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출신 지역과 캐릭터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화의 배경인 홍콩은 아직 영국에 의해 중국 정부에 반환되기 직전이다. 이들에게 홍콩은 꿈의 도시다. 큰돈을 벌어 금의환향하는 것이 대륙 사람들이 꾸는 ‘홍콩드림’이다. 반면 개혁·개방의 초기 단계에 있는 중국 대륙에 대한 이미지는 후진적인 시골 ‘깡촌’에 불과하다.
영화 초반부에 이교가 여소군에게 자신은 홍콩 사람이라고 거짓말하고 여소군이 대륙 촌놈이라며 은근히 깔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여소군을 장쑤성 촌놈이라고 무시한 이교
사실 중국은 한국의 수십 배가 넘는 면적을 자랑한다. 공식 인구만 13억 명이 넘는다. 주류인 한족(漢族) 이외에 55개의 소수민족이 있다.
이렇게 넓은 나라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중국에도 ‘지역감정’이라는 게 있을까. 있다. 그것도 옛날부터 있었다. 이교가 여소군을 장쑤성 촌놈이라고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 이런 것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일종의 지역감정이다.
‘삼국지’ 초반부에 동탁이 황제를 옆에 끼고 호가호위하던 시절 이야기다. ‘삼국지연의’의 저자 나관중은 실권자 동탁에 맞서 싸운 조조나 원소·원술 형제 등 반(反)동탁연합군을 ‘십팔로제후군(十八路諸侯軍)’이라고 칭하지만 역사적 사실이 아닌 픽션일 뿐이다.
동탁 진영과 반동탁 진영을 구성하는 중심 세력은 지역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당시 동탁을 따르는 세력은 관서(關西)의 무인 연합 세력이었고 반동탁 세력은 관동(關東)의 문인 출신 관료 연합 세력이었다. 여기서 관동과 관서를 가르는 중요한 포인트는 함곡관(函谷關)이다. 함곡관은 낙양과 장안의 중간이다. ‘삼국지의 세계’를 쓴 일본 학자 김문경에 따르면 함곡관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은 기후와 풍토, 주민의 기질이 확연히 다르다. 여기에 무(武)보다 문(文)을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까지 가세하면서 함곡관을 중심으로 동서 지역감정이 생겨났고 그것이 동탁 대 반동탁의 대립이라는 형식으로 표출됐다.
한편 중국의 고대 문명은 주로 북방에서 비롯됐다. 춘추전국시대와 이를 통일한 진시황의 진나라, 항우와 유방의 대립과 한나라의 건국 등 중국 고대 문명은 북방의 중원을 중심으로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이러한 북방 사람들의 자부심은 자연스레 남방 사람들을 미개하다고 업신여기는 남북 간 지역감정으로 발전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손권의 관우에 대한 청혼이 달리 보일 수도 있다. “관공! 그대의 딸과 네 아들을 결혼시키고 싶소!”
관우는 강남의 실력자 손권의 청혼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호랑이 새끼를 개의 새끼에게 준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소?”
지금까지는 촉나라 유비와 도원결의한 관우가 오나라에 딸을 시집보내기 싫었을 것이라거나 당시 관우의 직급이 손권보다 높았던 것을 거론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북방인인 관우의 남방인 손권에 대한 지역감정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관우 내면의 심리는 이러했을 것이다.
“감히 남방인 강동의 촌뜨기 손권이 북방의 영웅호걸인 나 관우와 같은 반열에 서겠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함곡관을 중심으로 동서 지역감정 생겨나
중국의 산동성 곡부는 공자의 고향이다. 제갈량도 산동성 낭야 출신이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에는 북방 산동성의 고고한 선비였던 제갈량이 오나라 손권의 참모 육적을 업신여기는 장면이 나온다. 도발은 육적이 먼저 했다.
“조조는 상국 조참의 후손인데, 돗자리나 짜고 짚신이나 삼던 유비가 무슨 수로 대적한단 말이요?”
“강남 사람들은 뭘 잘 모르는 것 같소이다. 고조황제(한고조 유방)께서도 일개 동네 정장으로 대업을 시작하셨는데 우리 주공께서는 황제폐하의 숙부뻘이시오.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하는 그대는 더불어 천하대사를 논할 위인이 아닌 것 같소이다. 허허허.”
이런 마음은 유비도 마찬가지였다. 오나라 손권은 자신의 여동생 손상향을 유비와 정략결혼시킨다. 나중에 상황이 틀어지자 손상향이 유비와의 사이에 난 아들을 데리고 오나라로 귀국하려고 한다. 뜻밖에 유비는 단호하다. 어차피 정략결혼인데다 남방 여자인 손권의 여동생 손상향에게 속정도 없었던 모양이다.
“손씨 부인이 굳이 돌아오려 하지 않거든 보내 드려라. 다만 내 아들은 반드시 구해오라!”
어떤 심리학자가 실험에 응한 사람들을 임의로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쪽은 빨간 모자를, 다른 한쪽은 파란 모자를 나눠 줬다. 그리고 서로의 발표 내용에 대해 평가하게 했다. 그들은 자신과 같은 모자를 쓴 그룹에 대해 더 좋은 점수를 줬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인데 다만 자기와 같은 색깔의 모자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호의적으로 평가한다. 이처럼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것은 너무나 흔해 본능처럼 느껴질 정도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자신과 같은 고향, 같은 인종, 같은 민족에게 더 호감을 느끼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반대의 감정을 가지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물며 북쪽의 위나라, 남쪽의 오나라, 서쪽의 촉나라가 사생결단하고 싸웠는데 이들 간에 지역감정이 없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히틀러처럼 다른 인종을 악마처럼 만들어 학살한다든지, 종교가 다르다고 마녀사냥 식으로 죽인다든지, 이방 민족을 박해한다든지 하는 일이 고대나 중세도 아니고 21세기 우리 당대에도 스스럼없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족 : 유교적 예법과 신분 질서가 강력하던 조선시대에 노론 집안에 태어난 아들이 과연 아버지나 가문을 배신하고 소론의 입장에 설 수 있었을까. 그것까지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당파의 이름으로 다른 당파의 사람을 핍박하고 죽음으로까지 몰아간다면 그게 문제인 것이다. 자신과 동일한 집단(내집단)과의 순수한 동일시는 언제나 환영이지만 다른 집단(외집단)에 대한 혐오나 박해는 엄중하게 다스려야 할 반인륜적 범죄가 아닐 수 없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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