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왕(歌王)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 킬리만자로. 하얗게 눈 덮인 킬리만자로는 뜨거운 아프리카에 신이 던져 놓은 커다란 선물이다.
[Life&into Africa] 정소라의 아프리카 속으로 '꿈을 안고 가는 길, 킬리만자로'
‘아프리카의 지붕’ 킬리만자로의 빙하는 2020년이면 모두 녹아 없어진다고 한다.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도 지구 온난화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눈 덮인 하얀 봉우리가 화산재만 가득한 칙칙한 회색 언덕으로 바뀔지도 모르는데,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킬리만자로는 오늘도 허리에 구름을 두른 채 평온하기만 하다.

“타~닥, 탁! 탁!” 프라이판 위에서 뭔가 튀는 듯한 경쾌한 소리가 캠프에 울려 퍼진다. ‘설마’했는데 잠시 후 이사야가 쟁반 가득 팝콘을 담아 왔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을 따라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해발 4600m 바라푸(Barafu) 캠프. 킬리만자로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이 캠프의 이름은 스와힐리어로 ‘얼음’이다.

4인용 간이 테이블을 펴고 둘러앉으면 딱 맞는 크기의 식당 텐트. 문이 열릴 때마다 칼바람이 비집고 들어온다. 킬리만자로의 거센 바람이 차갑고 짙은 안개를 끊임없이 밀어 올린다. 순식간에 캠프를 뒤덮은 안개 때문에 바로 옆 텐트에 가는 데도 애를 먹는다.

텐트 안에 들어앉아 있어도 추워서 덜덜 떨 지경인데 이사야는 주방 텐트와 식당 텐트를 끊임없이 오가느라 분주하다. 짭짤한 오이 수프와 빵, 콩과 당근을 넣고 뭉근하게 끓여낸 채소 스튜, 그리고 쌀밥까지. 코스 요리를 서브하듯 차례로 가져온다. 해발 4600m의 캠프에서 이보다 더 이상 훌륭한 만찬은 있을 수 없다.

따듯한 음식은 칼바람에 녹초가 된 등반팀에게 다시 활기를 찾아준다. 후식으로 오렌지를 들고 오며 이사야가 묻는다. “저녁 식사 괜. 찮. 았. 습. 니. 까?” 추위에 덜덜 떨리는 이사야의 목소리가 안쓰럽다.

이사야는 등반팀의 막내다. 가장 바쁠 수밖에 없다. 팀 내 위치는 주방 보조이지만 나이가 어려서 다른 형들이 시키는 온갖 잔심부름까지 도맡아 해야 한다. 캠핑장에 도착하면 이사야는 등에 지고 올라온 주방 살림을 내려놓기 바쁘게 텐트를 치는 다른 형들에게 잽싸게 달려간다.
바람길을 피해 텐트 자리를 잡아 놓은 뒤 촬영팀 개개인의 침낭과 개인 배낭까지 각 텐트 안에 착착 넣어준다. 언제 다 기억을 해 놨는지, 침낭과 배낭이 서로 바뀌는 일은 결코 없다. 그리고 씻을 물을 데워주는 것도 이사야의 몫이다.

