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분쟁 불씨’ 유류분이 뭐길래
유류분은 장자나 호주 위주의 상속 문화에 큰 변화를 일으키며, 이른바 상속에서 계급장을 뗐지만 최근 급격히 늘고 있는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족 분쟁의 불씨는 끄지 못했다. 아직 현재 진행형인 유류분은 계륵(鷄肋)인 걸까.

유류분은 1977년 태어났다. 피상속인(통상 부모)이 유언을 통해 재산을 배분해 주면서 특정 유족을 완전히 배제해 한 푼도 주지 않을 경우 이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도의 상속지분을 법으로 보장하자는 것이 당초 취지였다.

1977년을 돌이켜보면 미국의 스티브 잡스가 사실상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PC)라고 할 수 있는 애플컴퓨터2로 PC시대를 연 해였으며,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000달러, 재산형성(재형)저축의 금리는 20~30%에 이르렀다. 바로 39년 전의 일이다.

유류분이란 상속받을 사람의 생계를 고려해 상속액의 일정 부분을 법정상속인 몫으로 유보해 두는 제도다.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직계비속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를 넘어서는 유증이나 증여가 있을 때는 유류분 권리자가 일정한 범위 내에서 공동상속인 등을 대상으로 상속재산에 대한 반환 청구를 할 수 있다.

유류분반환청구의 소송 소멸시효는 상속의 개시와 반환해야 할 증여 또는 유증을 안 때로부터 1년 이내다. 피상속인이 공동상속인에게 증여한 것은 기간 제한 없이 모두 유류분 산정을 위한 기초재산에 산입된다는 것이 기존 대법원의 판례다.

또 피상속인이 다른 상속인들에게 손해를 가할 생각으로 증여를 한 것이었다면 상속 개시 전 1년 이전의 것도 유류분반환청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BIG STORY]‘분쟁 불씨’ 유류분이 뭐길래
유류분은 단순히 피상속인의 사망 이후 남아 있는 재산이 아니라 과거 공동상속인에 대한 증여 부분까지 포함된 개념이다. 이에 공동상속인들이 증여나 유증을 받은 재산을 일일이 추적해 기초 재산에 산입한 뒤 이를 다시 상속 개시 시점의 가치로 환산해야 하는 복잡한 단계를 거친다.

유류분의 침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유류분이 확정돼야 하는데 유류분권리자가 실제 얻은 상속 이익이 이에 미치지 못하는 때에는 그 부분만큼의 유류분 침해가 있게 된다.
즉, 유류분 부족액은 기초재산액(적극상속재산액+증여액-상속채무액)×유류분율-유류분 권리자의 특별이익액(유류분 권리자의 수증액+수유액)-순상속재산액(유류분 권리자의 상속에 따라 얻게 되는 재산액-상속채무 부담액)의 공식에 따라서 결정된다.

1960년 처음 시행된 우리나라 민법은 호주를 승계하는 장남에게 가장 많은 유산이 돌아가게 했으며, 배우자와 장남, 결혼하지 않은 딸과 결혼한 딸은 법정 분배 비율(0.5대1.5대0.5대0.25)이 모두 달랐다. 예컨대 10억 원의 유산을 나눈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받게 되는 장남에게 4억 원이 배분됐다면 결혼한 딸은 6000여만 원밖에 챙기지 못한 것이다.

현행 유류분 제도는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직계비속(아들, 딸, 손자, 손녀)이 법정상속분에서 1.5대1대1의 비율로 나눠 갖도록 하고 있는데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된 이후 제도적으로는 아들과 딸의 상속 불평등은 사라진 셈이다.

최근 유류분 관련 분쟁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것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대법원의 사법연감에 따르면 유류분반환청구 소송 건수는 2005년 158건이었으나 5년 뒤인 2010년 452건, 2014년 811건으로 10년 만에 5배가 넘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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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상속에 반기 든 형제들
과거 부모 부양과 제사를 주관했던 장자의 권한은 절대적이었다. 여자 형제들에게는 ‘출가외인’이라는 딱지를 붙여 상속에서 배제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유류분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는 장자 등 특정상속인의 ‘나홀로 상속’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Case 1
장남에게만 상가 건물을 증여한 사실을 안 동생들이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버지가 장남에게만 시가 8억 원 상당의 상가 건물을 증여한 사실을 안 남동생과 여동생이 유류분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4년 전에 전 재산인 상가 건물을 장남에게 넘긴 것이다. 동생들은 해당 상가 건물에는 자기들의 몫도 있다며 펄쩍 뛰었다.

