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홈쇼핑 업계서 모셔 가기 경쟁
전문 매니지먼트 업체도

2015년 대한민국은 ‘쿡방(cook+방송)’ 시대다. 여기에 최고 수혜자는 단연 ‘셰프(요리사)’다.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셰프는 모두가 탐내는 귀한 존재가 됐다. ‘셰프 효과’를 노리는 유통·식품 업계는 물론 공연 업계까지 가세했다. ‘스타 셰프 레스토랑’를 차리려는 국내외 투자자들도 군침을 흘린다. 서로 시너지가 난다면 나쁠 게 없다는 분위기다. 그렇게 셰프 비즈니스에 눈뜬 이들의 과감한 베팅이 시작됐다.
최연석-이연복-정창욱 /사진=JTBC 홈페이지
최연석-이연복-정창욱 /사진=JTBC 홈페이지
“A 셰프에게 새로 오픈하는 레스토랑의 메뉴 개발, 서비스 교육 등의 컨설팅을 맡기고 5억 원을 지급했다.” 레스토랑 관계자의 말이다.

‘억소리’ 나게 높아진 셰프의 몸값을 가늠할 수 있는 최근의 한 사례다. 아무리 유명한 셰프라고 하더라도 컨설팅 비용으로 보통 7000만~8000만 원부터 1억 원대를 받는 것에 비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억 원이란 큰 비용을 셰프 한 사람에게 투자했다는 것은 그만큼 스타 셰프의 가치와 파급력을 믿는다는 방증이 아닐까.

현재 업계를 호령하는 스타 셰프 군단은 국내 2세대 셰프들이다. 가장 핫하게 떠오른 최현석(43) 엘본 더 테이블 총괄 셰프를 필두로 오세득(39) 줄라이 오너 셰프, 임정식(37) 정식당 셰프, 샘 킴(38) 보나세라 총괄 셰프, 이원일(36) 디어브레드 오너 셰프, 정창욱(35) 비스트로 차우기 오너 셰프 등 줄을 잇는다. 덩달아 2000년대 후반 두각을 나타낸 1세대 스타 셰프들도 탄력을 받았다. 스타 셰프와 시너지 효과를 원하는 업계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완판’ 보증수표…홈쇼핑서 러브콜

먼저 셰프의 본업인 식품 관련 분야에서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식품 업체와 함께 기획 상품을 내놓거나 제품의 광고 모델로 셰프가 등장하는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풀무원식품은 오세득 셰프를 내세워 2015년 10월 라면 패키지를 출시했다. 이후 한 달 동안 약 50만 개가 팔리면서 전월 대비 70% 매출 성장을 견인했다.

박준경 풀무원식품 자연은맛있다 PM은 “지금까지 풀무원은 연예인 등 셀러브리티 모델 채용 사례가 없었던 데 비해 오세득 셰프의 모델 채용은 이례적인 도전이었다”면서 “오 세프가 면요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풀무원의 라면공정법인) 비유탕면에 관심이 많아 협의점이 맞았고 결국 좋은 실적을 거뒀다”고 말했다.

셰프들의 광고 업계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식품에서부터 조리 도구·화장품·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범위도 다양하다. 광고 업계에서 셰프가 사랑받는 이유는 높은 인지도와 전문성을 지닌 이들을 통해 제품 신뢰도를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쌓은 유쾌한 이미지로 소비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 제품 호감도를 높일 수도 있다. 광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셰프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기존 계약을 연장하는 곳이 늘고 있고 모델 섭외 전쟁을 치를 정도”라고 업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광고계를 접수한 셰프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것은 최현석 셰프다. CF 한 건당 3억 원대를 웃돈다. 중식 대가로 알려진 이연복 목란 오너 셰프는 1억~2억 원, 오세득 셰프가 1억 원 정도 받는다.

홈쇼핑계에서 셰프는 ‘완판’ 행렬을 잇는 ‘미다스 손’으로 떠올랐다. 홈쇼핑 스타 상품 제작은 대개 홈쇼핑에 제품을 납품하는 식품 벤더사와 셰프가 직접 계약하고 기획 상품을 만들어 홈쇼핑 방송에 나가는 방식이다.

