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를수록 신비의 깊이를 더해 가는 보석 중의 보석. 럭셔리 하우스의 하이 주얼리는 캐럿 무게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히스토리가 있다. 설레고 찬란한 영감의 세계와의 랑데부(rendezvous).
[Big story] 슈퍼리치가 반한 하이주얼리의 세계
지난 2010년과 2011년 까르띠에의 ‘뚜띠푸르티(TuttiFrutti)’ 팔찌가 스위스 경매 시장에 나란히 나왔다. 두 제품은 모두 1929년에 만들어진 제품이다. 그런데 낙찰가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107만9000달러 vs 2만2000달러’. 왜일까?

윤성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는 이와 관련 "까르띠에의 브랜드 마크 때문"이라며 "하나는 까르띠에의 브랜드 마크가 지워져 있었고, 한쪽은 남아 있던 것이 무려 50배의 가격차를 부른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설명했다. 경우에 따라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라는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부가가치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윤 교수는 "역사가 깊은 럭셔리 주얼리는 제조사 마크, 홀 마크, 공방 마크, 넘버링, 때로는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졌는가’까지도 투자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적 보석감정기관인 우신보석감정원의 오세웅 보석감정사는 “일반적으로 보석을 감정할 때는 원재료(금, 다이아몬드, 유색 보석 등)를 중심으로 가치를 매기기 때문에 브랜드의 의미가 크지 않지만,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의 한정제품이 하나의 제품 자체로 경매 시장 등에서 거래될 경우 그 가격 수준이 사뭇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보석 분야의 ‘오트 쿠튀르’라 불리는 하이 주얼리(high jewelry)는 일종의 예술작품으로 추앙 받는다.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 고객 가운데서도 상위 1% 이내의 고객이 찾는 한정판이다. 드비어스의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예물용으로 즐겨 찾는 웨딩링 등은 300만~700만 원 수준이지만, 대물림을 위한 하이 주얼리의 경우 보통 수억 원을 호가한다”고 말했다.

럭셔리 명품 가방처럼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대기할 필요는 없지만, 보통 작품을 주문하면 해외 장인들에 의해 수공 제작되는 특성상 수개월이 걸린다. 불가리의 관계자는 “불가리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특별한 보석을 위해 개발된 스케치를 바탕으로 점당 제작 기간이 약 6개월에서 3년 정도가 소요되며, 각각의 제품들은 오로지 1점씩밖에 존재하지 않는 작품과도 같은 희귀성을 가진다”고 전했다.

전통적 모티브에 팬시 컬러 눈길
럭셔리 주얼리 하우스들은 매해 한두 차례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새롭게 선보인다. 무한한 에너지를 지닌 자연은 주얼리 영감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다.

반클리프 아펠은 지난해 파도가 펼치는 다채로운 장관과 수중 생물의 우아함에 매혹돼 ‘7대양(Seven Seas)’이라는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발표했다.
[Big story] 슈퍼리치가 반한 하이주얼리의 세계
쇼메가 지난해 파리 앤티크 비엔날레에서 발표한 뤼미에르 도(Lumieres d’eau)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물’을 테마로 했다. 물과 관련된 이미지와 그 잔상들에서 얻은 영감을 환상적으로 표현했다.
[Big story] 슈퍼리치가 반한 하이주얼리의 세계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소재와 해석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작품들도 많다. 부쉐론은 인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블루 드 조드푸르(Bleu de Jodhpur)’를 통해 자비롭고 고무적인 인도에 대한 경의를 표현했다.
[Big story] 슈퍼리치가 반한 하이주얼리의 세계
불가리의 ‘세르펜티 하이 주얼리 컬렉션(Serpenti High Jewelry Collection)’은 불가리 하면 떠오르는 뱀으로 우아한 관능미를 보여준다.

까르띠에가 지난해 발표한 ‘에뚜르디쌍 까르띠에(Etourdissant Cartier)’는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루비 등으로 눈부신 색채의 향연을 보여준다.
[Big story] 슈퍼리치가 반한 하이주얼리의 세계
드비어스는 인간의 가장 깊고 숭고한 감정인 ‘사랑’을 순수하게 표현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심플솅크 링’이 대표작. 영원한 아름다움을 담은 무결점(flawless)의 다이아몬드로 사랑 그 자체만큼 신비로운 디자인을 추구한다.

윤 교수는 “최근 럭셔리 하우스의 하이 주얼리를 보면 완전 새롭다기보다는 (불가리의 뱀이나 까르띠에의 뚜띠 프루티 스타일처럼) 20세기 하우스에 얽힌 스토리라든지, 고유의 아이덴티티나 전통 디자인에 동시대적 스토리나 요소로 재해석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소재로는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스피넬, 루벨라이트, 파라이바 투어멀린, 파이어 오팔 등이 과거보다 더욱 세련되게 향유되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사진 각 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