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과 함께 모바일 시대를 촉발한 주역은 바로 와이파이(Wi-Fi) 기술이다. 원래 와이파이의 정식 명칭은 근거리무선통신(Wireless Local Area Network)이지만 이 기술을 자사의 제품에 적용하기 위한 기업들의 모임인 ‘와이어리스 피델리티 얼라이언스(Wireless Fidelity Alliance)’라는 단체의 이름에서 비롯된 와이파이가 자연스럽게 명칭으로 굳어졌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 유선 케이블 대신 와이파이를 찾을 정도로 와이파이는 모바일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전송속도 높이려면 대역폭 넓혀야
사실 와이파이는 등장한 지 수십 년이 넘은 오래된 기술이다. 초창기에는 와이파이의 데이터 전송 속도도 느리고 이를 지원하는 기기들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적 관심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무선 연결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고 와이파이의 성능을 개선하고 보급을 촉진하기 위한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 및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표준화 노력도 꾸준히 진행됐다. 이에 따라 와이파이의 성능이 향상됐고 많은 기업들이 와이파이가 탑재된 기기를 출시하면서 저변도 꾸준히 확산됐다. 특히 스마트폰은 와이파이가 인터넷을 위한 필수 접속 기술로 자리 잡게 만든 일등 공신이었다.
이처럼 와이파이는 대중화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사람들의 데이터 소모량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이를 지원하기 위한 데이터 전송 속도 증가에 대한 요구도 늘고 있는 것이다. 초고화질(UHD) 등 고화질 영상 콘텐츠가 늘고 있고 향후 3D 및 가상현실 등 지금보다 더욱 많은 데이터를 요구하는 콘텐츠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더욱 높은 데이터 전송 속도의 무선통신에 대한 관심도 날로 커지고 있다. 물론 와이파이 역시 전파 송수신 방식 개선 등 다양한 기술 도입을 통해 이러한 추세에 대응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한계에 도달할 가능성도 높다.
데이터 전송 속도를 늘리기 위한 핵심은 바로 전파의 1초 동안 진동 횟수, 즉 주파수의 할당 범위를 크게 늘리는 것이다. 이러한 할당 범위를 대역폭이라고 하는데, 보다 많은 대역폭을 지원할수록 전파는 데이터를 더욱 많이 실어 나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방송·국방·재난 통신 등 다양한 용도를 위해 통신에 적합한 주파수가 활용되면서 미래에는 주파수 자원이 크게 부족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
지금까지는 주로 대기 흡수가 적고 원거리 전송 능력이 좋은 100기가헤르츠(Giga Hertz) 이내의 주파수가 와이파이와 롱텀에볼루션(LTE)을 비롯한 여러 무선통신에 사용됐다. 하지만 이러한 범위 내에서 추가적인 주파수 대역폭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학계 및 기업들은 훨씬 높은 대역의 주파수를 활용하는 방안에 주목하게 됐다. 즉 100기가헤르츠 대역 이상의 주파수를 가진 전파를 무선통신에 사용하면 충분한 대역폭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1초에 1조 번 진동…투과력도 뛰어나
이런 추세에 따라 최근에는 테라헤르츠(Tera Hertz)라고 불리는 주파수 대역이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1테라헤르츠는 1초에 1조 번 진동하는 주파수를 말하는데, 통상적으로 테라헤르츠 대역은 100기가헤르츠에서 10테라헤르츠 사이의 주파수 범위를 일컫는다. 테라헤르츠 대역의 전파는 보다 낮은 주파수 대역의 전파가 투과할 수 없는 물질도 쉽게 투과하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의학과 화학 등의 물질 내부 분석, 위험물 보안 검색, 환경오염 감시 등 다양한 분야에 활발히 사용되고 있고 그 적용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2004년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과학 전문지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미래를 바꿀 수 있는 10대 기술 중 하나로 테라헤르츠 전파 기술을 선정하기도 했고 한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들도 테라헤르츠 전파 연구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특히 무선통신의 관점에서 테라헤르츠 전파는 주파수 대역을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손꼽힌다. 테라헤르츠 전파의 범위는 기존 주파수보다 매우 넓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매우 큰 용량의 데이터도 눈 깜짝할 사이에 보낼 수 있다. 그러므로 많은 전문가들은 테라헤르츠 전파를 무선통신에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면 데이터 폭증을 해결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테라헤르츠 전파를 활용한 무선통신은 번번이 상용화의 길목에서 주저앉았다. 테라헤르츠 전파는 다른 전파와 달리 직진성이 매우 강하고 대기 중에 흡수되기 쉬우므로 도달거리가 매우 짧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테라헤르츠 전파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수신할 수 있는 송수신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반도체 기술이 요구되는 등 개발 과정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주파수 대역에 비해 무선통신 활용이 어려운 영역으로 분류돼 왔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테라헤르츠를 이용한 무선통신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늘고 있다. 무엇보다 사물인터넷이나 빅 데이터 등 정보의 유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주파수 부족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미개척 상태인 테라헤르츠 전파야말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력한 대안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여전히 테라헤르츠 전파 통신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지만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테라헤르츠 대역을 새로운 통신 용도로 활용하기 위한 여러 정책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또한 학계를 중심으로 테라헤르츠 전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후지쯔, 소형 전파 송수신기 개발 성공
기업들도 여러 가전 기기에 테라헤르츠 전파 통신을 적용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후지쯔는 일반적인 스마트폰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테라헤르츠 전파 송수신기를 개발했다. 테라헤르츠 대역의 전파는 출력이 매우 작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안테나와 증폭기 등 여러 부품이 송수신기 안에 포함되면서 부피가 매우 커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후지쯔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송수신기를 개발해 스마트폰과 같은 작은 기기에서도 테라헤르츠 전파 통신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발표했다. 후지쯔의 테라헤르츠 전파 통신 기술은 300 기가헤르츠 대역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송 거리가 약 1m에 불과하지만 풀 HD(Full HD)급 이상의 고화질 영상을 수초 만에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와이파이보다 훨씬 빠른 데이터 전송 속도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주목 받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테라헤르츠 전파 통신은 여전히 미지의 분야로 남아 있다. 특히 테라헤르츠 전파 통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실리콘이 아닌 새로운 소재로 반도체를 만들고 전파 송수신을 더욱 정밀하게 제어해야 하기 때문에 소재 및 부품 등 각종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연구 성과가 축적돼야 한다. 따라서 테라헤르츠 전파 통신을 위한 반도체에서부터 이를 지원하기 위한 각종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테라헤르츠 전파 통신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부분에 걸쳐 기술 혁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에도 많은 난제가 예상되지만 테라헤르츠 전파 통신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국가와 기업 차원의 기술 개발 노력은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언제 어디에서나 콘텐츠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IT 시대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빠른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무선통신이 필수적인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테라헤르츠 전파가 처음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당시와 달리 지금은 첨단 소재 및 광학과 나노(Nano) 기술 등 각종 과학 지식도 상당히 축적된 상태다. 즉 테라헤르츠 전파 통신이 한층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도 그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만일 테라헤르츠 전파의 무궁무진한 활용이 가능해진다면 미래 모바일 시대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승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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