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무대서 새고전파·뉴케인지언 ‘각축’, 한국은 학파다운 학파 없어

‘우주경제학’ 나올까…진화하는 경제학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다 보면 항상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파벌’이 생긴다. 서로 견해가 달라 대립되기 때문이다. 정계에서도, 재계에서도, 마피아계에서도 파벌은 있다. 물론 경제학계에도 많은 학파가 있지만 그중 주류 경제학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전파·신고전파·신고전파종합 등이 주류 경제학에 해당된다.

18세기 후반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된 근대경제학은 데이비드 리카도와 존 스튜어트 밀의 고전파 경제학을 거쳐 부분 균형 분석의 앨프리드 마셜과 일반 균형 분석의 레옹 발라스의 신고전파 경제학으로 진화한다. 고전파와 신고전파의 가장 큰 차이는 고전파 경제학이 공급자 측면을 중심으로 경제 이론을 개발한 데 반해 신고전파는 수요자 측면을 크게 강조했고 경제학에 그래프와 수학을 본격 도입해 훨씬 과학적으로 경제학을 발전시켰다.
‘우주경제학’ 나올까…진화하는 경제학파
신자유주의 뒷받침한 새고전파
1930년대 들어 세계경제가 대불황에 빠졌을 때 존 케인스는 경제학에 새로운 거시경제 이론을 도입해 큰 파장을 일으킨다. 그래서 존 힉스, 폴 새뮤얼슨은 신고전파의 미시적 시장균형 이론과 케인스의 거시경제 이론을 버무려 신고전파종합(Neoclassical Synthesis) 경제학파를 만든다. 신고전파종합이라는 용어는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폴 새뮤얼슨이 명명한 것으로, 그의 책 ‘경제 분석의 기초’에서 1955년에 처음 언급됐다.

신고전파종합은 1960년대까지 대단한 파워를 발휘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경제 불황이 닥치자 케인스 이론 중심의 신고전파종합에 반대, 정부 개입을 줄이고 경제 운영을 시장에 맡기자는 시카고학파가 형성된다. 처음에는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량을 중시하는 통화주의(monetarism)가 득세했지만 점차 합리적 기대 중심으로 한 로버트 루카스의 새고전파(new classical)가 바통을 이어 받는다.

새고전파는 미시경제학에 기반을 두고 거시경제학 모델을 제대로 정립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 후 새고전파에서는 에드워드 프레스콧 중심의 실물경기 변동이론도 생겨나고 폴 로머 중심의 내생적 경제성장 모델이 부상한다. 기본 이념에서 새고전파는 1990~2000년대에 미국을 풍미한 신자유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새고전파에 크게 밀린 신고전파종합은 1990년대 들어 그레고리 맨큐와 폴 크루그먼 중심으로 뉴케인지언파(New Keynesian)로 발전한다. 그래서 현재 미국의 경제학은 새고전파와 뉴케인지언파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현재 미국의 주류 경제학의 해당 대학들이 해안에 있는지, 내륙 오대호 연안에 있는지에 따라 짠물 경제학(saltwater economics), 민물 경제학(freshwater economics)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러한 분류는 스탠퍼드대의 로버트 홀이 1976년에 제안했다. 짠물 경제학은 대서양 연안의 MIT·하버드·예일·프린스턴·컬럼비아·펜실베이니아 그리고 태평양 연안의 스탠퍼드·버클리를 포함한다. 그리고 민물 경제학은 내륙 오대호 연안의 시카고·카네기멜론·미네소타·로체스터를 말한다.

해당 대학의 모든 경제학자들이 하나의 일치된 의견만 내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어떤 대학이 어떤 학파에 해당한다고 말했지만 그 대학의 모든 교수가 그 학파인 것은 아니다. 교수마다 개성이 있고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버드의 로버트 배로는 짠물 경제학파가 아니라 민물 경제학파다.