이사야의 꿈은 ‘요리사’란다. 감자를 깎고 음식을 나르면서 어깨 너머 요리를 배우고 있다. 지금은 주방보조지만 킬리만자로 등반팀의 정식 요리사가 돼 더 많은 돈을 버는 게 1차 목표다. 돈이 어느 정도 모아지면 프랑스 요리를 배울 계획이다. 그의 최종 목표는 음식점을 직접 운영하는 프랑스 요리 전문 ‘셰프’가 되는 것.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 부모님을 모시고 폼나게(?) 킬리만자로에 다시 오르고 싶단다. 킬리만자로까지 무거운 짐을 메고 올라와 추위와 싸워 가며 열심히 일을 해도 벌이는 도시의 식당에서 일하는 것보다 적다. 요리사가 될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다. 요리학원에 다니며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지만 돈이 없다. 도시 식당도 자리가 없어 취직이 안 된다. 셰프를 꿈꾸는 그가 킬리만자로에 오는 이유다.
[Life&into Africa] 정소라의 아프리카 속으로 '꿈을 안고 가는 길, 킬리만자로'
이사야가 킬리만자로에 온 것처럼 킬리만자로 입구에 가면 한편에 쪼르륵 앉아 있는 현지인 구직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음식점이 즐비한 한국의 등산로와는 달리 킬리만자로에는 관리사무소와 화장실뿐이다. 음식점이나 가게가 없어 가스통부터 시작해 티스푼 하나까지 바리바리 챙겨야 한다. 산장에서 묵지 않는다면 캠핑 장비도 다 가져가야 한다.

히말라야의 셰르파처럼 킬리만자로에서는 포터가 무거운 짐을 옮겨준다. 킬리만자로의 포터가 들 수 있는 최대 무게는 20kg으로 제한돼 있다. 짐의 무게를 재고 입산 등록을 하느라 바쁜 등반객 주변을 현지인들이 기웃거린다. 무게가 20kg을 넘어 사람을 더 써야 하면 즉석에서 포터를 구하기 때문이다.

킬리만자로 입구는 일자리가 부족한 탄자니아에서 가장 빠르게 채용될 수 있는 곳이다. 선택받은 포터는 상기된 얼굴로 신발을 갈아 신고 털모자를 눌러 쓴 뒤 재빨리 등반 준비를 한다. 오늘을 놓치면 또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른다. 킬리만자로 등정 길은 히말라야나 알프스처럼 아주 가파르지는 않다. 숙달된 포터는 30~40kg의 짐도 가능하지만 20kg으로 제한하는 것은 아마도 더 많은 포터에게 일감을 주기 위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어느덧 점심때가 지나고 더 이상 등반팀이 오지 않는다. 기회를 잡지 못한 이들은 아무런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내일도 등산화와 일주일치 짐을 꾸려 게이트에 몰려올 것이다. ‘오늘은 올라갈 수 있겠지’ 하는 기대와 함께. 이들에게 킬리만자로는 꿈으로 가는 길이다.

킬리만자로 입구 ‘마랑구 게이트(Marangu gate)’에서 첫 산장인 만다라(Mandara) 산장까지 가는 길은 열대우림지대다. 하늘을 덮은 높은 나무들이 빼곡하고 안개비가 자주 내리기 때문에 항상 땅이 축축하다. 등산화를 신어도 길이 미끄럽다. 포터들은 20kg의 짐을 이고 질퍽거리는 흙길과 이끼가 낀 바위 위를 다 떨어진 운동화에 의지해 힘겹게 올라간다.

만다라 산장에서 호롬보(Horombo) 산장으로 이동하는 길에는 키 작은 관목만 드문드문 서 있을 뿐인 초원지대 ‘사헬 사바나(Sahel savannah)’가 펼쳐진다. 여기서부터는 해를 가려줄 나무도 없다. 푸석푸석한 먼지바람만 날린다. 직사광선에 입이 바싹 말라도 포터들은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걸어간다. 산장에 도착하면 그제야 근처의 개울물을 마신다. 현지 여행사들이 이윤을 조금이라도 더 남기기 위해 포터가 마실 물을 빼고 그들의 음식도 줄여 포터의 수를 최대한 줄이기 때문이다.
[Life&into Africa] 정소라의 아프리카 속으로 '꿈을 안고 가는 길, 킬리만자로'
해발 3800m인 호롬보 산장부터는 경험이 적거나 나이가 많은 포터들을 돌려보낸다. 고산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포터들을 미리 돌려보내는 것이다. 조금의 여유도 없이 필요한 최소한의 짐만 남기고, 나머지는 하산하는 포터들과 함께 내려보낸다. 그래서 마지막 산장 키보(Kibo)에 올라가면 바람만 겨우 막아주는 텐트 하나에 예닐곱 명이 끼여서 새우잠을 잔다. 포터들은 먹을 것도 부족하고 잠도 편하게 잘 수 없다. 포터의 일당은 10달러밖에 안 된다.