이연복 셰프는 벤더사 유래에프앤에스와 손잡고 ‘칠리새우&동파육’ 세트를 만들어 현대홈쇼핑에 론칭했다. 이후 두 달 만에 매출 80억 원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현대홈쇼핑 MD는 “창사 이후 식품 부문 신상품 출시 두 달 만에 8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은 처음”이라며 “일반 조리 식품 매출 달성률이 110%인 것에 비해 셰프 상품의 매출 달성률은 130% 정도”라고 설명했다.

특히 셰프들에게 홈쇼핑 사업은 단기간에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달콤한 기회다. 매출과 관계없이 받는 높은 개런티와 판매 여부에 따라 주어지는 인센티브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셰프는 “하지만 홈쇼핑은 셰프에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단기에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은 홈쇼핑만한 게 없지만 셰프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만큼 셰프가 추구하는 요리 방향을 담아 체계적이고 철저하게 준비해 제품을 제작해야 한다. 하지만 대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품질에 문제가 생기고 장기적 관점에서는 결국 셰프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위험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높아진 셰프의 명성은 공연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세대 스타 셰프의 대표 주자인 에드워드 권 랩24 셰프는 공연이 접목된 연말 갈라디너쇼를 12월 연다. 연말에 열리는 갈라디너쇼는 대개 가수들의 주 무대로, 공연 때 차려지는 음식은 이 공연을 뒷받침하는 서브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번 에드워드 권 셰프의 갈라디너쇼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갈라디너가 메인이며, 가수들의 공연이 이 디너를 뒷받침 해주는 서브 공연으로 치러진다.

기업에서 일하는 ‘월급쟁이 셰프’

셰프를 향한 기업의 러브콜도 이어진다. ‘직장인 셰프’가 된 박무현(31) 셰프가 대표적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남아프리카공화국 1위 레스토랑 ‘테스트 키친’에서 수셰프(sous chef : 부주방장)로 활동한 그는 2015년 8월부터 제주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소속이 됐다. 공식 직함은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푸드 랩(LAB) 헤드 셰프’다.

이민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대표는 “제주 지역 주민과 관광객에게 양질의 식문화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여행의 수준과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프렌치 다이닝을 기획하던 중 레스토랑 책임 셰프로 박무현 셰프를 추천 받았고, 그의 요리에 대한 열정과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확신을 느껴 영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무현 셰프는 현재 푸드 랩에서 식재료 연구, 메뉴 개발 등을 하고 있으며 2016년 6월께부터 호텔의 신규 업장인 프렌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밀리우’를 맡게 된다.

강남구 신사동의 프렌치 레스토랑 ‘컬리나리아 12538’의 백상준(33) 셰프는 오너 셰프의 길을 접고 직장인의 길을 선택했다. 오너 셰프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셰프가 식당의 경영까지 맡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컬리나리아 12538의 단골손님이었던 이미경 CJ그룹 부회장과의 인연을 계기로 CJ그룹 외식 계열사 CJ푸드빌의 수석 셰프(R&D 메뉴기획팀장)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2015년 상반기 YG엔터테인먼트 외식 계열사 YG푸즈의 R&D팀 수석 셰프로 옮겨 일하고 있다. 각 기업이 보유한 레스토랑의 메뉴 개발은 물론 ‘오너의 식탁’까지 책임지는 게 그의 책무다.

사실 셰프 중에는 기업에서 고용한 ‘월급쟁이 셰프’가 꽤 많다. 최현석 셰프 역시 ‘엘본 더 테이블(엘본인터내셔날)’에 고용된 총괄 셰프다. ‘셰프계의 성자’라는 별명이 붙은 샘 킴(38) 셰프는 ‘보나세라(FGF)’의 총괄 셰프이고 차세대 스타 셰프로 주목받는 남성렬(31) 셰프 역시 패션 디자이너 곽현주 씨가 설립한 ‘테이블스타’의 총괄 셰프를 맡고 있다. 월급쟁이 셰프지만 이미 스타 셰프 반열에 든 이들을 통해 셰프의 실력은 오너 셰프인지 아닌지의 여부로 판단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아들, 투자받아 2호점 개점

