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 작품보다 저렴한 것도 인기 요인, 한국 미술품 ‘리레이팅’
‘힐링’이 만든 단색화 붐…서울옥션 ‘수혜’
한국 미술이 지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기의 핵심은 1970년부터 1980년대에 많이 그려진 ‘단색화’다. 실제로 한국 미술품은 경매에서 최고 낙찰가를 계속 경신하고 있다. 김환기 작가의 ‘19-Ⅶ-71 #209’가 2015년 10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47억2000만원에 낙찰되며 이전 최고가(45억2000만원)를 갈아 치웠다.

김환기 작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보다 일찍 인기를 끌기 시작한 이우환·박서보·정상화·하종현·윤형근 작가의 작품들도 2015년부터 그림 값이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이들 작가의 작품은 미술 시장이 좋았던 2007년에 비해서도 평균 3.8배나 올랐다.

앞서 제시된 작가의 작품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단색화’라는 것이다. 단색화는 한두 가지의 제한된 색상에 단순한 패턴의 반복 혹은 동일한 질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한국 추상미술의 화풍이다. 흔히 해외에 소개될 때는 ‘한국식 모노크롬(Monochrome)’이라고 설명된다.

믿기지 않을 수 있지만 이 단색화가 지금 세계무대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트렌드다. 국내 대표적 갤러리 중 하나인 국제갤러리가 2014년 8월 ‘단색화의 예술’을 개최하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유명 갤러리인 블룸앤드포가 같은 해 9월 ‘단색화전’을 개최한 이후부터 단색화는 갑작스레 국제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후 파리 퐁피두센터,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등 세계의 유명 전시관에서 전시가 이어졌다.

단색화, 세계인 사로잡다

언론과 경매사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뉴요커’는 2015년 9월 한국의 단색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뤘고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에서도 작년 11월 홍콩에서 열린 메인 경매에서 단색화를 주요 작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단색화가 인기를 끈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역사적 의미에다 세계인의 정서에 걸맞은 미적 가치까지 겸비했다. 단색화가 고유의 단순함을 가지게 된 데에는 시대적 배경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1970년대 군사정권 아래에서 단색화 작가들은 특정한 메시지보다 물감을 재료 밖으로 밀어내거나 동일한 패턴을 그리는 작업을 반복하는 데 주력했다. 대표적 작가인 이우환 화가는 이를 ‘마치 승려의 수련처럼, 단순 작업의 반복을 통해 자기 자신을 비워내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색채 또한 취지에 걸맞게 최대한 자연스럽고 중성적인 것만 선택됐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작업이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결과적으로 현대인의 피로한 정신을 가다듬게 하는 ‘힐링의 아이콘’이 됐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단색화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한 감상자까지도 단색화에 매료될 수 있을 정도로 미적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게다가 작품에 녹아든 수행·참선·동양철학 등의 콘셉트는 이에 익숙한 동양인뿐만 아니라 동양적인 것에 매력을 느끼는 서양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포인트가 됐다.

또 단색화는 비슷한 사조인 ‘모노크롬’ 대비 가격이 저렴하다. 대표적 모노크롬 작가들로는 마크 로스코, 이브 클라인, 바넷 뉴먼 등이 있는데, 이들의 작품 가격은 높게는 800억~900억원까지 된다. 또 중국과 일본의 현대미술 작품 대비 한국 작품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중국이나 일본의 알려진 현대미술 작품은 연일 고가를 경신하는 단색화보다 평균 2배 이상 높게 거래된다.
‘힐링’이 만든 단색화 붐…서울옥션 ‘수혜’
한국 미술품 시장 GDP 0.1% 불과

단색화에 대한 관심은 다른 장르의 한국 미술까지도 확장되고 있다. 한국 미술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최근 일고 있는 단색화 열풍은 한국 미술 시장을 한 단계 도약시키고 선순환 구조에 진입시킨 디딤돌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미술품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확실히 시장을 ‘리레이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 미술품 시장의 규모는 작다. 한국 미술품 시장의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0.02% 수준이다. 선진국 평균은 GDP 대비 0.1% 수준에 달해 5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경매시장 규모는 최근 급성장하고 있다. 2015년 기준 전년 대비 93.7% 성장했다. 이는 한국 미술품 시장의 성장성이 크다는 의미다. 또 미술품 시장은 점차 성장하면서 정보화·기업화·세계화되는 현상이 있다. 이런 흐름의 수혜자는 대형 경매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술품 시장의 최대 수혜주로는 서울옥션을 꼽는다. 이에 따라 서울옥션의 투자 의견은 ‘매수(buy)’, 목표 주가는 2만9000원을 제시한다.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적인 인기로 경매 호조와 그에 따른 수익성 개선이다. 둘째, 작품 가격 상승에 따른 상품 및 중개 매출 증가다.

서울옥션은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최대 기업이다. 서울옥션은 2015년 낙찰 총액 기준으로 시장의 57%를 점유하고 있다. 2015년 서울옥션의 경매 낙찰 총액은 전년 대비 159% 성장한 1085억원을 기록했다.

최고 낙찰가를 경신하는 경매 기록이 쏟아졌고 2014년까지 연 2회 개최했던 홍콩 경매를 2015년 3회로 확대했는데도 각 경매 모두 변함없는 낙찰 총액을 기록했다.

2016년 서울옥션의 경매 낙찰 총액은 73.9% 성장해 1885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매 기업의 높은 영업 레버리지에 따라 낙찰 총액의 증가는 수익성 개선과 직결된다. 이에 따라 서울옥션의 영업이익률은 2014년 21.5%에서 2015년 27.7%, 2016년 34.8%까지 상승할 전망이다.

정리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