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희망펀드는 공익신탁 방식으로 운용된다. 기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전국에 있는 은행의 영업점을 방문해 은행 거래 신청서와 공익신탁 가입 신청서를 작성하고 기부금을 납부할 수 있다.
청년희망펀드는 청년희망재단이 운용한다. 청년희망재단은 지난 11월 5일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홈페이지도 만들었고 사업의 형태도 일단 갖췄다. 아이디어도 공모하고 각계 의견 수렴을 통해 사업을 꾸려 나갈 계획이다.
구체적인 안도 이제 막 나오기 시작했다. 청년희망재단은 우선 청년희망펀드로 우수한 중소기업 제품을 해외시장에 판매할 ‘청년 글로벌 보부상(청년 수출 전문가)’ 5000명을 육성한다.
중소기업 제품을 해외에 내다 팔 청년 세일즈맨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재단이 예상하는 청년 보부상 1인당 활동비는 연 7000만~8000만 원이다.
현재까지 청년희망펀드의 재원은 일반인들의 참여보다 사실상 대기업을 통해 마련됐다고 봐도 된다. 언론 등을 통해 발표된 바에 따르면 10억 원 이상을 기탁했거나 기탁하기로 한 기업집단의 기부 금액은 실제로 기부된 824억 원을 훌쩍 뛰어넘어 1000억 원을 웃돈다.
취지 좋지만 ‘준조세식 모금’성격
기업인 중 가장 많이 기부한 사람은 역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이 회장은 사재 200억 원을 기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포함한 사장단과 임원들도 50억 원을 따로 냈다.
삼성뿐만 아니라 상위권 대기업 오너 및 임직원도 거액을 기부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그룹 임직원이 200억 원을,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LG 임원진이 100억 원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임원진이 100억 원을, 허창수 GS 회장과 GS 임원진이 50억 원을,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과 임원진이 35억 원을,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및 신세계 임원진이 100억 원을 기부했다.
문제는 벌써부터 이 펀드의 추진 과정 및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청년 실업을 해소하기 위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 과정에서 ‘반강제적인 기부금 할당의 성격’이 너무 큰 것 아니냐는 것이다.
청년희망펀드는 노사정 대타협을 계기로 9월 15일 국무회의에서 일자리 등 청년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제안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9월 15일 1호 기부자로 일시금 2000만 원과 매달 월급의 20%(약 314만 원)를 기부하기로 했다.
1주일 뒤인 9월 22일 국내 시중 5개 은행은 21일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을 공동으로 출시했다. 이어 3대 금융그룹 회장과 시중 은행장들이 펀드에 가입했다.
하지만 곧 은행권 임직원들로부터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당초 전 국민의 자발적 참여 방식으로 기금을 조성한다고 했지만 일반인 가입이 지지부진하자 일부 은행에서 직원들에게 펀드를 강제 할당한 것이다. 실제로 금융노동조합은 “청년희망펀드는 자발적인 의사에 의한 순수한 기부로 추진돼야 한다. 강제로 할당해 본연의 취지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냈다.
기부금은 잘 늘어나지 않았다. 9월 21일부터 가입이 시작된 청년희망펀드는 9월 말까지 은행권을 중심으로 20억4200만 원이 모였지만 이건희 회장이 200억 원을 기탁한 10월 22일 전까지 약 6억 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사실 애초부터 청년희망펀드의 모금액이 저조할 것은 당연했다. 일반인들에게 청년희망펀드는 말이 펀드지 세액공제혜택만 있을 뿐 원금을 돌려받거나 수익이 배분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해답은 ‘대기업 동원’이었다. 총수들은 사재를 터는 형태로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까지 내놓았다. 총수는 둘째치고 월급을 떼어내 펀드에 가입하게 된 임직원들에게서도 볼멘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청년희망펀드는 과거에도 관 주도로 준조세 성격의 성금과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과거 평화의 댐 성금, 새마을성금 등과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는 “기업으로선 대통령의 눈 밖에 나면 안 될 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을 거스를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 정부 사업과 대동소이
실효성도 문제다. 재단은 청년보부상 지원과 함께 청년들이 하나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일자리·정부정책·취업 관련 정보를 한 번에 검색할 수 있는 ‘일자리 원스톱 정보센터’도 구축한다고 밝혔다. ‘청년희망아카데미’를 설립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이 밖에 청년희망재단은 ▷맞춤형 훈련을 알선하고 일자리로 연결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기반을 둔 인재 뱅크 구축 ▷창업 지원을 위한 멘토링 제공 ▷직업 체험과 단기 취업 기회 제공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업은 대부분이 고용노동부에서 기존에 추진하던 사업과 대동소이하다. 청년보부상 사업은 고용노동부의 케이무브(K-move) 사업과 비슷하다. 청년희망재단 측도 이를 의식해 “기존 정부 사업은 졸업(예정)자 중심의 단기 훈련(체험) 위주”라며 “케이무브 사업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머지도 그렇다. ‘맞춤형 훈련 알선 및 일자리 연계’는 고용노동부가 수년째 운영하고 있는 ‘청년취업아카데미’와 매우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 청년희망펀드엔 ‘예체능계’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또 ‘NCS 기반 인재 뱅크 구축 및 채용 연계’도 고용노동부에서 이미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비할 수 있다. 오히려 고용노동부의 기존 사업이 그 대상도 다양하고 지역, 산업 맞춤형 등 내용이 구체적이다.
이 밖에 ‘창업지원 : 창업 관련 멘토링과 창조경제혁신센터 등 연계’ 사업도 이미 고용노동부에서 시행 중인 사회적 기업과 육성 사업 및 ‘내일배움카드’ 사업과 유사하며 ‘직업 체험과 단기 취업 기회 제공’도 이미 ‘청년 강소기업 체험 프로그램’이나 특성화고 관련 사업들에 포함돼 있는 내용들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연간 2조 원 이상의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며 “그런데 1000억 원 남짓한 청년희망펀드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그는 “의지는 알겠지만 보여 주기식 행정을 하는 것보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일자리 창출에 핵심적인 법안 통과를 위해 뛰거나 노동 구조 개혁에 매진하는 것이 정부 본연의 일”이라고 말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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