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업체인 KB금융지주와 한국투자증권이 본 입찰에서 써넣은 금액보다 최소 2000억 원 더 많은 2조4000억 원을 제시했다. 인수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남아있지만 일단 미래에셋증권은 이번 인수를 통해 ‘아시아 최고 투자은행’의 꿈을 현실로 실현할 수 있게 됐다.
산업은행은 2015년 12월 24일 대우증권과 산은자산운용의 패키지 인수 우선 협상 대상자로 미래에셋 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산업은행은 대우증권 매각 3대 기본 원칙으로 ‘매각 가치 극대화, 조속한 매각, 국내 자본시장 발전 기여’를 내세웠다. 미래에셋 컨소시엄을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한 것은 이런 원칙에 부합했다는 판단에서다. 통합 법인명 ‘미래에셋대우증권’ 유력
같은 날 선정 소식을 접한 박현주 회장은 “단순히 대우증권을 산 것이 아니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 자본시장의 중심’을 산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대우증권 인수에 나선 데 대해 그는 “한국 자본시장 발전에 일조하는 회사를 만들고 금융 업계를 이끌어 갈 자산 관리의 모델을 만들고 싶다”며 “자본시장에서도 투자가 왕성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대우증권 인력을 줄이지 않고 통합법인 이름도 ‘미래에셋대우증권’으로 간판을 바꿔 달 것이라고 전했다.
박 회장은 이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 발전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2020년까지 자기자본 10조 원, 세전 이익 1조 원, 세전 자기자본이익률(ROE) 10%를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뜻대로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이 합쳐지면 통합 미래에셋대우증권은 8조 원에 육박하는 자기자본을 지니게 된다. 이는 현재 자기자본 4조6044억 원으로 업계 1위인 NH투자증권에 비해 3조 원 이상 많은 압도적인 규모다. 비로소 글로벌 해외 증권사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초대형 증권사’가 탄생하는 것이다. 또한 총 고객 수는 280만 명으로 늘어나고 13만 명이 넘는 1억 원 이상의 고객도 확보하게 된다.
박혜진 교보증권 연구원은 “오프라인 위탁매매(브로커리지) 점유율 1위인 대우증권과 금융 상품 판매가 강한 미래에셋증권의 특성상 리테일 시너지 효과는 분명히 존재한다”며 “자기자본 투자 비율이 가장 높기 때문에 대우증권의 자본 여력을 통한 해외투자 활성화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차인환 하나금융투자증권 연구원도 “2016년부터 발효될 자본시장 규제법은 대형사가 위험 자산에 보다 쉽게 투자할 수 있게끔 유리하게 바뀐다”며 “경쟁 업체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규모의 증권사가 탄생하게 되면 해당 증권사는 수익률을 높게 가져갈 수 있는 해외 주식·채권·부동산 등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회장은 이번 대우증권 인수에 남다른 의지를 보였다. 통합 증권사를 통해 낼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크게 보고 그만큼 높은 인수 가격을 적어 냈다. 업계에선 “박 회장이 아니었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대우증권은 2015년 인수·합병(M&A) 시장에서의 최대어로 불렸다. 자기자본만 보더라도 대우증권은 4조3967억 원으로, 미래에셋증권(유상증자 후 3조4620억 원)보다 훨씬 많다. 새우가 고래를 삼킬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인수 기업이 자기보다 덩치가 더 큰 피인수 기업을 흡수·합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회장은 승부수를 던졌다.
박 회장 특유의 ‘뚝심’과 ‘승부사 기질’은 ‘업계 최초’, ‘신화’라는 수식어가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2007년 10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야심차게 선보인 인사이트펀드의 수익률이 반 토막 나자 시장은 ‘무늬만 인사인트인 사실상 중국 펀드’라며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인사이트펀드는 설립 7년 만인 2014년 원금을 회복했다.
박 회장의 승부수는 해외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국내 금융 투자 업계의 해외 진출은 한계가 있다는 업계의 통념을 깨고 도전한 게 바로 그다. 그리고 끊임없이 해외 사업을 밀어붙였다.
미래에셋증권은 2006년 상하이 미래에셋타워 투자, 2011년 글로벌 1위 골프 용품 업체 아큐시네트 인수, 2013년 호주 시드니 포시즌스호텔 인수 등 해외 IB 시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LBO 방식 인수는 오해”
일각에서는 이번 매각 딜의 인수 자금 조달 방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시장의 걱정을 잠재우기 위해 미래에셋증권은 2015년 9월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 3700억 원에 유상증자를 통해 9500억 원 정도를 확보해 놓았다. 여기에 앞으로 보유 자산을 처분하고 인수금융(대출) 8000억 원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미 신한은행으로부터 자금확약서(LOC)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7000억 원은 자체 자금을 활용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대우증권 노조는 2015년 12월 24일 성명서를 내고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빌린 돈은 결국 대우증권이 갚아야 하는 돈이라는 주장이다. 즉 차입인수(LBO) 방식을 통해 자기자본의 70% 이상을 인수 자금으로 쓰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이다.
미래에셋 측은 즉각 해명에 나섰다. 계획 중인 자금 조달 방안은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는 일반적인 M&A 방안이라는 설명이다. 향후 차입금을 상환하거나 회사의 자체 자금만으로 충당할 예정이어서 대우증권 노조 측이 주장하는 LBO 방식과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LBO 방식을 이용한 기업 인수는 대상 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해 인수 자금의 상당 부분을 조달한 후 대상 회사의 현금 흐름이나 자산 매각·배당·감자 등을 통해 상환하는 방식”이라며 “회사가 자금 조달 방안으로 예정하고 있는 인수금융은 대우증권의 자산을 담보로 하지 않고 직접 차입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2016년 2월에 있을 확인 실사와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이 남아 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금융위원회가 인수 회사에 대해 법적·사회적 대주주로서의 결격 사유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말한다.
앞서 일본 사모 펀드인 오릭스 프라이빗에퀴티(PE)가 현대증권을 인수하려고 했지만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차일피일 연기하자 딜 자체가 무산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래에셋증권은 이와 다르다며 큰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심사를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우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은 기업 문화, 의사 결정, 임금 체계, 수익 구조 등 이질적인 특성이 강하다”며 “두 회사 간의 물리적·화학적 결합에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차적으로는 대우증권의 기존 수익력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 합병에 따른 비용 부담 완화, 시너지를 통한 새로운 수익 창출 등의 과제를 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현기 기자 henr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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