일주일 등반을 하면 70달러다. 국립공원에서 명시한 최저 임금이지만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서로 일자리를 구하려는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뒷돈’을 줘야 뽑히는 경우도 있다. 받는 돈은 더 적어지는데 이 돈으로 밥도 먹고 옷도 사고 자식도 키워야 한다.

킬리만자로 가이드와 포터 대부분은 차가족이다. 추위에 잘 견디고 산소가 적은 고산지대에 단련된 부족이다. 특히 머리에 짐을 이고 운반하는 데 능숙하다. 배낭은 등에 메고, 텐트는 머리에 이고, 한번에 두 가지 짐을 나를 수 있으니 포터로서는 최고다. 이번 등반팀도 90%가 차가족이었다.

탄자니아 3대 부족 중 하나인 차가족은 외모로도 쉽게 구분된다. 코를 보면 알 수 있다. 아프리카의 부족 대부분이 부시맨같이 낮고 펑퍼짐한 코를 갖고 있는 것과 달리 차가족은 장동건이나 원빈처럼 높고 오똑한 콧대를 자랑한다. 인류학적으로 볼 때 산소가 부족한 지역에 살다 보니 공기를 조금이라도 더 흡입하기 위해 코가 커졌다는 분석도 있다. 차가족의 또 다른 특징은 매운 음식을 잘 먹는다는 것.

현지인들 앞에서 라면을 끓이면 대부분 김(수증기)만 맡아도 매워서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차가족은 다르다. 라면에 김치까지 올려 먹고 남은 국물을 후루룩 마신다. 차가족은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는 산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몸에 열을 낼 수 있는 매운 음식에 익숙하다. 할러페이뇨같이 톡 쏘는 매운맛이 나는 현지 고추 ‘삐리 삐리(Pili pili)’는 차가족이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킬리만자로는 특별한 장비도 특수 훈련도 필요 없이 누구나 올라갈 수 있는 산이다. 천천히 한 걸음 또 한 걸음 옮기다 보면 어느새 킬리만자로 정상인 우후루 피크(Uhuru Peak, 5895m)다. 하지만 경사가 상대적으로 완만하다고 해서 깔봤다간 큰 코 다친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산소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조금만 발걸음을 빨리 해도 고산증에 머리가 띵해 오고 호흡이 불안정해진다. 등반대장은 일행을 향해 수없이 “뽈레 뽈레(pole pole)”를 외친다. 얼핏 ‘빨리 빨리’처럼 들리지만 정반대다. 뽈레 뽈레는 스와힐리어로 ‘천천히’라는 뜻이다. 천천히 걸어 올라가라는 얘기다. 그렇다. 킬리만자로는 천천히 가야 빠르게 올라갈 수 있는 산이다.

킬리만자로는 올라오는 데 나흘, 내려가는 데 이틀이 꼬박 걸린다. 내려오는 길도 결코 쉽지 않다. 화산재에 발이 푹푹 빠진다. 수없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다. 보다 못한 이사야가 달려와 알려준다. 팔짱을 끼고 스키 타듯이 지그재그로 내려가면 된다고. 올라갈 땐 힘으로 버텨야 했지만 내려올 때는 요령이 필요했다. 힘 안 들이고 걸었던 내리막길은 가파른 오르막길로 바뀌었고 아슬아슬하게 올라온 바위는 더 아슬아슬하게 내려가야 했다. 오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내려갈 때 잘 내려가야 비로소 성공이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서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Life&into Africa] 정소라의 아프리카 속으로 '꿈을 안고 가는 길, 킬리만자로'
정말 궁금했다. 킬리만자로에 표범이 있는지? ‘혹시 멀리서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표범은 없었다. 하이에나조차도 볼 수 없었다. 먹을 것 하나도 없는, 화산재와 빙하뿐인 킬리만자로 정상에 굳이 표범이 올라와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이에나도 마찬가지. 가왕의 팬들은 실망하겠지만 킬리만자로에서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동물은 원숭이와 새뿐이다. 초입의 우림지대를 지나면 이마저도 볼 수 없다.

