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바다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교각의 완공 소식을 듣다 보면 ‘사장교(斜張橋)’ 혹은 ‘현수교(懸垂橋)’란 용어를 들을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들 교각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두 교각 모두 중앙 경간(주탑과 주탑 사이에 완전히 매달려 있는 교상 부분)이 긴 교량을 건설하는 공법으로 비슷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살펴보면 외관부터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서해대교는 국내의 대표적인 사장교
먼저 이번 사고가 발생한 서해대교는 대표적인 사장교로, 교각 위에 세운 높은 주탑(케이블을 지탱하기 위해 높이 세운 구조물)에 여러 개의 케이블이 사선으로 교량에 걸쳐진 형태를 띠고 있다. 케이블이 교량을 직접 당기는 방식으로 힘을 주탑에서 받는다.
반면 현수교는 주탑 및 앵커리지(Anchorage)로 주케이블을 지지하고 이 케이블에 현수재(Suspender 또는 Hanger)를 매달아 보강형(Stiffening Girder)을 지지하는 교량 형식을 말한다. 다시 말해 강도가 높은 가느다란 철사를 다발로 엮어 와이어로프라는 밧줄을 만들어 두 기둥 사이에 빨랫줄처럼 적당히 늘어뜨린 후 여기에 다리를 매다는 구조다.
이런 현수교는 다리의 무게를 다리 아래의 기둥이 아닌 다리 위의 철 케이블로 지탱하는 방식이 돼 다리 중앙에 기둥이 없는 특징을 가지게 된다. 이 때문에 현수교는 다리를 세우는 조건이 나쁠 때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다리가 세워지는 곳이 해협 등 수심이 깊거나 바닥이 진흙으로 돼 지지하는 기둥을 세우기 어려울 때, 해류가 빠르거나 지진의 위험이 있을 때 이 방식을 사용한다.
한국 최초의 사장교는 1984년 건설된 주경간장 344m의 진도대교이며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즈음해 한강에 건설된 올림픽대교도 사장교다. 올림픽대교는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케이블 수 24개, 주탑 높이 88m로 건설됐다. 2009년에 완공된 인천대교는 주경간 길이만 800m에 총 다리 길이는 18.38km로, 해상 구간은 사장교(1480m), 접속교(1778m)와 고가교(8400m)로 구성돼 있다.
반면 영종대교, 부산의 광안대교 및 2012년 완공된 여수, 광양을 잇는 이순신대교는 대표적인 현수교다. 이순신대교는 총연장 2260m 왕복 4차로로 건설됐는데, 충무공 탄생 연도인 1545년을 기념하기 위해 주탑의 높이를 1545m로 건설했다.
이런 대형 현수교의 등장은 19세기 후반 존 로블링에 의해 완성됐다. 우연히 잡지를 읽다가 연철제 와이어를 꼬아 만든 로프가 나왔다는 기사를 접한 그는 연철제 와이어로프를 가지고 새로운 대체 수요를 개발하던 중 현수교 건설업에 뛰어든 후 강철제 와이어로프와 평행선 케이블을 고안하는 등 현수교의 기술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이 중에서도 그의 최대 걸작은 1883년 뉴욕의 상징이 된 브루클린교의 건설이다. 세계 최초로 비선형 이론을 적용해 교량의 중앙 경간의 길이를 500m로 늘린 19세기 토목공사의 경이적인 성과물인 브루클린교는 1㎟당 112kg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강철 와이어를 최초로 사용함으로써 1㎟당 70kg밖에 견디지 못하는 연철제 와이어의 존재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냈다.
