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실버타운 CCRC가 모델
대규모 단지 대신 '소규모 동네 부활형' 전략

일본 도쿄의 한 사원에서 운동 중인 노인들. (AFP 연합뉴스)
일본 도쿄의 한 사원에서 운동 중인 노인들. (AFP 연합뉴스)
일본 정부의 인구 대책 핵심 방향은 ‘도시에서 지방으로’의 인구 이동이다. 2015년 여름 ‘소멸 리스트’ 발표 이후 도농 양극화가 인구 이동을 가속화한다는 연구 결과에 기인한다. 실천 방법으로는 생존 인구의 지방 투입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판 CCRC’가 제안됐다. 고령 인구가 신체 불편, 간병 필요로 도시에 몰려드는 것을 막겠다는 안이다.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ies)는 미국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은퇴자 주거 공간이다. 은퇴 인구 집적 지역으로 그 안에서 노인 질환 등의 연속적인 돌봄이 제공되는 커뮤니티다. 일종의 노인 동네다.

고령자가 건강할 때부터 간병이 필요할 때까지 중간에 이사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보증된 공간이다. 미국에서는 대략 2000여 개소에서 75만 명의 입주자가 생활 중이다. 큰 곳은 1개소에 3000명이 거주하는 곳도 있다.

CCRC는 건강할 때부터 지속적인 케어를 받을 수 있는 고령 중심의 지역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진행한다는 게 일본의 차별성이다. 건강할 때부터 옮겨와 의료·간병을 보장받으며 활동적으로 살아가자는 게 포인트다.

일본 정부는 이를 ‘평생 활약의 동네’로 명명, 2015년 시작된 아베노믹스 2.0의 핵심 기둥으로 지목했다. 반복적인 인구 유출로 과소화가 심화된 농촌·지방이 대량 발생하면서 이를 저지하는 ‘지방창생’의 유력 수단으로 부각된 것이다.

◆교부금 기대한 지자체들 개발 경쟁

일본 정부는 유력 정치인을 ‘지방창생성’ 장관으로 임명, 힘을 실어줬다. 이에 따라 활기찬 은퇴 마을을 만들려는 국가 구상의 실현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2015년 2월에는 ‘일본판 CCRC 구상 유식자회의’가 발족됐다.

지자체 중 80%가 상황 파악 중인 가운데 11% 정도인 200여 곳이 추진 의사를 밝혔다. 정부는 CCRC가 추진되면 지역 한정의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지방창생특구’로 지정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교부금을 기대한 지자체와 기업 등이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일부 지자체는 사활을 건다. 인구 유출로 지역사회가 붕괴되는 걸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다는 절실함이 한몫했다. 건설 용지를 무상·저가에 제공하는 곳도 있다. CCRC의 거점으로 대학을 선정한 곳도 있다. 민간으로서는 사업 기회다. 대형 건설사의 선점전도 치열하다.

일본에서도 선행 사례는 있다. 초기에는 사업성 때문에 고전을 반복하며 실패 모델로 자주 거론됐지만 지금은 기적적으로 회복됐다. 1990년대 중반 일본 최초로 건설된 CCRC는 ‘미나기노모리’다. 모두 3개 마을 804구획으로 구분된 대규모 슬로 라이프 타운으로 관심을 받았다.

취미 향유와 인연 치유를 강조하는 고령자 커뮤니티로 크게 3가지 스타일을 구비했다. 영주 스타일, 주말 별장 스타일, 직주 겸용 스타일 등이다. 한때 600명 이상의 정주자와 150호의 세컨드 하우스 이용자가 이 커뮤니티에 합류했다.

하지만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1000명 모집 계획을 채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개발 업자의 경영 악화도 시작됐다. 현재는 200명도 채 못 된다. 익숙한 생활공간을 벗어나 노년 안전을 위해 이주하려는 이가 생각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실패 이후 입주 세대를 중심으로 부활 전략이 개시됐다. 고령자만 모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개발 업자와 협의, 30~40대의 자녀 양육 현역 세대를 입주시키기로 결정했다. 남은 건물을 신축 가격의 60% 정도에 판매하면서 성과로 나타났다.

도심과의 근접성과 쾌적한 주거 환경에 매료된 현역 세대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젊은 피가 수혈된 동네는 변하기 시작했다. 할 일 없이 소일하던 고령 주민과 현역 세대의 커뮤니티가 형성됐다.

노청(老靑)의 공창(共創) 작업이 이뤄지면서 봉양과 부양의 세대 교감적인 경제활동까지 확산됐다. 간병 도우미 부족 문제는 저절로 해결됐다. 현재 전체 주민의 25%가 현역 인구다. 입소문이 나면서 이주 의향을 밝힌 은퇴 세대도 늘어났다.

◆의료·간병 서비스가 관건…미국은 부유층 타깃

일본의 민간 모델 실패 교훈은 ‘대상 선정’과 ‘서비스 단절’ 등 2가지로 압축된다. 미국의 CCRC 입주자는 기본적으로 부유층인 데다 민간 주도적인 사업이다. 입주 원가가 고가이고 매월 드는 비용도 상당하다.

반면 일본은 입주 대상이 후생연금 평균 수급액(월 21만 엔)을 받는 평범한 은퇴 인구로 비용 압박이 상당하다. 집을 팔고 옮겨와도 그 정도 경제력으로 유유자적한 노후 생활을 위한 조건을 충족하기는 불가능하다. 이주 수요도 미국보다 적다. 설문 응답자 중 60~70%의 잠재 타깃(60대)이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50대 남성은 절반 정도가 긍정적으로 봤지만 50대 여성의 66%는 반대한다. 여성 특유의 인간관계 중시 경향 때문이다. 50대 남성 중에서도 1년 이내 구체화 여부에는 3.3%만 끄덕였다.

미국의 CCRC가 성공한 데는 경제력이 뒷받침된 서비스 제공 체계가 주효했다. 워낙 비용 부담이 커 필요할 때 의료·간병 서비스를 확실히 제공하도록 계약상 정해 두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운영 주체가 제각각이어서 결국 공적인 의료·간병 서비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지자체로서는 처음에는 건강한 고령 인구의 이주를 환영하지만 그 기대가 계속될 수는 없다. 갈수록 공적 서비스가 필요해지면 이주민에게도 세금 지출이 불가피해지며 이때 기존 주민을 납득시키는 것도 새로운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CRC의 구상 여부에 이견은 없다. 현재의 갈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꽤 괜찮은 대안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투입 대비 산출 효과를 높이는 방책이 요구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빈집 활용을 통한 비용 절감이다.

거액을 투입해 새로운 시설을 인위적으로 지어 생소한 커뮤니티를 조성하기보다 기존의 유휴 자원을 재활용하려는 시도다. 병원·간병 시설도 이미 있는 것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경제적이다.

어차피 빈집 증가가 추세라는 점에서 그 한계를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하려는 일석이조의 시도로 해석된다. 즉 CCRC에 붙는 ‘대규모 개발 단지형’의 이미지 대신 ‘소규모 동네 부활형’이 낫다는 판단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시간 내서 보는 주간지 ‘한경비즈니스’ 구독신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