킬리만자로의 추억은 표범도 아니고, 하이에나도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돼지’에 있었다. 킬리만자로 아래에 있는 작은 도시 모시(Moshi). 키티모토(Kiti moto)라는 돼지고기로 유명한 곳이다. 킬리만자로 입구, 마랑구 게이트에서 모시로 내려가다 보면 길가에 띄엄띄엄 노천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다.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 바람을 타고 밀려온다. 기름을 뚝뚝 떨어뜨리며 석쇠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 가는 돼지고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주문하자마자 즉석에서 구운 돼지고기를 쑹덩쑹덩 썰어준다. 가격은 1kg에 5000탄자니아 실링. 한화로 3000원도 안 된다. 그저 굽기만 했는데도 어쩜 이렇게 맛있을까.

탄자니아에서 가장 맛있는 돼지고기를 파는 모시지역이지만 정작 이곳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대부분 무슬림이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금기’다. 때마침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노래 소리가 흘러나온다. 돼지고기를 입에 넣으며 이 노래를 들으니 어쩐지 하면 안 되는 일을 하는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맛있는 ‘음식’을 그냥 놓고 갈 수는 없는 노릇. 마지막 한 점까지 다 먹고 가게를 나가면서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돼지고기를 왜 하필이면 무슬림이 잔뜩 있는 이 도시에서 팔지?’ 질문을 던져봤지만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을 해주지 못했다. 그것 또한 가난 속 탄자니아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려니 할 수밖에.

탄자니아의 크리스마스는 여름이다. 한국으로 치면 ‘8월의 크리스마스’인 셈이다. 아프리카 토속신앙이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고 이슬람이 넓게 퍼져 있지만 탄자니아에도 크리스마스가 있다.

호텔 로비에는 지팡이와 양말, 눈 형상의 솜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되고 음식점 안에는 형형색색의 크리스마스용 전구가 둘러진다. 아루사(Arusha) 시내 로터리 화단에서는 크리스마스 예배용 비디오를 찍는 교회 성가대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한국의 크리스마스 및 연말과 많이 다르다. 한국의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각종 송년회 모임과 크리스마스 데이트로 분주하지만 탄자니아에서는 그럴 일이 별로 없다. 회계연도가 7월에 시작되고 학교도 대부분 9월에 새 학년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연말이라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전후 탄자니아의 볼거리 즐길 거리는 따로 있다. ‘진짜 크리스마스트리’와 누우 떼다.

12월 중순을 넘어서면 빨갛게 꽃을 피운 나무들을 지천에서 볼 수 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꽃을 피우기 시작하기 때문에 탄자니아에서는 이 나무를 ‘크리스마스트리’라고 부른다. 살아 있는 자연의 크리스마스트리다.

무엇보다 12월의 탄자니아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것은 세렝게티(사파리 투어로 유명한 탄자니아 최대 국립공원)로 돌아오는 누우 떼다. 누우 떼의 대장정을 지켜보기 위해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탄자니아로 몰려온다. 12월부터 시작되는 탄자니아 관광 성수기는 이듬해 2월까지 이어진다. 누우 떼는 10월 말부터 케냐 국경을 넘어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세렝게티 남부까지 내려온다. 미네랄이 풍부한 초록 풀을 먹으며 출산 준비를 한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크리스마스처럼 탄자니아에서는 새끼 누우의 탄생을 축하할 준비를 한다.

글·사진 정소라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