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압박에도 요지부동…신한·기업, '결사반대' 내건 강성 노조 당선
올해 금융 당국이 중점적으로 추진할 금융 개혁 과제 중 하나는 은행권의 성과주의 도입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어 연내 도입은 여전히 불투명해 보인다. 국책은행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중은행 노사가 성과주의 도입을 두고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금융 당국은 2015년부터 은행권의 호봉제를 손보겠다며 성과주의 도입 압박에 나섰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015년 12월 28일 열린 금융위원회 송년 세미나에서 “지금까지의 금융 개혁은 누구나 해야 한다고 공감하고 큰 줄기에 반대하지 않는 사안들이었다는 점에서 착한 개혁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거친 개혁’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015년 하반기부터 금융위가 추진하고 있는 직급별 연봉제 도입을 통한 은행권 성과주의 확산 등의 금융 개혁 과제들을 올해는 과감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금융 당국, 은행권 임금체계부터 ‘손질’
금융위가 추진 중인 성과주의 확산은 호봉제 중심의 현행 은행원의 임금체계를 연봉제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위는 금융권 전반으로 성과주의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은행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은행의 경직된 임금체계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은행권에서는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택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이로 인해 업무 성과에 따른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고 저성과자에게 높은 임금을 주는 관행이 생겨났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 자료에 따르면 금융업의 임금체계 중 호봉제가 차지하는 비율이 91.8%로 나타나 다른 직업군에 비해 상당히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전 산업 평균인 60.2%에 비해서는 31.6% 포인트 높은 수치다. 임금수준 또한 전 산업 평균보다 꽤 높다. 전 산업 평균을 100으로 봤을 때 2015년 금융업의 임금은 139.4로 평균을 훨씬 웃돌았다. 성과급 비율 또한 10~15% 수준에 불과하고 업무 성과에 따른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고 개인 평가가 아닌 집단 성과에 따라 지급되고 있다.
금융위는 KDB산업은행·수출입은행·IBK기업은행 등 3개 국책은행과 금융 공기업에 실질적인 연봉제를 도입한 뒤 시중은행의 전면적인 임금체제 개편을 유도할 계획이다. 특히 시중은행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IBK기업은행이 개인 성과에 따라 연봉을 매기는 ‘성과 연봉제’를 전면 도입하면 KB국민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KEB하나은행 등 시중은행들도 성과 연봉제 도입에 대한 압박을 느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에선 ‘강 건너 불구경’
금융 당국이 적극적으로 개혁 의지를 내비치고 있지만 정작 은행권의 반응은 ‘강 건너 불구경’에 가깝다. 국책은행으로서 가장 먼저 성과주의 도입의 압박을 받고 있는 IBK기업은행부터가 연봉제를 적용하는 안을 두고 노사 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IBK기업은행은 그동안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성과주의 관련 내용을 준비해 왔다.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은 지난 1월 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6년 범금융 신년 인사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올해 업무 계획에 성과주의 도입이 들어있다”며 성과 연봉제를 올해 본격적으로 도입하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IBK기업은행 노조는 ‘성과주의 결사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IBK기업은행은 올해 임금 단일 협상 테이블에 연봉제 안을 올릴 것으로 알려졌지만 험로가 예상된다. 최근 제15대 IBK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이 ‘반성과주의’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만큼 임단협을 통한 성과주의 도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나 위원장은 2015년 12월 4일 2차 결선투표에서 최종 당선됐는데 정부의 성과 연봉제 실시에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방침을 강조해 왔다.
