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헌법에 통화정책의 준칙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학자는 밀턴 프리드먼이다. 그는 통화정책에 원칙이 있어야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중앙은행이나 정부는 가능한 한 통화정책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준칙주의는 현실 세계에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앙은행가와 정치인들은 중앙은행이 무언가 직접 경기를 조절하는 고매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금리 인상? 누구 마음대로" 견제 나선 美의회
2000년대 들어 앨런 그린스펀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금리 기능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재량적인 통화정책을 폈다. 대표적 케인지언의 생각이었다. 금융 위기 이후 그린스펀의 뒤를 이은 벤 버냉키 Fed 의장은 한 발 더 나갔다. 양적 완화라는 초(超)재량적 금융정책을 펼쳐나갔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Fed 권한의 비대화는 그 결과다.

“Fed의 재량적 통화정책이 금융 위기 원인”

최근 미국 공화당이 제출한 Fed 통제 법안이 미국 하원을 통과했다. 금리를 결정하는 공식이 담긴 법안이다. 이 법안은 Fed의 재량을 제한하고 통화정책에서 철저하게 정치색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다. 물론 Fed는 반발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의사 결정권을 둘러싼 논쟁은 꽤 긴 역사와 배경을 갖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빌 후이젠가 의원 등 21명이 2015년 7월 하원에 제출한 Fed 법안의 정식 명칭은 ‘2015년 중앙은행 감독과 개혁, 현대화 법안’이다. 이들 공화당 의원은 Fed가 불투명하고 예측할 수 없는 금융정책을 펼쳐 미국인과 미국 경제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Fed가 재량적 통화정책을 구사한 것이 금융 위기를 불러온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Fed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해 왔지만 이런 기조를 지나치게 오랫동안 유지하는 바람에 유동성이 급격하게 불어났고 부동산 시장 과열 등의 유동성 리스크가 크게 확대됐다는 것이다. 또 때로는 거품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금리를 급작스레 인상함으로써 실물경제를 파괴하고 금융 위기를 낳았다는 주장이다. 최근의 양적 완화 정책도 세계적으로 금융정책의 비정상화를 낳았다고 보고 있다.

후이젠가 등 의원들은 Fed가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큰 기관으로 행세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며 Fed를 감시하고 감독할 권한을 의회에 부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법안은 난상토론 끝에 발의한 지 4개월 만인 2015년 11월 19일 하원에서 찬성 241표, 반대 185표로 가결됐다. 현재 이 법안은 상원에서 심의 중이다.

무엇보다 이 법안은 기준 금리를 정해진 공식에 따라 결정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법안 2조는 금리를 네 가지 변수의 합으로 결정하도록 ‘참조 정책 규칙’이라는 공식을 명문화하고 있다. 이 규칙은 강제적이지는 않지만 의회가 이 규칙을 사용했는지 감사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강제 규칙으로 작용된다.

네 가지 변수는 이전 4분기 물가 상승률의 평균값, 국내총생산(GDP) 갭(추정 잠재 GDP-실질 GDP), 인플레이션 갭{이전 4분기 물가 상승률-목표 물가 상승률(2%)}, 물가 상승률(2%)이다. 또 GDP 갭과 인플레이션 갭에 0.5씩 가중치를 두고 있다. 2%는 미국의 목표 물가 상승률이면서 장기 균형 실질금리이기도 하다.

이 공식은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가 경제성장률과 물가 상승률에 맞춰 금리를 조정하도록 설정한 테일러 준칙을 미국 실정에 맞게 변용한 것이다. 테일러 준칙은 현재 대부분의 국가 중앙은행이 금리를 결정하는 데 쓰이고 있는 공식이기도 하다.

‘독립성 위협’…오바마는 거부 입장

법안에서는 Fed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의무화하고 대형 은행들에 보내는 각종 레터 등 자료들도 공개(5조)하도록 했다. 또한 Fed 규제에 대한 경제적 분석(8조)을 하도록 했고 모든 Fed 직원이 연봉과 재산을 공개하도록 의무화(9조)했다. 긴급 대출을 제한하는 규정(11조)도 뒀고 수출입은행에 대한 각종 통계를 의무적으로 보고(14조)하도록 했다. 또한 미국 회계감사원이 Fed를 감사하도록 의무화(2조, 13조)하고 회계감사원장이 직접 의회에 감사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Fed에 대한 감사는 지금도 하고 있지만 Fed의 금융정책 결정은 면제돼 있다. 법안은 또 ‘100년 금융위원회’를 설립하도록 규정(16조)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Fed의 정책이 과연 역사적으로 옳았는지 평가하고 Fed의 업무가 헌법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회에 보고하는 기관이다. 이 법안이 적용되면 Fed의 정책이 보다 신중해지고 예측 가능해진다는 것이 공화당 제안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Fed와 미국 정부는 이 법안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당장 Fed는 이 법안이 오히려 Fed의 독립성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재닛 옐런 Fed 의장은 의회 간부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이 법안은 Fed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이 법안이 하원뿐만 아니라 상원에서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미국 의회에는 이 법안 말고 여러 비슷한 법안이 의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과 데이비드 비터 공화당 상원의원이 2015년 5월 제출한 법안은 Fed의 최종 대부자 기능을 제약하는 내용이다.

또 Fed의 의무와 기능을 규정한 관련 법규에서 ‘고용을 늘려야 한다’는 항목을 제외할 것을 요구하거나 가장 극단적으로는 Fed의 해체를 요구하는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2015년 중앙은행 감독과 개혁, 현대화 법안’이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거부된다고 하더라도 Fed의 권한을 줄이고 준칙주의적 금리정책을 도입하려는 의회의 노력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Vitamin’ 8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