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위스키 시장 연산 대신 맛·개성이 선택 기준으로 자리 잡아}
“위스키 연산은 가격과 품질의 척도 아니다”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최고급 주류의 대명사로 꼽히는 위스키를 보면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고급스러움을 한껏 강조한 디자인의 병에 새겨진 12, 17, 30 등의 숫자가 그것이다.

이 숫자는 위스키의 연산을 표기한 것이다. 연산은 위스키가 오크통 속에서 얼마 동안 숙성됐는지 표시한 것이다. 연산이 오래될수록 희귀성이 높아져 가격도 비싸게 책정된다. 따라서 위스키의 연산 표기는 소비자들이 위스키의 등급을 분류하는 하나의 척도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최근 위스키 업계에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 중심에 골든블루가 있다. 골든블루는 부산에 기반을 둔 토종 종합 주류 회사로, 2009년 국내 최초의 36.5도 저도주 위스키인 ‘골든블루’를 출시했다.

골든블루는 연산을 강조한 제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윈저·임페리얼·스카치블루 등 국내 위스키 업계의 오랜 삼파전 구도를 재편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스카치블루를 누르고 국내 위스키 시장점유율 3위에 올랐던 골든블루는 올 들어 시장점유율 2위 브랜드로 뛰어올랐다. 국내 위스키 시장이 윈저·골든블루·임페리얼·스카치블루의 순으로 바뀐 셈이다.

◆최고의 위스키는 개인 입맛에 맞는 제품
“위스키 연산은 가격과 품질의 척도 아니다”
일각에서는 골든블루의 이 같은 인기몰이를 탐탁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골든블루가 윈저나 임페리얼처럼 연산을 표기한 제품이 아닐 뿐만 아니라 도수마저 낮은 데도 판매 가격에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연산 위스키만 좋은 위스키라는 인식이 강한 한국 소비자로선 업계의 가격 정책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위스키 전문가들은 “위스키에 대한 사회적 통념은 위스키 연산이 높은 품질을 뜻하고 품질은 곧 높은 가격이라는 등식을 강요한 글로벌 위스키 업체의 오래된 마케팅 전략에 불과하다”며 “좋은 위스키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위스키”라고 지적한다.

위스키는 오크통 숙성 과정에서 소량의 알코올과 수분이 증발된다. 매년 평균 2%의 위스키 원액이 증발되는 것이다. 일례로 12년 동안 저장된 오크통에서는 위스키 원액의 약 25%가 증발된다. 숙성 기간에 따른 투자와 이자 비용, 증발하는 원액의 희소성 때문에 숙성 기간이 오래될수록 가격도 비싸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오랜 기간 숙성한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위스키 원액의 품질까지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숙성 과정은 길지만 품질과 가치가 떨어지는 위스키 원액도 존재한다.

숙성 장소의 환경이나 오크통의 관리 상태 등에 따라 위스키 원액의 품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스키의 연산이 그 제품의 품질을 보증하지는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위스키 가격은 양질의 보리 사용 여부, 오크통의 품질, 증류 기술, 숙성 조건 및 온도, 숙성 연수, 몰트의 비율, 블렌딩 노하우 등 다양한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연산보다 맛이나 개성을 중시하는 위스키 트렌드는 이미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매김했다. 위스키의 나이를 라벨에 표시하지 않고 제품의 맛이나 특징, 숙성된 오크통에 대한 내용을 전면에 내세운 연산 미표시 제품과 위스키에 향을 가미한 플레이버(혼합용) 위스키가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시장조사 업체 닐슨에 따르면 플레이버 위스키의 일종인 시나몬 위스키의 미국 내 2015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90% 증가한 2억4690만 달러에 달한다.

세계 매출액 1위 면세점인 인천공항면세점에서 판매하는 51개의 위스키 가운데 절반이 넘는 26개 제품이 연산 표기보다 맛과 개성을 강조한 위스키들이다.