브루클린교는 바닷바람이 불어도 염분에 의한 부식을 줄이기 위해 와이어의 한 가닥 한 가닥에 모두 아연도금 처리했는데, 이 도금 기법도 현수교의 표준이 됐다. 시공된 지 126년이 된 브루클린교는 아직까지 뉴욕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관광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고 이 교량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아메리카’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이런 현수교를 만들 때 쓰이는 와이어로프는 최근 각종 산업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철강 소재로 토목 및 건설, 각종 운송·운반 장비에 이르기까지 활용 범위가 매우 넓다. 와이어로프는 경강선재(탄소 함유량이 0.4% 이상인 탄소강 선재)를 열처리한 후 신선 등 냉간 가공해 만든 경강선과 경강선에 아연을 도금한 아연도경강선을 소선으로 해 1층 또는 여러 층을 꼬아 스트랜드를 만들고 이 스트랜드 6개를 다시 심강(코어)을 중심으로 꼬아 만든 것을 말한다. 최근에는 와이어로프 자체를 심으로 한 로프심을 쓴 것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현대 토목건축의 불가사의 ‘금문교’
1996년 미국토목학회(ASCE)는 현대 토목건축물 중에서 7대 불가사의를 선정해 발표했는데, 그중 하나가 오렌지색 현수교, 바로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금문교(Golden Gate Bridge)’다. 길이 2825m, 너비 27m인 이 강철 현수교는 남단의 샌프란시스코와 북단의 마린 반도를 잇는 다리로, 1933년 착공해 1937년 완공됐다. 다리명인 ‘골든 게이트(Golden Gate)’는 샌프란시스코 만과 태평양을 잇는 목으로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와 매린 카운티를 연결한다.
금문 해협에 다리를 놓겠다는 생각은 이미 1872년부터 시작됐지만 강철 케이블을 이용한 현수교가 충분히 발전하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에 다리를 놓는다는 생각이 구체화된 것은 1916년 이후의 일이었다. 1920년대 초 이미 400여 개의 교량을 설계한 바 있는 미국의 토목공학자 조셉 B. 스트라우스는 교각의 수를 줄이는 대신 경간을 길게 만들 수 있는 강철 현수교를 제안한다. 당시까지 존재했던 경간이 가장 긴 다리보다 두 배 이상이나 긴 1280m의 경간으로 설계된 금문교는 많은 건축·토목 엔지니어들에게 위험하다는 반대에 부딪쳤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오랜 논의 끝에 구체화돼 1933년 1월 5일 대공사가 시작됐다. 스트라우스는 공사 기간 중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이곳의 빠른 조수의 흐름과 잦은 폭풍, 안개 등은 공사의 순조로운 진행을 방해했다. 실제로 공사 기간 중 화물선이 버팀 다리와 충돌하기도 했다. 또한 이 지역은 산 안드레아스 단층대에 속해 있어 지진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에 내진 설계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이에 스트라우스는 교량 건설 역사상 가장 엄격한 산업 안전 대책을 마련했다. 그는 공사 인부들이 바람에 날려 다리 밑으로 떨어져도 목숨을 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다리 밑에 안전 그물망을 설치해 무려 19명의 인부들의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개통을 불과 3개월여 앞둔 1937년 2월 17일 12명이 일하고 있던 다리 발판의 일부가 떨어져 내려 안전 그물망을 뚫고 아래로 떨어지는 바람에 10명이 목숨을 잃는 등 총 11명의 인부가 사망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1937년 5월 28일 주경간 1280m, 높이 227m의 탑에 두 개의 강철 케이블이 걸린 현수교인 금문교가 완전히 개통됐다.
총공사비용은 3500만 달러가 들었고 다리를 만든 철근 와이어는 케이블 길이가 2332m, 직경이 92cm나 됐다. 그것은 아주 얇은 2만7572개의 케이블을 꼬아 만든 큰 케이블이었고 전체 와이어의 길이는 12만8748km 길이의 강선을 꼬아 만든 것이다. 금문교에 사용된 케이블의 무게만 2만4500톤이나 들어갔다.
금문교를 통해 인류는 철강이 단순히 튼튼한 소재가 아닌 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금문교는 다리가 단순히 두 지역을 연결해 주는 수단이 아닌 미적 조형물로서의 존재감을 각인하기에 충분했다.
이종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