시중은행 또한 분위기는 매한가지다. 우리은행 노사는 2015년 12월 24일 2016년 임금을 2.4% 인상하고 인상분의 0.4%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용하는 내용의 ‘2015 임금 단일 협상안’을 체결했다. 하지만 개인 평가 제도와 실적에 따른 차등 임금 피크제 등의 내용이 담긴 성과제 도입에 대해서는 향후 TF를 구성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우리은행 노조는 그동안 사측의 성과제 도입 시도에 반대하는 농성을 벌여 왔는데 사측이 성과제 도입 논의 시기를 연기하면서 극적으로 임금 협상이 타결됐다. 이 밖에 다른 시중은행들의 임단협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KB국민은행 노사는 두 달이 넘도록 임단협을 진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단순 호봉제를 폐지하고 정해진 기간 안에 승진을 못하면 기본급을 동결하는 제도인 직급별 기본급 상한제(페이밴드) 확대와 개인 성과제 도입을 놓고 노사가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KB국민은행은 2015년 연말부터 임단협을 진행하면서 페이밴드를 전 행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노조 측에 제시했다. 이 제도는 2015년 입사한 2년 차 직원들부터 적용하고 있다. 사측은 이 제도를 전 행원으로 확대하고 성과 평가 시 기존의 팀별 평가 부분을 개인 평가로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노조는 ‘승진하지 못한 직원은 퇴직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2015년 성급하게 성과제 도입을 시도해 노사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노조 간의 의견차를 좁히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KB국민은행은 2015년 10월 19일 자가 진단 서비스를 시행했는데 노조 등 직원들의 반대로 2015년 11월 3일 시행을 잠정 중단했다.
자가 진단 서비스는 영업점 직원들이 업무 능력, 당일 영업 실적, 역량 등 객관적 기준으로 스스로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직원들을 1등급부터 7등급으로 나누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노조 측은 자가 진단 서비스가 직원들에게 과도한 실적 압박을 주고 지나친 성과 중심 문화로 근로조건이 악화될 수 있다는 이유로 농성을 벌이며 저지에 나선 바 있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2015년 12월 월례 조회 때 ‘자가 진단 서비스’에 대해 언급하며 “앞으로 평가 프로세스상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겠다”고 강조하며 재시행 의사를 밝혔지만 연내 도입이 가능할지 여부조차 안갯속이다.
최근 들어 강성 노조가 등장하는 흐름 또한 은행권 성과주의 도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신한은행도 최근 ‘개인 성과 평가제 도입 저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유주선 노조위원장이 재당선됐다. 유 위원장은 “개인 성과 평가제를 통한 저성과자 퇴출 제도를 막고 정부의 금융 노동자 탄압에 맞서겠다”고 당선 소감에서 밝혔다.
시중은행과 국책은행 중에서 영향력이 큰 신한은행과 IBK기업은행 모두 성과 연봉제 도입을 반대하는 노조위원장이 선출됐다는 점은 향후 다른 은행권으로도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성과 연봉제 연내 도입, 여전히 ‘오리무중’
구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통합 문제를 놓고 노사가 극심하게 대립했었던 KEB하나은행도 당장 성과 연봉제를 도입하기엔 무리가 있다. KEB하나은행의 한 관계자는 “(성과 연봉제는)검토 대상일 뿐 은행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성과제를 도입할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바 없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KEB하나은행은 이제 막 내홍을 봉합한 단계인데 사측이 나서 굳이 또 불을 지피지는 않을 것”이라며 “아직 국책은행도 이렇다 할 액션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시중은행 대부분이 성과 연봉제를 도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2015년 11월부터 은행권의 임금체계를 개편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해 왔다. 금융위원회는 2015년 11월 3일 ‘은행의 바람직한 성과주의 확산’이라는 세미나에서 은행권의 임금체계 개편을 첫 예고했다. 임종룡 위원장은 2015년 11월 12일 열린 제14차 금융개혁회의에서 “금융 개혁의 마지막 과제는 성과주의 확산”이라며 금융권의 성과제 도입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당초 정부는 2015년 말까지 은행권에 성과제를 도입하겠다는 구상이었지만 결국 해를 넘기고 말았다. 벌써부터 올해도 분위기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금융위에서 어떤 식으로 성과 연봉제를 도입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퍼진 적이 있다. 국책은행에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전에 시중은행이 나서 성과 연봉제 시행안을 발표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성과 연봉제는 노사 간 합의점을 찾기 힘든 사안이기 때문에 연내 도입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현주 기자 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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