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게이오·하버드 인맥 '탄탄'…상무급 '영입 인재' 두각

‘안정 속의 변화’라고만 하기엔 그의 행보는 과감했다. 결단력도 있었고 추진력도 더해졌다. 그동안 쌓아 온 국내외 인맥을 바탕으로 사업 전략 방향을 설정하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얘기다. 이건희 회장이 자리를 비운 지난 2년 동안 그는 화학 계열사 빅딜을 성사시켰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의 합병도 일궈냈다.

디지털카메라 사업은 줄이고 평택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 증설 투자에 나서는 등 사업 재편과 선제적 구조조정도 벌였다. 소송전으로 치닫던 애플과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사업 수주로 연결했다. 2015년 말엔 사실상 처음으로 전권을 갖고 임원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신인맥(1)] 이재용의 경영 스타일은 "뿌리까지 실용"
‘훈민정음’ 고집하지 않고 MS워드 허용

그 밑바탕에 흐르는 이 부회장의 핵심 키워드는 ‘실용주의’로 통한다. 이병철 회장이 인재에 대한 믿음과 관리를 중요시한 ‘관리의 삼성’을 탄생시켰고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외치며 변화와 혁신을 꾀한 ‘창조의 삼성’을 주도한 데 비해 그는 한 손엔 ‘현장’, 한 손엔 ‘실용’을 내걸고 ‘글로벌 삼성’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2014년까지 서울 신라호텔에서 신년 하례식를 열고 신년사를 발표했던 것과 달리 이 부회장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시무식 행사를 갖지 않았다.

그 대신 지난 1월 4일 오전 경기도 용인에 있는 기흥사업장을 찾아 삼성전자 DS(부품)부문과 삼성디스플레이·삼성SDI의 주요 임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당일 오후엔 수원 디지털시티를 방문해 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 및 IM(IT·모바일)부문과 삼성SDS 임원들을 만났다.

물론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 있어 이처럼 사업 현장을 찾아 시무식을 대신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의 ‘현장 경영’과 ‘실용주의’ 정신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이는 없다.

이미 2015년에 전용기 3대와 전용 헬기 등을 처분해 때로는 항공기 이코노미석을 이용하기도 하는 그의 행보에서 실용주의는 잘 나타나고 있다. 2014년엔 삼성에서만 쓰던 워드 프로그램 ‘훈민정음’을 ‘MS워드’로 바꾸기도 했다. 2002년 삼성전자 상무보 시절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빈소에도 수행 요원 없이 혼자 아버지를 대신해 조용히 조문하는 등 이미 오래전부터 실용주의는 그의 몸에 배어 있었다.

최근 임원 인사에서 이 부회장은 자신의 경영 스타일을 완전히 입히지는 않았다는 해석도 나온다. 부친 이건희 회장이 임명한 사장단 대부분을 재신임했고 인사 폭도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안정 속의 변화’라는 말도 이어졌지만 그보다는 한 계단씩 변화를 주는 이른바 이재용만의 ‘계단형 전략’을 통해 안정을 꾀하면서도 실용적인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번 인사로 나타난 이 부회장의 경영 철학에도 언제나 사람이 중심에 있었다. 지금까지 삼성이 실행했던 ‘신상필벌’ 원칙 가운데 ‘필벌’을 단행하지 않았고 60대를 기준으로 사장에서 물러난다는 삼성의 ‘세대교체 공식’도 적용하지 않았다. 지난해 실적이 좋지 않았던 데다 60세가 넘은 삼성중공업 사장을 재신임한 게 단적인 예다. 그동안의 연륜과 노하우,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 담겼다.

그 대신 이 부회장은 기존 사업 틀을 유지하면서 스마트 카 사업과 바이오산업으로 ‘이재용 식 미래 사업’ 만들기에도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또 삼성의 힘을 집중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사업들은 모두 매각하는 과감한 결정도 했다.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은 2014년 한화에, 2015년 말에는 삼성SDI 케미칼 부문과 삼성정밀화학·삼성BP화학 등 화학 계열사를 롯데그룹에 매각했다.

