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가업승계 발목 잡히다
올해부터 공동 상속을 받아도 가업상속공제가 가능해지는 등 꽉 막혔던 가업승계의 숨통이 다소 풀리고 있다. 하지만 가업승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유류분 제도는 기업 경영인들에게는 여전히 한숨 거리다.

올해부터 2인 이상 형제가 가업승계 기업의 주식을 취득해도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된 데 대해 기업들은 일단 고무적이라는 반응이다. 이전에는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속인 1인이 기업 전부를 물려받아야 했으며, 상속인 중 유류분반환청구를 제기해 부득이하게 상속받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가업상속공제를 적용했다. 한 마디로 사이좋게 공동 경영을 할 때는 세제 혜택을 안 주다가 유류분 갈등 등 경영권 다툼이 벌어질 경우 1인 상속 철칙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공제 혜택을 부여했다는 소리다.

가업상속공제는 10년 이상 경영한 연 매출 3000억 원 미만 중소기업의 경우 가업 상속재산 중 최대 200억 원, 15년 이상은 최대 300억 원, 20년 이상은 최대 500억 원까지 공제 혜택을 주는 제도다.

예를 들어 연 매출 600억 원가량의 기업을 가진 기업가가 이를 자녀들에게 상속할 때 과거 1인 상속의 경우 38억6100만 원 정도의 세금이 나오지만 공제 혜택을 받지 못할 경우 263억6100만 원의 세금이 부과되는 등 세 부담이 상당하다.

기업들이 이번에 아쉬워하는 대목은 공동 상속이 허용돼도 대표이사(대표자) 승계 지분에 대해서만 공제 혜택이 주어진다는 것. 결국 공제 혜택을 한 명에게 몰아줘야 하는 건데 나머지 형제들의 지분 상속에는 여전히 공제 혜택이 부여되지 않아 상속재산의 불균형 문제로 인한 유류분 갈등은 상존하는 셈이다.
[BIG STORY]가업승계 발목 잡히다
양날의 검, 가업승계와 유류분
기업가에게 가업승계와 유류분은 양날의 검과 같다. 특정 상속인에게 경영 지분을 몰아줘 가업승계를 진행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상속인 간 상속 불균형으로 인한 유류분 문제를 정면으로 거스르게 되니 어느 쪽으로 칼을 휘둘러도 상처가 남을 수밖에 없다.

창업 세대의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주식 등 자산을 공동상속인들에게 고르게 분배하고, 경영권까지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번 세법 개정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가업이 2개 이상의 기업인 경우 기업별 상속을 허용했다는 점인데, 이를 통해 회사별로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되며 과거보다는 짜임새 있게 가업승계가 가능해졌다는 점은 상당한 진일보로 평가되고 있다.

예를 들어 A그룹의 김 모 회장이 계열사 중 전자 부문은 첫째에게, 유통 부문은 둘째에게 가업승계를 해 전체적으로 내실 있게 가업승계를 진행할 수 있게 된 거다.

이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부분은 역시 유류분이다. 김 회장이 일찌감치 첫째와 둘째에게 각각 전자와 유통을 맡기기로 하고, 사전증여의 형태로 경영권을 물려주었다고 치자. 당시의 기업가치는 1대1이었고, 형제간에 불만도 없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첫째는 기업 경영을 잘 해 아버지가 물려준 기업의 가치를 10으로 늘렸고, 이에 반해 둘째는 경영을 잘 못해 아버지가 사망할 당시 기업가치가 없어졌다고 했을 때 온전히 남은 전자 부문에 대해 둘째가 유류분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다. 막장 드라마와 같은 억지로 들릴지 몰라도 현재 법 테두리 안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물론 물려받은 기업을 5년간 튼실하게 키워 온 첫째의 경영 성과가 반영됐기 때문에 단순 논리로 과거 피상속인이 증여한 재산을 상속 개시 시점의 가액으로 계산해 두 형제의 유류분을 계산할 수 없다고 맞설 수 있지만 재판부에서 생각하기에는 어차피 첫째가 ‘제로 베이스’에서 창업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경영 성과를 과소평가할 수도 있다.

반원익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은 “피상속인이 합리적인 판단 아래 공동상속인들과 합의를 거쳐 가업 후계자를 선정해 대상 기업의 주식을 이전하더라도 상속 개시 시점의 주식 가치 증가나 다른 공동상속인의 변심 등으로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며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은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으므로 승계 대상 기업의 경영권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 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회를 상실하고 최악의 경우 기업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BIG STORY]가업승계 발목 잡히다
일관성 없는 정부정책, 기업 혈맥 막혀
정부의 일관성 없는 가업승계 지원책 탓에 기업가들의 고민이 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견기업의 한 대표는 ‘증여세 과세특례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전 상속 플랜의 일환으로 증여를 고민했다가 최근 포기했다. 우리나라 ‘상속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10년 전에 한 증여는 상속세 계산 시 포함되지 않는데 증여세 특례를 적용받게 되면 10년 제한 없이 상속세 계산 시 포함될 뿐만 아니라 가업상속공제를 받게 되면 최대 500억 원까지 공제를 받게 되는데 구태여 특례 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판단 때문이다.

증여세 과세특례 제도는 중소·중견기업 경영자의 고령화에 따라 생전에 자녀에게 기업을 계획적으로 사전 상속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과세특례를 적용받은 경우 100억 원 한도로 5억 원을 공제한 후 10%(과세표준이 3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 초과분에 대해서는 20%)의 세율을 적용해 증여세를 납부하게 된다.

과세특례를 받기 위해서는 60세 이상의 부모가 가업승계를 위해 주식이나 출자지분을 증여한 경우여야 한다.

김근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증여세 과세특례 제도나 가업상속공제는 모두 가업승계를 지원하기 위한 일련의 제도들인데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라며 “정부에서는 사전증여를 미리 해 차후 상속 갈등이 없도록 대비하라고 권장하지만 제도 간 일관성이 없어 어리둥절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증여세 과세특례 제도를 활용하려면 세금을 내야 하는데 추후 가업상속공제 대상에 포함돼 공제 혜택을 받게 된다고 해서 먼저 냈던 세금을 돌려주지는 않는다”며 “제도상 일관성을 위해서는 증여세 납부를 유예했다가 나중에 상속세를 계산할 때 한꺼번에 계산해 부과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제도들이 통일성을 갖고 움직이지 못해 아쉽다”고 밝혔다.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공제 혜택을 볼 여지가 있지만 대기업의 경우는 제도적 지원이 전무하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이 최고 50%에 달하고 여기에 더해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경영권을 확보하고 있는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은 일반 주식보다 할증평가, 대기업의 경우 지분율 50% 이하 20%, 50% 이상 30% 할증)까지 받게 되면 후대에 기업의 경영권을 넘겨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의 상속세를 원칙대로 적용할 경우 3세대 이상 기업 경영권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 결국 일감 몰아주기, 기업 순환출자 등의 편법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일관성 없는 상속 지원 제도와 과도한 세금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다.

김근재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유류분 제도는 굉장히 경직된 제도인데 연 매출 3000억 원 이상의 조금 규모 있는 회사의 경우는 가업 상속이나 세제 혜택을 못 받기 때문에 이들 회사 경영자의 경우 제일 많이 고민하는 것은 사실 유류분 제도라고 봐야 한다”며 “유류분 제도를 포함해상속 지원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숙고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