‘우주경제학’ 나올까…진화하는 경제학파
50년마다 주요 경제학 교과서 등장

어떤 것이 주류 경제학인지를 판단하는 주요 근거는 많은 대학에서 채택하는 경제학 교과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19세기 고전파의 핵심 교과서는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원론(1848년)’, 신고전파는 앨프리드 마셜의 ‘경제학원론(1890년)’이었다.

20세기 중반 들어 신고전파종합을 내세운 폴 새뮤얼슨의 ‘경제학(1948년)’이었고 현재는 짠물 경제학에 속한 그레고리 맨큐의 ‘경제학(1998년)’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주요 경제학 교과서가 평균 50년 만에 한 번씩 나온다는 점이다.

주류 경제학을 거부하는 비주류 경제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주류 경제학이 수학·물리학과 비슷하다면 생물학·심리학 같은 경제학도 있다. 행동경제학·신경경제학·실험경제학이 바로 그런 계통이다. 행동경제학인 경제학과 심리학의 만남이라면 신경경제학은 경제학·심리학·신경생물학의 만남이다. 에이모스 트버스키를 선구자로 대니얼 카너먼이 주도하는 행동경제학은 이제 주류 경제학에 점차 편입되는 추세다.

주류 경제학이 개인을 중심으로 개발됐다면 개인을 둘러싼 사회제도에 주목하는 제도학파가 있다. 이는 독일의 역사학파에서 비롯돼 소스타인 베블런 중심의 미국 제도학파 그리고 주류 경제학의 분석 방법론을 제도 분석에 채택한 신제도학파가 있다. 로널드 코스의 거래비용 이론, 게리 베커, 리처드 포스너의 법경제학, 제임스 뷰캐넌의 공공선택 이론이 모두 신제도학파에 속한다.

주류 경제학보다 개인의 선택 자유를 매우 강조하고 사회제도는 인간의 의도적 디자인이 아니라 인간 행동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오스트리아학파가 있다. 또 주류 경제학이 시장경제를 옹호하기 위한 학문이라면 자유시장 경제를 부정하고 사회주의 경제를 목표로 하는 마르크시즘이 있다. 물론 이 밖에도 인간의 경제활동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주목하는 생태경제학도 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 추세를 감안할 때 성장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생태경제학은 앞으로 지구가 위기에 빠질수록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한국에선 ‘짠물 경제학’이 득세
이런 학파들은 보통 기존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면서 시작되는데 주류 경제학에 대한 기여도가 인정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주류 경제학에 완전 편입되기도 한다. 이렇게 편입되면 자신만의 차별점이 드러나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서 소멸되기도 한다. 일반균형이론을 강조한 로잔학파가 바로 그런 경우다. 물론 자신들이 주장하는 컬러가 워낙 뚜렷하고 창의적인 학자들이 계속 나오면 시간이 지나도 계속 생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시카고학파는 정부 규제를 철저히 배제하고 개인의 선택 자유를 옹호하는 신자유주의 컬러가 워낙 뚜렷해 오랫동안 생존하고 있다.

경제학파 이름을 보면 몇 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대·이념·지역(학교)·인물의 네 가지 유형이다. 시기로는 고전파·신고전파·새고전파가 있고 이념으로는 역사학파·제도학파·자유주의학파·공리주의학파·중농학파·중상학파가 있다. 지역(학교)으로는 오스트리아학파·로잔학파·맨체스터학파·스톡홀름학파·케임브리지학파가 있다. 인물로는 케인스학파·리카도학파·마르크스학파가 있다.

한국에서도 18세기 들어 실학이 성행하면서 경제학파가 생겨났다. 경제치용학파와 이용후생학파가 바로 그것이다. 유형원으로 시작해 이익·정약용이 발전시킨 경세치용학파는 제도적 개혁을 통해 능률적인 사회를 만들자고 했다. 이들은 상공업 억제가 농업 발전에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므로 중농학파라고 불리기도 한다. 박지원·박제가가 발전시킨 이용후생학파는 기술 혁신과 생산 수단 개선을 통해 생활을 풍요롭게 하자고 주장했다. 이들은 상공업 발전이 농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해 중상학파라고 불리기도 한다.