장남은 동생들이 예전에 아버지에게 받은 돈을 일일이 상기시켰다. 남동생은 학자금 명목으로 8000만 원과 아버지 계좌에서 수시로 이체된 금액 등을 합해 1억3500만 원을 이미 받았고, 아파트 매수 자금도 아버지에게 받은 것이라는 게 장남의 주장. 또 여동생의 경우 학자금 6000만 원과 유학 비용 1100만 원, 생활비 등을 합해 1억3000만 원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상속분에서 공제해야 한다고 따졌다.

더구나 장남은 자신이 아버지에게 생전에 현금 8억 원을 드렸고, 부동산을 물려받고 나서는 수리비로 2억 원 상당을 투자했는데 이 부분을 유류분 산정 시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송은 항소심까지 이어졌다. 법원은 학자금 등은 너무 오래전 일이라며 기초재산에 포함할 수 없다고 판단 했고, 결국 장남이 남동생에게 5400만 원, 여동생에게는 6300만 원을 주라고 판결하며 동생들의 유류분을 인정했다.

이처럼 부모의 뜻과는 상관없이 반드시 지켜지도록 강제되는 법 제도가 바로 유류분이다. 최근 유류분은 형제들간 피를 말리는 치열한 소송전의 뒷배경이 되고 있다.

사실 유류분은 고인의 유언보다도 갑(甲)이다. A씨가 죽기 전에 모든 부동산을 막내딸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의 유언공정증서(유언장)와 관련, 지난해 대구지방법원이 내린 판결이 실례다.

Case 2
부모가 유언장에 막내딸에게만 부동산을 물려준다고 썼다면 장남은 유류분 청구가 가능할까.

A씨는 장남을 가리켜 ‘부모에게 말도 없이 이민을 한, 부모에게 관심이 없는 아들’이라는 자필 메모를 남기는 등 장남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을 드러냈고, 이는 법원에 고스란히 증거물로 제출됐다.

장남은 부동산을 자신 명의로 이전한 여동생을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유언장은 의사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작성된 것이거나 법이 정한 유언의 방식을 결여한 것으로 무효다”라는 것이 장남의 주장이었다.

법원은 “A씨가 사리분별을 할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본인의 뜻에 따라 증인 2명을 두고 유언공정증서를 작성한 것이 맞다”며 유언장의 효력을 인정하면서도 장남의 유류분 권리를 인정해 고인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의 일부를 떼어 장남에게 주라고 결정했다.

이처럼 유류분은 고인의 유언을 때때로 무용지물로 만들곤 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유언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켜 자유로이 자신의 재산을 처분할 수 없도록 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을 통해 상속재산의 일부를 되돌려 받은 이후에도 골치 아픈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나라 세법에서는 상속 시점에서부터 과거 10년이 넘어가 증여한 재산은 상속세 과세 대상에 합산되지 않는데 유류분을 반환받게 되면 과거 증여 부분이 취소돼 상속재산에 포함되기 때문에 세금을 추가 납부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구상수 법무법인 지평 회계사는 “민법에는 유류분으로 받아 오면 증여가 취소되는 것까지만 규정돼 있고 세금 문제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정리돼 있지 못하다”며 “예를 들어 3억 원을 11년 전에 증여 받았다면 10년도 넘은 증여이기 때문에 상속재산에 포함되지 않는데 추후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을 통해 5억 원을 받아 오게 되면 그만큼 상속재산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어서 이에 대한 세금에 더해 양도소득세까지 내고 나면 결국 남는 게 거의 없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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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의 불씨는 무한함수 ‘특별이익’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에는 소멸시효라는 것이 있다. ‘상속의 개시와 반환해야 할 증여 또는 유증을 안 때로부터 1년 이내’에 소멸하도록 규정돼 있는 것. 하지만 단서가 있는데 피상속인이 사망한 것을 알았다 해도 증여나 유증을 한 사실을 몰랐던 상태라면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으니 20~30년 전 부모가 형제 중 한 명에게 조용히 넘겨준 주식이라든지, 부동산 구입 대금 등 특별이익이 나타나면 그 기한은 사실상 무한대로 늘어난다.

대법원은 지난 1995년 6월 30일 판결(93다11715)에서 “공동상속인 중에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의 증여에 의해 특별이익을 한 자가 있는 경우에는 증여는 상속 개시 전 1년간에 행한 것인지 여부에 관계없이 유류분 산정을 위한 기초재산에 산입된다”고 밝혔다. 심지어 법원 판결에 따르면 40년 전에 증여한 재산도 상속 개시 시점의 가액으로 유류분 산정을 위한 기초재산에 포함된다.

