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가수 가스라이팅 해 26억 뜯은 방송작가 …대법 "일부 다시 판단하라"
2000년대 유명 보이그룹 출신 가수 ㄱ씨를 가스라이팅 해 거액을 뜯어낸 혐의로 2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은 방송작가가 2심 판단을 다시 받게 됐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지난달 28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방송작가 ㄴ씨에게 징역 9년과 추징금 26억여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ㄱ씨는 2019년 6월 강제추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ㄱ씨와 오랜 지인이었던 ㄴ씨는 "검찰 내부에 인맥이 있으니 무혐의 처분을 받도록 도와주겠다"며 청탁 대가로 ㄱ씨에게 16억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ㄴ씨는 검사들과 친분이 없었다.

그해 12월 검찰이 ㄱ씨 사건을 무혐의로 처분하고 이 사실이 보도되자 ㄴ씨는 "돈 받은 검사들이 곤란한 상황에 처해 처분을 번복하려 한다"며 돈을 추가로 요구했고, ㄱ씨는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은 뒤 은행 통장과 비밀번호, 보안카드까지 넘겼다.

ㄱ씨는 3년 여에 걸처 총 26억여원을 건넨 뒤에야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고 ㄴ씨를 고소했고, 검찰은 지난해 7월 ㄴ씨를 사기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과 2심은 ㄴ씨의 혐의를 대부분 인정해 징역 9년과 추징금 26억여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피해액 가운데 일부는 이미 ㄱ씨에게 피해가 발생한 금액을 추후 다른 계좌로 옮긴 것뿐으로 '불가벌적 사후행위'에 해당해 처벌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ㄴ씨가 ㄱ씨를 속여 대출받도록 했고, 검사에 청탁 또는 알선한다는 대가로 이를 취득해 이미 사기와 변호사법 위반죄가 성립했다"며 "이미 취득한 대출금을 ㄱ씨의 다른 계좌를 거쳐 ㄴ씨나 다른 명의 계좌로 (일부) 이체했다고 해도 ㄱ씨에 대한 법익 침해가 추가되거나 새로운 법익 침해가 생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