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자 선행지표 ‘1.5기 신도시’
판교·동탄1·운정·한강·송도신도시는 2000년대 착공된 ‘1.5기 신도시’다. 공식적으로 판교·동탄1·운정·한강 신도시는 2003년 위례·광교·양주·평택·검단 등과 함께 지정된 2기 신도시고 송도는 같은 해 인천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신도시다. 하지만 착공 일정에서 2000년대(1.5기)와 2010년대(2기)로 구분되며 1.5기 신도시라고 불리게 됐다.

신도시 부동산 시장은 전체 부동산 시장의 바로미터 역할을 할 정도로 규모와 물량이 많다. 2000년대 중반부터 수도권에 공급되는 대부분의 아파트나 상가 등이 신도시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외환 위기 직후부터 살아난 부동산 시장의 여파로 부동산 버블의 중심에 있었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는 판교 등 몇 곳을 제외하면 미분양과 가격 하락으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신도시 위기론이 대두된 것도 이 시점이다.

최근 저금리 기조 속에서 부동산 시장에 온기가 돌자 신도시 부동산도 용틀임을 시작했다. 분양하는 단지마다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대박 행진을 이어 갔다. 실제로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서울 및 수도권 1순위 청약 마감 단지 가운데 상위 10개(청약률 기준) 중 8개 단지가 2기 신도시에서 분양된 아파트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투자자들의 시선이 다시 신도시로 집중된 가운데 일각에서는 공급과잉과 입주 물량 폭탄 등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섣부른 신도시 투자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며 “1.5기 신도시의 선행 사례를 분석하고 올바른 투자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경비즈니스는 집값 변동과 전세 가격 변동 추이 등 1.5기 신도시의 부동산 시장 흐름과 현재 상황을 살펴봤다.

송도신도시=개발 상황 살피며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부동산 투자 선행지표 ‘1.5기 신도시’
송도 신도시는 지식정보산업단지·바이오단지·글로벌캠퍼스 등 19개 단위 지구가 2020년까지 순차적으로 개발되는 수도권 최대 규모(10만1780가구) 신도시다. 2003년부터 개발이 시작돼 국제기구·기업들과 국내 대기업들이 입주했고 채드윅국제학교를 비롯해 연세대와 인천대 등이 둥지를 틀었다. 센트럴파크와 여러 문화 시설들도 자리를 잡았다. 전체 개발 일정의 70% 정도가 완성된 상태지만 아직 남은 30%를 주목해야 한다. 규모만큼이나 개발 일정이 길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 역시 장기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아파트 가격은 조성 초기인 2005~ 2007년 높게 형성됐지만 2008년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급락했다. 국제기구와 기업 입주가 지연된 것도 한몫했다. 자족 기능과 인프라의 늦은 정비가 아파트 시장에 악영향을 줬다.
이후 채드윅국제학교와 연세대 캠퍼스가 들어오면서 교육도시로서 장점이 부각, 1·2공구 일대의 아파트 가격이 안정되기 시작했고 지난해부터 분양되는 신규 아파트는 ‘완판’ 행진을 이어 가고 있다. 분양 가격 또한 3.3㎡당 1300만 원대를 회복했다. 향후 다양한 개발 호재가 완성되면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도 현실화될 수 있을 전망이다. 전셋값은 2013년 이후 크게 오르고 있다.

판교신도시=서울 접근성 강조하며 ‘부촌’ 이미지 굳혀
부동산 투자 선행지표 ‘1.5기 신도시’
판교신도시는 2000년대 초반 개발 계획이 발표될 무렵부터 강남 대체 신도시로 각광받았다. 부유층 외에 중·서민층에까지 청약 기회가 주어지면서 시장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정부는 토지거래허가구역·투기과열지구·분양가상한제 등 다양한 규제책을 내놓았다. 2007년 분양가는 3.3㎡당 1700만 원을 웃돌았고 향후 3000만 원대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010년 이후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판교의 부동산 가격도 2013년께까지 이렇다 할 상승 곡선을 그리지는 못했다. 이후 전매 제한 규정이 중대형은 1년, 중소형은 3년으로 완화되고 2014년부터 박근혜 정부의 부양책과 각종 규제 완화가 전세난과 맞물리면서 매매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현재 판교 아파트 매매가격은 3.3㎡당 2500만 원대로 강남권과 비슷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분양 임대 전환 물량까지 풀리면서 시세 상승 폭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판교는 우수한 교통 여건과 자족 기능을 바탕으로 신도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분당선 개통을 비롯해 강남 등 서울 접근성 면에서 뛰어난 점을 강조하며 부촌 이미지를 심는데 성공했고 판교 테크노밸리에는 300여 개 기업이 입주해 수요를 받쳐 줬다. 한편 판교의 전셋값은 수도권의 다른 신도시처럼 2013년 이후 급등하고 있다.