이처럼 ‘공동상속인이 수증자인 경우 증여가 이루어진 시기에 관계없이 모든 증여재산을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산입하는 것’과 관련해 헌법소원이 이뤄지기도 했다. 1남 5녀의 장남인 B씨가 2006년 부친이 사망한 뒤 생전에 증여받은 부동산 등 7억7000여만 원의 재산에 대해 여자형제들이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헌법소원을 냈던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B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2010년 5월 10일 헌재가 내린 결론은 합헌이다. ‘공동상속인인 수증자가 받은 증여는 상속분의 선급이라는 점 등으로 봤을 때 공동상속인의 증여재산은 그 증여가 이뤄진 시기를 묻지 않고 모두 유류분 산정을 위한 기초재산에 산입하도록 하는 민법 조항은 기본권 제한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 판단의 근거였다.

유류분 산정은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만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 공동상속인들이 증여받은 것들을 현재 시가로 환산해 나누는 것이 유류분이다. 예를 들어 피상속인이 20년 전에 둘째 아들에게 10억 원의 주식을 증여했고, 이 주식이 상속 개시 시점을 기준으로 100억 원으로 가치가 치솟았다면 이 같은 둘째 아들의 특별이익은 고스란히 유류분 산정 대상에 포함돼 형제들과 나눠야 한다.

만약 아버지가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에게 똑같이 10억 원의 가치가 있는 주식을 넘겨주었고, 20년이 지나 첫째 아들의 주식 가치가 50억 원, 둘째 아들의 주식 가치는 0원이 됐다고 하자. 잔혹하게 따지면 이 두 형제는 첫째 아들이 가치를 불린 50억 원의 특별이익을 기초재산에 포함시켜 유류분 논쟁을 벌일 수도 있다.

강석훈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이에 대해 “현재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10년 이내에 증여한 재산만 포함하도록 하고 있는데 유류분 산정은 아무런 기간 제한이 없다”며 “과거 아들에게 준 주식이 현재 가치로는 엄청날 텐데 그걸 전부 유류분으로 산정하니까 소송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 같은 유류분 산정 기준은 합리적인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대 역행(?) 유류분, 바뀔까?
현행 유류분 제도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최근 부쩍 늘고 있다. 상속인들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겠다며 탄생한 유류분 제도가 최근 시대적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상용 부산대 법대 부교수는 ‘자녀의 유류분권과 배우자 상속분에 관한 입법론적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유류분 제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의 연도별 평균수명 추이(2001년 기준)를 보면 1970년에 남자는 59.8세, 여자는 66.7세를 기록했고, 2020년 예측에서는 남자는 77.5세, 여자는 84.1세로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난 부분을 짚어냈다. 그만큼 피상속인의 사망이 늦춰지며 상속 개시 시점도 뒤로 밀리고 있어, 이미 40~50대에 이른 자녀들의 경우 경제력을 갖추고 독립해 생계를 유지하는 만큼 유류분을 통한 법적 보호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처럼 ‘노노(老老)상속’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고, 노후에 자녀와 동거하지 않고 배우자와 오랫동안 사는 경우 자식들보다는 생존배우자의 생활 보장 문제가 더 큰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입법으로 추진되며 큰 논쟁을 일으켰던 배우자선취분(생존배우자에게 절반을 유류분으로 보장) 논쟁도 시작점은 이 같은 고령화에서 찾아봐야 한다.

정구태 조선대 법과대학 교수는 유류분 제도의 경직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유류분 제도가 상속재산의 공평한 분배를 통해 공동상속인 간 공평을 유지한다는 순기능도 있지만 경직성으로 인해 역기능 또한 많다”고 주장했다.
피상속인의 유언의 자유를 지나치게 구속하고, 가업승계나 기부 문화 확산 등에 있어서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강석훈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유류분 제도는 1977년에 만들어진 제도인데 현재 시점에서 불합리한 측면이 드러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며 “오히려 유류분 제도가 상속 분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마상미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도 “유류분 산정에 있어 기간 제한 없이 이 잡듯이 특별이익을 찾아내 기초재산에 산입토록 하면서 형제간에 상처를 받고, 그것이 상속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순기능이 분명한 유류분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유류분 제도가 있어 그동안 재산 상속에서 소외돼 있던 딸이나 혼외자 등이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쟁을 토대로 39년간 공고히 지켜져 온 유류분 제도는 조금씩 균열이 가는 모습이다. 2014년 법조계를 들끓게 했던 배우자선취분 입법 논쟁이 경영권 승계에 부담을 느낀 재계의 반발로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여전히 물밑 논쟁이 거세고, 부모 봉양 등 도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자식에게서 증여한 재산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불효자 방지법’이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는 현상은 이에 대한 방증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