한화 김동관 전무와 하버드 동문

특히 한화그룹과의 주요 화학 계열사 빅딜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와의 하버드대 인연이 막후 조정에 한몫했다는 후문이다. 이 부회장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김 전무는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또 이 부회장은 일부 계열사와 삼성생명 사옥을 매각하는 등 변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이는 사람이 아닌 물적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이런 행보를 두고 “이건희 회장이 병상 중이지만 아직 건재한 데다 갑작스러운 경영 스타일이 조직의 안정성을 해친다는 판단 때문일 것”으로 분석했다.

이 부회장은 경기초등·청구중·경복고를 나와 서울대(동양사학과)·일본 게이오대 석사에 이어 미국 하버드대 박사과정을 거치는 동안 다양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나온 경기초등학교 동문으로는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이명박 전 대통령 아들 이시영 씨, 노태우 전 대통령 딸 노소영 씨 등이 있다. 고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의 차남이자 동갑내기인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사업총괄 사장(이서현 사장 남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몽준 전 의원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 조원태 한진칼 대표 등과는 청운중 동문이다.

사촌 형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경복고 8년 선배다. 조현범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과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은 경복고 후배다. 동갑내기 사촌인 정용진 부회장과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녔다.

시진핑 주석과 보아오 포럼서 인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경복고 대선배이지만, 두 살 아래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는 학연을 떠나 어릴 적부터 절친한 사이다.

효성가의 3세인 조현준 효성 사장과는 게이오대에서 함께 공부했고 한 살 어린 조현문 동률실업 대표와는 하버드대 동문이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과 최성원 광동제약 부회장도 게이오대 동문이다.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및 윤석민 SBS미디어홀딩스 부회장은 하버드대 동문이다.

이 부회장의 글로벌 인맥도 빼놓을 수 없다. 2013년 4월엔 임기 3년의 보아오 포럼 이사로 선임됐다. 보아오 포럼은 2011년 출범한 중국 주도의 비영리·비정부 포럼으로, 매년 하이난의 휴양지 보아오에서 열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아시아의 정·재계 인사들이 참석하는 행사여서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빗대 ‘아시아의 다보스 포럼’으로도 불린다.

이 부회장은 피아트-크라이슬러 그룹의 지주회사인 엑소르의 사외이사이기도 하다. 그는 또 노르베르트 라이트호퍼 BMW그룹 회장과 마르틴 빈터코른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제프리 이멀트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래리 페이지 구글 CEO, 팀 쿡 애플 CEO 등과도 친분을 쌓고 있다.

이 부회장의 이런 인맥과 함께 눈길을 끄는 인물들이 있다. 바로 그가 2013년 부회장을 맡은 이후 영입한 글로벌 인재들이다. 향후 10~20년을 함께할 젊은 인재들로, ‘이재용 키드’라고 불릴 만하다.

그동안 이 부회장과 계열사 사장단은 국내외 각 분야 전문가들을 상무·전무·연구위원 등으로 대거 발탁했다. 삼성을 잘 아는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이재용 키드’를 키워 앞으로 5~10년 뒤 사장과 부사장급으로 성장시키려는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대표적 ‘이재용 키드’로 꼽히는 인물은 토마스 고(삼성페이 글로벌 매니저, 버지니아대), 송인숙(의료기기 사업부 전략마케팅 전문위원, 존스홉킨스대), 이지수(무선UX혁신팀 전문위원, 조지아공대), 이돈태(디자인경영센터 글로벌디자인팀 전문위원, 연세대), 이현율(무선 UX혁신팀 전문위원, 매사추세츠공과대), 민소영(생활가전 전략마케팅팀 전문위원, 크랜필드경영대학원), 강 데이빗(무선 전략마케팅실 전문위원, 미시간대), 김태성(무선 개발실 전문위원, 카이스트) 등이다.

이들 외에도 이 부회장은 최근 글로벌 인재 영입에 심혈을 기울이라고 각 사장단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최근 여러 경로로 고급 인재 영입 활동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며 “주요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한 임원과 핵심 인력이 그 대상”이라고 전했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 시절부터 ‘인재가 기업의 핵심’이라는 기조로 우수 인재 영입에 공을 들였지만 이 부회장 체제를 맞아 그 속도가 빨라지고 횟수도 늘어나고 있다는 게 재계 안팎의 시각이다. 과거 삼성이 하드웨어 중심의 기업으로 ‘하나의 삼성’을 추구했다면 이 부회장의 삼성은 소프트웨어와 트렌드에 민감한 정보기술(IT) 기업으로 재탄생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김태헌 기자 k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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