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많은 직장인들은 인사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해마다 이맘때쯤 실시되는 직장인 대상 설문 조사에서도 ‘인사 평가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0~80%에 이른다. 대부분이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잘하는데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들이다.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세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가장 먼저, 실제 일을 잘하지 못했으면서 자기 혼자만 일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꼽아볼 수 있다. 둘째, 일은 잘했는데 상사가 인사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상사가 개인적인 편견이나 자기 편의대로 공정하지 않은 평가를 한 것이다. 셋째, 일은 잘했지만 정작 상사가 이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일은 자신이 다했는데 얌체 같은 동료가 자기가 한 것처럼 생색냈던 시장조사 보고서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첫째는 상사나 주변 동료들의 피드백을 통해 자기 환상에서 벗어나 확실하게 자기의 수준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둘째와 셋째다. 상사 스스로 자신이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부하 직원 쪽에서도 상사가 어떤 평가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연공서열·친분…곳곳에 ‘훼방꾼’
인사 평가에 대한 구성원들의 불만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인사 평가의 기준이나 운영 프로세스뿐만 아니라 당연히 자신을 평가한 ‘상사’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구성원들은 상사로부터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 받고 있는지 상사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혹여 상사의 평가 결과가 기대했던 것보다 낮으면 그에 대한 불만과 상사에 대해 불신을 갖기 십상이다. 그만큼 인사 평가의 공정성은 조직에서의 상하 간 신뢰는 물론 구성원의 동기부여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상사도 할 말은 있다. 사람이기에 여러 상황과 여건들을 고려하다 보면 인사 평가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순수하게 성과나 역량 수준만 보고 평가하자니 승진 대상자나 후배들이 눈에 밟히기도 한다. 또한 성과를 떠나 평소 자신을 잘 따르는 직원이 있는 반면 성과도 좋고 똑똑하지만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약해 보이는 직원들도 있다. 이런저런 요소들을 고려하다 보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인사 평가의 오류에 빠져 공정한 평가를 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을 줄이기 위해서는 인사 평가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상사 스스로가 인사 평가의 오류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부분의 대형 빌딩에는 현관에 회전문이 설치돼 있다. 보통 4개의 칸으로 된 문으로, 한 명씩 들어가 한 명씩 나오는 구조다. 1칸에 2명이 타면 비좁아 사고의 위험이 있다. 한꺼번에 몰리면 사고가 나서일까. 인사 평가도 회전문식으로 이뤄질 때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나눠 먹기, 돌려 먹기 인사다. ‘이번에는 과장 승진 대상인 김모 대리가, 내년에는 박모 대리가’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성과와 실력은 차치하고 이번엔 누구를 ‘밀어줄 것인지’에 따라 인사 평가가 영향을 받게 되는 현상인데, 이때 1년간 힘들게 일한 팀원들의 땀과 피는 거품으로 사라지게 된다.
직장 생활에서 상사가 회식 자리에 뒤늦게 도착하면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고 상사가 자리에 앉은 다음에야 사람들도 착석한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지역·성별 등 그 어떤 것보다 우선되는 것이 바로 ‘나이’다.
연장자를 우대하는 한국 기업의 특성상, 아니 정서상 나이가 많고 직급이 빠르고 근속 연수가 높은 사람을 감히 홀대해서는 안 되는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인사 평가에서도 일단 나이·직급·근속을 고려해 높은 사람은 최소한 평균 이상의 점수를 주고 나머지를 배분하는 방식이 종종 나타나기도 한다. ‘실력주의·성과주의’는 회사 홈페이지에 경영 이념과 방침으로만 적혀 있을 뿐 실제는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친분이나 사적 관계가 실력과 역량보다 앞설 때도 있다. ‘그래도 내 새끼 먼저인데’, ‘선배 좋다는 게 뭐야? 이럴 때 끌어주라는 것 아냐?’.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 않는가. 같은 학교, 같은 고향, 학교 후배, 입사 동기 등 끈으로 묶으려고 하면 수도 없이 많다. 이처럼 자기 사람부터 챙기는 현상도 공정한 인사 평가의 훼방꾼이다. 이런 식의 평가가 계속되면 그 ‘내 새끼’ 축에 끼지 못하는 직원들은 희망이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태생적으로 그 부류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고과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사 평가 시즌이 끝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이어서 속이 탈 때도 있다. ‘평가는 작년에 끝났는데 벌써 올해도 3개월이나 지났잖아. 왜 아직도 평가를 알려주지 않는 거지?’라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궁금해하는 직원들의 마음을 아는 걸까. 상사들은 무슨 큰 비밀이라도 혼자 꽁꽁 갖고 있는 양 공개하지 않는다. 인사 평가 결과의 공개는 직원들에게 ‘작년 당신의 농사 수확이 이렇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올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그런데 일부 상사들은 ‘내가 너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올해 어떻게 하나 두고 보겠어’라고 벼르듯이 공개하지 않고 혼자만 갖고 있다. 꼭 이런 때에는 “인사는 대외비”라는 변명을 한다. “쉽게 공개하면 팀이 풍비박산 날까 우려된다”, “네가 이해하라”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또는 “나도 공개하고 싶지만 회사 방침상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목적이 정당하고 꼭 필요하다면 개인의 발전을 위해 공개할 수 있는 것은 공개해야 한다.
직장에서도 ‘평소 점수’가 중요
이런 상사가 있다면 그냥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자기가 일한 만큼 정당하게 회사로부터 받는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직장인들이 회사를 다니는 기쁨이자 일할 의욕을 돋우는 가장 큰 것이기 때문이다.