동탄1신도시=먼저 공급됐지만 동탄2에 추월
부동산 투자 선행지표 ‘1.5기 신도시’
경기도 화성시에 자리한 동탄신도시는 1990년대 수도권 정비계획으로 그려진 도시다. 수원 삼성연구단지, 기흥 삼성반도체, 화성 삼성산업단지 등과 연계해 미래형 첨단 자족 도시를 건설한다는 목표였다. 2004년 최초 분양 당시에는 3.3㎡당 700만 원대였고 대체로 순항을 거듭하며 1000만 원대를 돌파했다. 심지어 동탄신도시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초고층 메타폴리스의 분양가는 3.3㎡당 1300만~1800만 원 선까지 책정됐다. 동탄1신도시 주택 공급 가격과 매매가격은 2007년까지 폭등한 뒤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며 3.3㎡당 1100만 원 이하까지 하락했다. 이후 2013년까지 급매물 외 거래 자체가 뜸했는데, 특히 동탄2의 개발이 본격화되며 동탄1의 수요는 더욱 감소했다. 동탄2는 동탄1보다 2배 이상 규모가 크고 테크노밸리 등 자족 기능면에서도 앞선다는 평가다. KTX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호재도 동탄2에 힘을 실어 줬다.
동탄1에서 동탄2로 갈아타는 수요가 늘고 있는 이유다. 이는 쌍둥이 신도시 건설 시 개발 일정에 차이가 생기면 먼저 공급되는 신도시가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전셋값은 2013년 이후 급등하고 있다.

한강신도시=서울 접근성 떨어져 ‘베드타운’ 전락
부동산 투자 선행지표 ‘1.5기 신도시’
김포 한강신도시는 초기부터 건설사들의 ‘미분양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쓴 비운의 주인공이다. 공동주택 용지마저 미분양으로 남거나 착공이 늦어졌고 공급된 물량 역시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5만 가구에 달하는 중·대형 신도시였던 만큼 미분양의 여파는 컸다. 굴지의 메이저 건설사가 시공한 단지조차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생길 정도였다. 서울 접근성이 떨어지고 인프라도 더디게 갖춰지며 베드타운 신도시를 벗어날 수 없는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있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김포 도시철도 개통이 빨라지지 않는 이상 반전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평한다. 자족 기능을 갖추지 못한 중대형 신도시, 서울 출퇴근 불편이 가져온 결과라는 분석도 이어진다. 전셋값 상승 폭은 다른 신도시에 비해 크지 않다. 김포 내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2~3인 실수요는 어느 정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운정신도시=늪에 빠진 서울 북부 최대 신도시
부동산 투자 선행지표 ‘1.5기 신도시’
운정신도시는 서울시 북부 최대 신도시다. 1기 신도시인 일산이나 분당과 규모가 비슷하며 송도 신도시와도 입주 가구 수가 비슷하다. 파주출판단지·LCD단지가 가깝다. 일산의 노후 아파트 거주민 상당수가 운정신도시로 옮겨 갔다. 인근 교하신도시와 덕이지구·풍동지구 등 크고 작은 택지지구가 많이 들어서 시너지 효과도 기대해 볼만 했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를 피하지 못하며 미분양과 가격 하락이 장기간 지속됐다. 2013년 이후 부동산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개발 초기 대형 평형 위주의 공급이 불러온 미분양과 입주 지연 사태는 고스란히 신도시 이미지 하락으로 이어졌다. 서울 접근성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만큼 향후 전망도 불투명하다.

안민석 FR인베스트먼트 연구원은 “신도시 부동산에 투자할 때에는 전세 물량의 월세 전환 또한 눈여겨봐야 한다”며 “대부분의 주택이 월세로 공급되면 자연히 임차 경쟁이 심해질 수밖에 없고 개발 일정이 긴 신도시에서 입주 지연은 흔한 일인 만큼 수익형 투자 목적으로 신도시 부동산을 매입했다가는 공실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하철이나 수도원광역급행철도(GTX) 등 교통망이 갖춰지거나 테크노밸리 등 업무 기능이 있는 지역의 인기는 유지되겠지만 다른 지역은 더욱 신중히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병화 기자 kb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