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사춘기’…부모가 먼저 교과서 읽어라
세상이 바뀌었으니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내성에 젖어 말로만 교육의 혁신을 외칠 뿐 근본적으로 이를 전환한 적이 없다.
별 소득도 없고 확률은 낮으며 설령 그 확률을 확보해도 길고 긴 인생을 지속적으로 행복할 수도 없다. 현재의 입시 제도는 그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망상에 근거한다. 교육은 인생 전체를 설계하고 행복을 연습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 이 상태라면 입시제도 중심의 교육에 함몰되는 한 아이도, 부모도 행복하기 어렵다. 그리고 미래의 희망도 옅어진다.

10세부터 ‘어른의 언어’로 옮겨 가
모든 대안을 마련할 수 없지만 부모가 도와 아이의 성적이나 사고를 신장시켜 주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언어 사춘기’라는 말을 들어본 이들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사춘기라고 하면 아이의 몸에서 어른의 몸으로 변해 가는 몸의 사춘기를 떠올리지만 그것보다 먼저 나타나는 게 언어 사춘기라고 한다. 교육학자 김희주 씨의 말에 따르면 그게 대략 10세쯤 된단다. 그 시기가 되면 아이의 언어에서 어른의 언어로 옮겨가는 데 이 과정을 잘 넘겨야 어른의 언어를 이해하고 사고를 확장하게 된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언어에 대한 수용력과 감도가 뛰어난 때인데, 만약 이 시기를 놓치면 어른의 언어를 습득하는 데 애로가 많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어른의 언어에 많이 노출시켜 주는 것이 좋다.

그러면 어른의 언어는 어디에 가장 많을까. 그것은 바로 책이다. 책은 구어가 아닌 문자로 이뤄진 문어이며 개념을 담고 있기 때문에 앞뒤 관계를 짚어 추론할 수 있는 시간적·심리적 여유를 주며 사고할 영역을 확장시킨다. 그런데 특히 우리는 이 시기의 읽기 훈련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언어는 순우리말과 빌려온 한자말의 이중구조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2만, 여자가 3만 단어를 하루에 발화한다고 하는데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들은 거의 순우리말 언어다. 그러니까 개념을 담고 있는 관념어 등을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셈이다. 순우리말은 감각의 표현이 매우 뛰어나다.
예를 들어 ‘노랗다’라는 말의 순우리말은 ‘노르스름하다’, ‘누리끼리하다’, ‘샛노랗다’, ‘누렇다’ 등 매우 풍부하고 다양하며 감정이 담뿍 담겼다. 하지만 ‘생각하다’의 비슷한 말을 고르라면 난감하다. ‘사고하다’, ‘숙고하다’, ‘성찰하다’ 등의 말을 한자말에서 빌려온 개념어 혹은 관념어들이다. 그러니까 일상의 언어에서는 의외로 추상·개념·관념 등을 다루는 말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 셈이다. 이러한 언어 습관에 익숙해지면 사고의 확장이 이뤄지기 어렵다.

하지만 책에는 매우 다양한 개념어들이 담겨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확장뿐만 아니라 책의 언어에 대한 친숙도를 높여 주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중요한 투자가 된다. 미국에서 3, 4학년 때 학교의 과제를 줄여 주는 것도 바로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책 읽는 훈련을 통해 독서 습관을 갖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9~12세까지 가장 중요한 그리고 미래의 교육 효과를 위한 최고의 선택은 바로 책 읽기다. 실제로 초등학교 교과서를 유심히 살펴보면 3학년 때까지는 ‘왜 이 아이가 울고 있을까요?’처럼 아주 친절하고 아이들의 언어에 맞춰 설명하는 방식이지만 4학년 이후의 교과서는 조금씩 어투가 바뀌어 ‘왜 저 아이가 울고 있는지 조사해 보고 함께 토론해 봅시다’는 식으로 어른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어투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시기를 전후해 언어 확장 능력을 키워 주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책 읽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아이는 부모를 보며 배우고 자란다. 먼저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좋다고 소문난 책을 사다가 아이에게 주면서 “이 책 꼭 읽어봐라”고 던지며 스스로 매우 교육적이라고 여기는 부모는 바람직하지 않다. 함께 읽으면서 아이가 자연스럽게 모르는 낱말을 물어볼 것이고 그 설명을 들으면서 더 많은 언어를 접촉하게 되기 때문에 매우 효과가 크다.

막무가내 학원 보내기보다 훨씬 효과
아이들이 중학교에 진학해도 학원에 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초등학교 때처럼 책만 읽히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가능하면 그 질량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좋다. 이것저것 늘리다 보면 나중에는 그만두기 어렵고 뒷감당이 쉽지 않다. 적어도 영어와 수학을 제외하고는 부모가 도와 줄 수 있는 방안이 있다. 우선 교과서를 각 두 권씩 구입해 두자.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에 책을 두고 다닌다. 그런데 시험 때도 그 과목 책을 학교에 두고 와 엄마의 속을 뒤집어 놓을 때도 있는데, 그건 깜빡 잊었다기보다 어차피 그 과목을 포기해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게 낫다고 여기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중학교부터 교과서는 대부분이 한자에서 빌려온 말들, 즉 개념어들이 주를 이룬다. 일상에서도 쓰지 않고 평소 책을 읽으면서 친숙하지도 않으니 읽으면 머리만 아프고 이해가기 어렵다고 느낀다. 그러면 그 과목이 멀어진다. 부모가 아이의 진도보다 열흘에서 보름 정도 앞서 교과서를 읽는다(뜻밖에도 부모에게도 공부가 된다). 어른이 읽으면 어떤 개념이 중요한 것인지 금세 안다. 그런 개념어들을 뽑아 아이가 있을 때 일상에서 자주 사용해 보자(절대로 그 개념어들을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된다). 아이는 낯선 말이어서 귀담아듣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귀에는 들린다. 며칠 뒤 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설명하는데 ‘어라? 어디서 들었던 말인데?’ 그러면서 귀가 솔깃할 것이다. 그리고 부모의, 부모와의 대화에서 대략 그 맥락을 추측해 봤기 때문에 그 의미를 파악하기 쉬워질 것이고 친숙해질 것이다. 그러면 전체 맥락도 이해하기 쉽고 핵심이 뭔지도 저절로 알게 된다. 그러면 그 과목들이 지겹지 않고 성적도 오른다. 중1~고1까지는 이런 방식이 제법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학원으로 떠밀어 전쟁 같은 경쟁에 아이들을 피폐하게 만들지 말고 사교육비도 줄이며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터득하도록 도와주면 의외로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하는 부모들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그 결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면 막무가내로 학원 보내는 것이 줄어들 것이고 가계의 부담도 줄 것이며 무엇보다 아이들이 조금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제도를 탓하기 전에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면 더 좋은 방안도 나올 것이다.

김경집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