당시 문물이 앞선 청나라를 많이 벤치마킹하자고 주장해 북학파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세도정치가 팽배해지며 이런 실학은 제대로 확산되지 못한다. 19세기 후반의 개화기에 김옥균·유길준이 개혁적인 경제혁신 정책을 내세웠지만 내우외환으로 결국 무산되고 만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20세기 후반 들어서는 서강학파, 서울대의 경제학자 3인의 이름을 딴 학파, 서구 학파를 도입한 학파들이 생겨났다. 이들 학파는 어떤 독창적인 학문을 토대로 형성된 것은 아니므로 본격적인 학파로 부르기에는 무리가 뒤따른다. 사단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1970년대 들어 남덕우·이숭윤 등 서강대 교수들이 개발경제 시대에 성장 중심의 정부 정책에 깊이 관여해 서강학파라는 이름을 얻었다. 현재 서강학파가 3세대까지 이어져 왔다는 견해도 있다.

서울대에서는 1970년대부터 조순·변형윤·이현재 교수 중심으로 각각 인물 이름을 딴 학파가 생겨났다. 조순학파는 신고전파종합 라인으로 균형적 성장과 안정을 강조한다. 서강학파가 성장을 중시한다면 변형윤의 학현학파는 효율보다 형평, 성장보다 분배를 강조해 진보 성향을 띤다. 그리고 이현재학파는 경제학 이론을 현실에 적극적으로 이용하자는 현실참여론자로, 어떻게 보면 서강학파와 기본 노선을 같이한다. 현재도 서울대의 변형윤·조순·정운찬 교수 제자들이 모여 공부방처럼 운영하는 조직은 있지만 본격적인 학파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경제학의 명칭도 시대마다 바뀌어

이 밖에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자유기업원이 선호하는 오스트리아학파와 시카고학파가 있다. 최근 타계한 김수행 씨를 비롯해 정성진 경상대 교수의 마르크스학파도 존재한다. 아직 학파라고 부르기는 이르지만 경제사학 분야에서 김낙년·이영훈 중심의 낙성경제연구소도 뉴라이트 컬러를 내며 연구 업적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 경제학계는 미국 중심의 현대 주류 경제학이 장악하고 있고 짠물 경제학과 민물 경제학 중에서 짠물 경제학이 더 주도적이다.

학파가 제대로 만들어지려면 어떤 탁월한 인물의 주도로 독창적인 이념과 사상이 정립돼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이념을 승계하는 후속 인물들에 의해 학문적으로 진화, 발전돼야 한다. 후속 인물들의 세부적인 견해는 서로 다를 수 있고 분파가 형성될 수 있지만 기본 방향에 대해서는 동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들은 서로 자주 만나 포럼에서 토론을 거치며 정기 저널·논집·책 같은 어떤 정기간행물을 발간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각개약진으로 활동하고 인맥을 통해 단지 출세 수단으로만 삼는다면 그 조직은 진정한 학파라고 부를 수 없다. 이런 면에서 국내에서 거론되고 있는 경제학파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점이 많다.

18세기 후반만 하더라도 데이비드 흄의 언급처럼 경제학은 윤리학·심리학·역사학·정치학 등과 함께 도덕과학(moral science)에 속했다. 19세기 초반 들어 부르주아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고 정치 차원에서 분배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면서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됐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들어 한계혁명(1870년대 한계효용이론을 바탕으로 전개된 경제학의 대변혁)을 거치며 정치경제학에 미적분 같은 수학이 도입되면서 보다 정교한 이론 체계를 갖춘 경제학(economics) 용어가 만들어져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앞으로 경제학 용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혹시 ‘우주경제학’으로 명칭이 바뀌는 것은 아닐까.

또 경제학파는 어떻게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진화할까.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는 탁월한 학문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학파가 언제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 ‘자본주의 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