노력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은 동기부여에 무척 중요하다. 동기부여는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과 원하는 것을 달성하면 자신에게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고 그 보상이 자기에게 의미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어우러졌을 때 가능하다.
이런 동기부여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바로 상사의 인사 평가다. 제대로 된 인사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상사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의 전략적인 접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더 나은 인사 평가를 받기 위한 방법들은 다양하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평소 자신의 점수를 차곡차곡 쌓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인사 평가 시즌에 적절히 대처하는 방법일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매일 상사로부터 평가 받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신에 대한 상사의 평가가 하루아침에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남편이나 아내와 보내는 시간보다 직장에서 상사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하지 않는가. 매일매일 상사와 마주 대하는 시간이 자신의 평가와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인사 평가 시즌에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평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상사가 전체적인 인상을 형성할 수도 있다. 이렇게 형성된 인상은 인사 평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느 조직에서나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사람보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을 선호한다. ‘이 정도면 되겠지’식의 적당주의, ‘우리 회사는 안 돼’, ‘우리 상사는 독선적이야’ 등의 부정적인 태도는 팀워크를 해칠 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까지 점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의 행동과 사고는 점염성이 강하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가 길을 가다 말고 고개를 위로 젖히고 공중을 바라보면 길을 가던 사람들의 40% 정도가 똑같은 행동한다고 한다. 그런데 공중을 바라보는 사람의 숫자가 10명이 넘으면 길을 가던 사람들의 80% 이상이 행동을 모방하게 된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행동뿐만 아니라 사고도 마찬가지다. ‘나만 잘하면 뭐해’라는 생각보다 나부터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되면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점염돼 동료, 팀, 나아가 회사 전체에 긍정적인 사고와 행동이 넘치게 된다.
상사가 부하 직원들을 평가하는 기준도 마찬가지다. 물론 일 잘하고 성과 좋은 사람들에게 좋은 점수를 주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뭐라도 하나 더 해보려는 근성과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열정을 지닌 직원에게 후한 점수를 주기 마련이다.
부하 직원들이 많다 보면 어느 한 사람만 집중적으로 살펴보기 힘들다. 전략 회의 참석, 고객 미팅, 영업 현장 방문, 행정 업무 등 하루에도 할 일이 많은 상사로서는 직원들을 한 명 한 명 세심하게 관찰하고 예의 주시하면서 그들의 역량과 성과를 일일이 따져보기 힘들다.
더욱이 상사와 부하 직원이 서먹서먹한 관계라면 상황이 더욱 악화되기도 한다. 상사에게 살갑게 다가가 하루 일과나 하고 있는 일을 세세히 말하는 직원이 아니라면 상사는 도저히 그 직원에 대해 낱낱이 파악하기 힘들다. 상사 역시 ‘먼저 다가오지 않는데,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는 다시 상사와 직원의 관계를 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상사를 잘 알지 못한다면 그에 따른 고과 역시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오해는 ‘잘 알지 못하고 성급하게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해 버리기 때문에 발생한다. 인사 평가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을 상사에게 제대로 그리고 충분히 알려야’ 한다. 상사가 모르면 직원이 적극적으로 알려줘야 한다.
직원이 자신의 한 해 동안의 업적, 실력 배양을 위한 노력, 동료들과의 팀워크 활동 등을 상사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상사가 알아서 제대로 평가해 주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흔히 속된 말로 ‘비빌 언덕이 있어야 뭐라도 하지’라는 말이 있다. 상사가 직원을 평가하려고 할 때 직원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노력과 성과를 냈는지 알아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너무 바쁜 상사…자신의 업적 알려야
아무리 일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도 증명할 만한 자료가 없으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저 좋은 이미지의 팀원으로 기억될 뿐이다. 상사도 난감하다. 잘한다고는 하는데, 뭘 어떻게 잘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함께 일해 보지 않은 이상 속속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협상 테이블을 한 번 상상해 보자. 서로의 요구 조건이나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협상이라는 것을 하는 것인데, 양쪽은 자신의 요구 조건 또는 주장을 내세우기만 하지 않는다.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수많은 자료들을 준비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주장을 예측하고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논박 자료들도 준비한다. 이런 준비된 자료들을 토대로 자기주장을 논리 정연하게 펼쳐야 승산이 있는 것이다.
인사 평가 면담도 하나의 협상 과정이다. 부하 직원의 필승 전략은 바로 한 해의 성과를 일목요연하게 작성해 제시하는 것이다. 일종의 ‘셀프 성과표’를 작성하는 것이다.
연초부터 작성한 보고서 혹은 참여한 프로젝트들, 그 밖의 다양한 성과 자료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올해 작성한 보고서의 수가 몇 개이고 그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만약 여러 직원들이 참여한 프로젝트라면 자기가 수행한 역할과 기여도 등을 자세히 정리해 두는 것이 유용하다. 상사가 프로젝트 결과를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책임과 역할을 참고해 평가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데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과거에 겪었던 경험이나 가치관, 심리적 특성 등에 따라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정답을 찾기는 무척 어렵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인사 평가가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업에서 인사 평가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상사’는 올바른 마인드로 평가에 임해야 한다.
직원들도 주어지는 평가만 바라보고 있을 게 아니라 전략적으로 정확하고 공정하게 평가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호간의 노력이 어우러질 때 신뢰가 쌓이고 건강한 조직 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조범상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bscho@lgeri.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