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동부팜한농 인수…'농약 원제'로 다국적기업 카르텔에 도전

국내 1위 동부팜한농 인수…‘농약 원제’로 다국적기업 카르텔에 도전
LG화학, 배터리 이어 농화학서 금맥 캔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선두 기업인 LG화학이 국내 최대 농업 화학 업체인 동부팜한농을 인수하면서 양사 간 합병 시너지 효과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과점하고 있는 농화학 분야가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이은 또 하나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LG화학은 1월 8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동부팜한농 지분 100%를 5152억 원에 인수하기로 최종 승인했다. 이로써 LG화학은 재무적투자자(FI)로 구성된 채권단 보유 지분 50.1%와 동부그룹 지분 49.9%를 모두 인수하게 됐다. 오는 3월까지 인수작업을 최종 마무리한다는 계획 아래 확정실사 및 기업결합심사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인수에 성공함으로써 LG화학은 그룹 내 수직 계열화를 이룰 수 있게 됐다. 현재 LG생명과학이 지닌 농약 부문 기술을 직접 제조·생산에 활용할 수 있게 돼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전망이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1월 4일 신년사를 통해 “사업 구조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미래 지향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이를 위해 에너지·바이오·무기 소재 분야 등을 포함한 미래 신성장 동력 확보에 집중해 나갈 방침이다. 쉽게 말해 문어발식 확장이 아닌 잘하는 분야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전문성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뜻이다.

M&A 기지개 켠 LG화학

동부팜한농 인수로 첫 포문을 여는 셈이다. 그동안 LG화학은 탄탄한 재무구조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인수·합병(M&A) 사례가 전무했다. 2009년 LG하우시스가 분사한 이후 단 한 차례의 M&A(자회사 흡수합병 건 제외)도 없었다. LG그룹이 국내 경쟁사에 비해 M&A에 지나치게 인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2013년 5월 수처리 필터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웅진케미칼의 M&A를 시도한 바 있지만 도레이첨단소재에 고배를 마셨다.

이번 인수건에 대해 박 부회장은 “세계적 화학기업들은 농화학 사업을 미래 주력 사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며 "LG화학도 이번 동부팜한농 인수로 농화학 사업에 진출해 선진형 종합 화학회사로 거듭날 채비를 마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반세기 이상 축적해온 LG화학의 글로벌 사업 노하우와 체계적 영업 및 구매 역량을 집중해 글로벌 톱 10 업체로 적극 육성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동부팜한농은 국내 작물 보호제 시장점유율 1위, 국내 비료 시장점유율 2위, 국내 종자 시장점유율 1위인 회사다. 2014년 말 기준 총자산 1조3043억 원, 매출액 6240억 원, 영업이익 148억 원을 기록했다. 비상장회사로서 동부그룹의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해 온 핵심 자회사 중 하나였지만 2013년 동부그룹의 유동성 악화로 FI에 지분을 내줬다.

이동욱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동부그룹이 동부대우전자를 합병하면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농화학 사업에 대한 투자에 인색했다”며 “LG화학이 인수하면서 차별화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적은 설비투자만으로도 국내 농화학 경쟁사를 크게 압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LG화학, 배터리 이어 농화학서 금맥 캔다
동부팜한농의 ‘테라도’, 해외 수출 탄력

현재 해외 굴지의 화학 업체들은 농화학 사업 확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 세계 1위 업체인 독일의 바스프를 비롯해 2015년 12월 M&A를 선언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미국의 듀퐁과 다우케미컬, 스위스 바젤에 본사를 둔 신젠타 등이 농화학으로 주력 사업을 옮겨가고 있다.

손지우 SK증권 연구원은 “해외 선진형 스페셜티 화학 업체 중 많은 수가 농업화학 부문을 갖고 있다”며 “바이엘과 듀퐁이 10조 원 이상 매출 규모와 20%의 영업 마진을 기록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손 연구원은 이어 “듀퐁과 다우케미컬은 합병 후 회사를 3개로 쪼갤 것이라고 밝혔는데 농화학 부문 분사는 확실시된다”며 “이번 M&A의 가장 큰 이유도 농화학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농화학 분야는 ‘그들만의 리그’로 알려져 있다. 소수의 글로벌 업체가 글로벌 전체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구조다. 영업 마진율이 높은데다 기술적 진입 장벽마저 높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인 듀퐁과 다우케미컬의 전격 합병에 나선 이유는 독일 기업인 바스프의 독주에 맞서기 위해서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새롭게 출범하게 될 LG화학-동부팜한농은 고부가가치인 ‘원제(原劑)’를 생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원제는 농약의 핵심 원료로 이를 개발하려면 상당한 규모의 투자비가 소요된다. 이에 따라 일부 글로벌 화학 기업들이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글로벌 화학 기업들은 원제를 생산하는 반면 국내 업체들은 이들로부터 원제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드는 이차산업에 머물러 왔다.

하지만 이번 합병을 통해 동부팜한농은 숙원 사업이었던 해외 수출용 원제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동부팜한농은 2015년 한국화학연구원과 신물질 제초제 ‘테라도’를 공동으로 개발했다. 이와 함께 일본의 농화학 업체인 이시하라 산교 가이샤(ISK)와 해외시장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테라도는 모든 잡초를 방제할 수 있는 비선택성 제초제로, 특정 잡초만 방제하는 선택성 제초제에 비해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잡초의 광합성 작용을 억제해 제초 효과를 발휘하며 기존 비선택성 제초제에 내성을 보이는 잡초들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사람이나 동물에게는 피해가 거의 없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세계 비선택성 제초제 시장 규모는 약 59억 달러(약 7조770억 원)로 추산된다.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동부팜한농은 미국·중국·유럽 등 해외 주요 21개 국가에서 테라도의 특허 등록을 완료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LG화학은 원제 사업에 관심이 높다”며 “(동부팜한농을 인수해) 국내 시장점유율 1위에 만족하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탄탄한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원제 사업을 신성장 사업으로 키워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동차 배터리와 에너지 저장 장치(ESS) 등 이차전지를 생산하면서 전기차 배터리 분야 세계 1위로 올라선 LG화학이 바이오 시장에서도 이와 같은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현기 기자 henr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