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행위 끊이지 않아…딜러도 공인중개사처럼 자격 갖춰야
최근 한 인터넷 중고차 매매 사이트에서 물건(자동차)을 보고 중고차 시장을 방문한 30대 초반의 신입 사원 심재원(가명) 씨. 평소 차에 관심이 많아 인터넷에서 허위 매물 관련 소식을 접한 터라 중고차 매입에 신중을 기했다. 심 씨는 별 문제없이 중고차를 구입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며칠 후 세무서로부터 한 통의 고지서가 날아왔다. 차량 취득세 부정 과소 신고에 따른 취득세 및 가산세를 납부하라는 것이다. 졸지에 심 씨는 탈세 혐의를 받게 됐다.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근무하는 일부 중개업자(이하 딜러)를 향한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불량 딜러들이 저지른 불법행위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중고차 매매업 딜러로서 최소 자격 요건을 갖추기 위한 자격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중고차 딜러로 일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딜러가 될 수 있다. 아무런 자격 요건을 요구하지 않아 특별한 자격 없이도 개인 사업자로 등록만 하면 중고차 딜러로 활동할 수 있다. 적게는 수백만 원대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대를 오가는 고가의 물건을 알선해 주는 딜러가 전문성을 전혀 갖추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에 따른 대가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해진다. 일부 불량 딜러 때문에 다수의 소비자가 피해를 보면서 성실한 중고차 딜러들마저 매도돼 싸잡아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 매매 업체로 등록된 회사는 총 4950개, 자동차 딜러로 일하는 종사자는 3만4373명이다. 이런 가운데 몇몇 불량 딜러들이 소비자들을 우롱한 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내 중고차 시장은 이미 불신의 대명사가 돼 버린 지 오래다. 인터넷에 올라온 물건과 실제 매장을 방문했을 때의 물건이 다른 허위 매물로 중고차 시장은 수차례 홍역을 앓았지만 허위 매물은 여전히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가장 먼저 배우는 게 탈세 수법
정부는 2013년 중고차 거래의 신뢰성을 높이고 탈세를 근절하기 위해 거래 실명제를 도입했다. 2014년 1월 이후 거래되는 중고차에 대해 매도자 인감증명서에 매수자 실명 기재 발급을 의무화하고 매도자의 인감증명서가 제출돼야만 차량 이전 등록이 가능하도록 ‘자동차등록규칙’을 개정했다. 하지만 중고차 시장의 탈세는 현재도 버젓이 진행 중이다.
현재 횡행하는 영업점의 탈세 종류는 다양하다. 영업점 차량인 것처럼 속이고 매도인과 매수인을 연결하는 위장 당사자 거래, 취득세 탈세를 위한 허위 법인 이용 거래, 다운 계약서 작성, 매입 금액 및 매출 금액 과세표준액으로 신고하기 등 다양한 방식이 동원된다.
대표적인 방식은 위장 당사자 거래다. 자동차를 팔려는 매도자에게서 이전 등록에 필요한 구비 서류를 모두 받은 다음 매매 업체 명의로 이전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중고차를 구입하려는 소비자에게 불법으로 전매하는 행위다. 매매상은 매출가와 매입가 사이의 부가가치세는 물론 소득세와 인·증지세를 모두 탈루해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영업점은 소비자의 자동차 등록을 대행해 준다며 차량 취득가의 7%를 취득세 대납용으로 받은 후 실제 신고할 때는 실제 차량 가격의 66%에 불과한 시가 표준액으로 신고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취득세를 절반 가까이 줄이기도 한다. 소비자와 매매상 간의 거래 계약 기록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탈세를 도운 소비자는 나중에 차량에 문제가 생겨도 찾아가 하소연할 곳이 없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에 따르면 위장 당사자 거래 하나만으로 2012년 한 해 동안 탈루된 세액만 총 3690억 원에 달했다. 최근 집계된 공식 통계 자료는 없지만 업계 관계자들이 추정하는 중고차 시장의 한 해 탈세 규모는 대략 7000여억 원에 이른다.
인천의 한 중고차 영업점에서 5년 넘게 근무해 온 김상준(가명) 씨는 “국내 중고차 매매상 중 탈세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영업하는 곳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라며 “중고차 매매상이나 딜러가 영업에 나서기 전 가장 먼저 배우는 게 바로 탈세하는 법”이라고 털어놓았다.
위장 당사자 거래보다 더 빈번하게 발생하는 탈세 방식이 있다. 다운 계약서 작성과 과세표준액으로 신고하는 수법이다. 다운 계약서 작성은 과거 아파트 매매 당시 활용됐던 방식과 같다. 실거래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판매 계약서를 작성해 시가 표준액에 맞춰 신고하거나 그 이하로 허위 신고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차량 등록 대행을 맡기면 소비자 앞에선 정식 계약서를 작성한 뒤 취득세 납부 시 시가 표준액에 맞춰 신고해 취득세 차액을 딜러나 차량 등록 대행업자가 챙긴다.
연간 거래 건수 346만 대
다운 계약서와 비슷하지만 좀 더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게 매입 금액 및 매출 금액을 과세표준액으로 신고하는 것이다. 매매상이 취득세를 면제받기 위해 매매 금액을 실거래 금액이 아닌 시가 표준액 기준으로 조합에 상품용 차량 제시 신고를 하고 매도 신고서에도 실거래 금액이 아닌 시가 표준액 기준으로 매도 금액을 신고해 부가가치세와 소득세를 탈루한다. 취득세 차액 챙기기 역시 포함된다.
국내 중고차 시장의 연간 규모는 20조~3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국토교통부가 매달 발표하는 자동차 이전 등록 현황 통계에 따르면 중고차 거래 수는 2012년 300만 대를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 346만 대까지 늘었다. 신차 거래의 2배를 웃도는 규모다. 커진 규모만큼 관련 민원도 증가했다.
권익위가 2014년 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접수한 중고차 매매 관련 민원은 총 851건이었다. 그중 성능·상태 고지 미흡이 339건으로 가장 많았고 허위 매물 게재는 287건, 고객을 협박한 건수는 23건으로 집계됐다.
주행거리 조작, 성능 기록 불량, 사고 고지 미흡, 침수 미고지 등 중고 차량에 대한 정보를 부실하게 작성한 것이 성능·상태 고지 미흡 사례다. 소비자가 중고차 시장에서 차를 둘러보고 구매 의사를 표하지 않은 채 발길을 돌리려고 하자 딜러가 “시간을 허비했다”며 소비자에게 수고비 명목의 돈을 갈취한 사례가 고객 협박 건에 포함됐다.
불미스러운 일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자 일각에선 중고차 딜러들에게 공인중개사와 같은 자격시험을 보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부동산에 해당하는 차량을 매매·알선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소정의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현재 딜러들의 자격 제한이 없어 자격증 시험은 예전부터 논의돼 왔다”며 “중고차 시장 선진화 방안으로 자격증 시험 도입 여부를 장기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부동산을 거래하는데 일정 수준의 자격을 부과할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면서 “하지만 시장 규모가 크고 거래 건수가 많다 보니 인력이 부족해 현실적으로는 (자격시험을 도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의 중고차 딜러는 보통 1~2년 정도 ‘반짝’ 일할 때가 많다. 이직률은 무려 80%에 달한다. 자격증 시험을 도입해 진입 장벽을 높이지 않는 이상 중고차 시장을 둘러싼 불법행위는 쉽사리 근절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현기 기자 henrykim@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1042호 제공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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