꼭 기업이 아니더라도 능력을 인정받은 셰프는 개인 혹은 특정 단체로부터 투자금을 지원 받아 레스토랑을 운영 또는 확장하기도 한다. 최근 ‘과감한 투자’가 이뤄진 곳은 김지운(29)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쿠촐로’다. 2015년 4월 이태원 해방촌길에 ‘쿠촐로’를 연 김 셰프는 단시간에 쿠촐로를 서울 맛집 궤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불과 7개월 만인 11월 한남동에 쿠촐로 2호점 ‘마렘마’를 열었다. 김 셰프가 서울 최고의 핫 플레이스인 이태원 인근에 두 개의 레스토랑을 삽시간에 오픈할 수 있었던 데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투자자인 홍석준 보광창업투자 회장과 그의 아버지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이다. 홍 회장의 정확한 투자 금액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들의 측근에 따르면 “김지운 셰프가 요리 실력이 좋아 미식가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다. 홍석준 회장 역시 이 집 단골손님이 돼 김 씨에게 2호점 투자를 제안했다”면서 “대개 대기업 오너 2, 3세들은 외식 사업 진출 시 경영에만 참여하는데 김 씨는 ‘오너 셰프’로서 남다른 능력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1인 브랜드’에서 ‘기업’으로

오세득 셰프는 1인 브랜드에서 기업화되는 과정에 서 있다. 최근 다양한 투자 제안을 받은 그는 꼼꼼히 살펴본 후 현재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레스토랑 설립을 진행 중이다.

오 세프는 “셰프에 대한 투자는 긍정적으로 보지만 유의할 점은 파트너가 자신이 가진 능력 이상의 것을 요구하거나 외식업과 셰프 업무에 대한 이해도와 전문성이 없다면 과감히 제안을 거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투자자 역시 단순히 셰프의 명성만 믿고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식당은 시장의 변화가 커서 위험 부담이 큰데다 생각보다 수익률이 굉장히 낮은 편이므로 장기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셰프 돕는 ‘매니지먼트’ 늘어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평소 요리만 하던 셰프들이 이 모든 비즈니스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일까. 체계적인 관리가 없다면 본업인 요리부터 비즈니스까지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지는 것은 불 보듯 빤한 일이다. 스케줄 관리, 콘셉트에 맞는 방송·광고·행사 등의 참여 여부, 계약서 작성과 법적인 문제까지 셰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동안 이런 전문성이 결여된 채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해 나가며 사기를 당한 셰프들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 대안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매니지먼트 모델이 생겼다. 셰프들의 커뮤니티에서 출발한 ‘플레이팅’이다. 최현석 셰프가 총괄 셰프로 있는 엘본 더 테이블의 마케팅 담당인 김진표 씨가 2015년 7월 플레이팅 법인을 설립, 총괄이사로 활동하며 셰프들의 업무 진행을 돕고 있다.

홈쇼핑에 진출한 셰프들은 계약한 벤더사가 매니지먼트를 맡는 경우가 많다. 이원일 셰프가 대표적이다. 이원일 셰프는 마케팅 유통 컨설팅 전문 회사인 ‘굿지앤’과 전속 계약했다. 이곳에서는 이원일 셰프의 홈쇼핑 기획 상품 제작과 스케줄 관리 등 ‘이원일 브랜드’에 대한 종합 마케팅 전략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굿지앤은 홍석천, 미카엘 셰프부터 ‘정형돈의 도니도니’, ‘강호동의 화통라면’, ‘김혜자의 맘’ 등의 제품을 개발한 회사다.

이성진 굿지앤 마케팅 이사는 “셰프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것은 셰프가 스스로 기획사·방송국·제조사 등 밀려오는 연락을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셰프의 콘셉트에 맞는 적절한 방송이나 행사 등의 참여 여부를 조언하고 함께 최종 결정을 내려 셰프가 본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이연복 셰프 역시 계약한 홈쇼핑 벤더사 유래에프앤에스가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다.

연예인과 결혼한 일부 셰프들은 배우자가 소속된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강레오 셰프는 뉴타입이엔티, 이찬오 셰프는 초록뱀미디어 엔터테인먼트에서 매니지먼트를 담당한다.

이처럼 많은 셰프들이 다양한 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주방을 등한시하는 스타 셰프는 없다. 스타 셰프는 주방의 치열함을 견뎌낸 요리사만이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인 것은 분명하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