경제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G20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제금융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죠.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브레턴우즈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겁니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장점과 성과를 아직까지는 그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대체’가 아닌 ‘보완’ 수준일 겁니다. 아직까지 미국을 대체할 만한 나라가 없습니다.향후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연합(EU)과 브릭스(BRICs)가 포함돼 세계 금융 질서를 논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다른 이들 각자의 입장차로 인해 국제금융 질서가 전보다 약간 불안정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북한의 최근 강경 발언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은 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앞으로도 김 위원장의 활동은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질 겁니다. 이에 따른 체제 내 후계 문제 등의 갈등 요인을 무마하고 내부 결속을 이루기 위한 행동입니다.여기서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게 있습니다. ‘비핵 개방 3000’은 북한이 완전 비핵화해야 돕겠다는 게 아니라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북한이 제대로 된 ‘의지’를 보여준다면 바로 돕겠다는 내용입니다. 즉, 북한은 이 같은 상호주의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남남 갈등을 부추겨 이를 바꾸고자 하는 것입니다.또 오바마 정부에 대한 시그널로도 보입니다. 현재 미 정부의 가장 큰 관심사는 중동문제와 경제문제입니다. 사실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왔을 때 한 ‘비핵화 지지’ 발언도 미국에 대한 시그널이라 봅니다. 미국이 북한에 관심을 좀 보여 달라는 거죠.급성장하는 중국은 국제 정치 경제의 ‘화두’입니다. 이 때문에 ‘중국 위협론’처럼 이에 대한 경계도 늘고 있죠. 이런 사실은 중국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화적인 부상(화평굴기)’을 더 강조하는 것일 테죠. 사실 중국은 아직 정치 경제적으로 갈 길이 멀어요. 이 때문에 기존의 정치 질서가 아직은 크게 흔들리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한국의 최대 투자국이자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안정적으로 성장해 나가면 우리에게도 실(失)이 될 건 없습니다.새 정부가 올해로 집권 2년차에 들어섰습니다. 이에 따라 단기적 중기적 목표를 설정해 보다 새로운 연구 과제를 발굴하고, 더 많은 정책 건의에 나서겠습니다.또 그간 연구 교류가 4강 중심으로 이뤄졌던 데서 벗어나 영국 프랑스 독일 등 EU 주요국, 동남아시아의 아세안(ASEAN) 주요국, 중앙아시아의 주요국 등과 학술 교류를 넓혀갈 예정입니다. 기능적으로는 자원·에너지, 금융 및 경제 위기 극복 방안에 대한 연구를 더 확대할 계획입니다. 또 중동이슬람센터를 만들어 이 지역에 대한 연구를 강화해 민간의 진출을 도울 계획입니다. 교육 분야에서도 ‘글로벌 리더십’ 교육을 지방자치단체까지 확대해 공무원들 및 지자체 구성원들의 외교나 국가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일조할 계획입니다.1953년생. 80년 고려대 법학과 졸업. 96년 고려대 대학원 법학박사. 78년 외교통상부 입부(11회 외무고등고시 합격). 81년 주토론토영사관 영사. 89년 주핀란드대사관 참사관. 94년 주영국대사관 참사관. 2001년 주필리핀대사관 공사. 2004년 주탄자니아대사관 대사. 2008년 외교안보연구원 원장(현).정리= 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대담= 김상헌 취재편집부장 ksh1231@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