◆위스키 시장에서도 저도주 열풍
“위스키 연산은 가격과 품질의 척도 아니다”
최근 국내 위스키 시장은 7년 연속 역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류 업계에 따르면 2015년 국내 위스키 시장은 전년 대비 2.2% 감소했다. 이는 2010년 대비 31%나 감소한 수치다.

반면 저도주 위스키 시장과 플레이버 위스키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 위스키 소비자들도 40도, 연산 등을 강조한 정통 스카치위스키보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선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주류수입협회에 따르면 골든블루는 올 1~2월 중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4% 증가한 4만9733상자가 판매되면서 위스키 업계 2위(시장점유율 20.4%)로 뛰어올랐다.

1위 브랜드인 윈저 판매량은 5만5524상자(시장점유율 22.7%)로 전년 동기 대비 26.8% 줄었다. 정통 스카치위스키 브랜드인 임페리얼의 판매량 또한 4만2506상자(시장점유율 17.4%)로 23.9% 감소했다.

40도 위스키는 고전을 면치 못한 반면 36.5도 위스키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골든블루의 성장 비결은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춘 혁신적 제품 콘셉트와 철저한 마케팅 차별화에 있다. 골든블루는 제품 개발 과정에서부터 ‘한국인을 위한 위스키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로 만들어졌다.

3년간의 개발 및 시험 과정을 거쳐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최적의 풍미를 찾아냈고 여기에 부드러운 목 넘김이 가능하도록 최적의 도수를 결합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골든블루를 진원지로 한 저도주 돌풍은 국내 위스키 시장의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1년간 4종류 이상의 저도주 위스키가 국내시장을 겨냥해 출시됐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1위의 싱글 몰트위스키 회사도 스카치위스키의 명가라는 자존심을 접고 조만간 저도주 위스키 시장에 뛰어들 전망이다.

매년 폭발적인 성장을 지속해 온 골든블루는 2020년 한국 위스키 시장 업계 1위에 올라 국내 3대 종합 주류 회사로 등극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동욱 골든블루 대표는 “골든블루는 단지 인기 있는, 잘 팔리는 제품이 아니라 침체된 한국 위스키 시장에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제품”이라며 “앞으로도 한국적인 맛을 찾아내겠다는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위스키 시장에 새 신화를 써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위스키는 골동품 아냐…연산·도수에 집착하지 말아야”
[인터뷰] 박희준 골든블루 마케팅본부장
“위스키 연산은 가격과 품질의 척도 아니다”
박희준 골든블루 마케팅본부장(상무)은 20여 년간 위스키 마케팅을 담당해 온 위스키 전문가다.

1993년 진로에 입사해 소주 마케팅을 담당하다가 1997년부터 위스키 브랜드 마케팅 업무를 맡았다. 이후 진로가 위스키 사업을 페르노리카에 매각하면서 페르노리카코리아 등에서 위스키 브랜드 마케팅팀을 이끌었다.

2008년 수석무역으로 회사를 옮겼고 2011년 수석무역이 천년약속을 인수하면서 현 골든블루에 합류했다.

위스키는 어떤 술인가요.
“위스키는 보리를 원료로 한 곡주입니다. 고향은 스코틀랜드고요. 위스키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습니다. ‘스카치위스키는 40도여야만 한다’는 기준이 그중 하나인데요. 이 기준이란 게 스코틀랜드 스카치위스키협회(SWA)라는 곳에서 만든 것이에요.

영국 디아지오나 프랑스 페르노리카 등 스카치위스키를 주로 판매하는 회사들이 만든 일종의 모임에서 ‘40도 이하로 보틀링한 제품에는 스카치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다’고 규정한 것이죠.

따라서 40도 이하 제품인 골든블루는 스카치위스키가 아닌 단순 위스키로 표기합니다. 또 하나의 기준은 주세법 등 관계 법령에 명시된 규정인데요. 위스키는 ‘원액 100%를 물만 섞어 가공한 술’로 정하고 있어요. 만약 풍미를 더하기 위해 기타 첨가물을 섞은 40도 이하 제품이라면 위스키가 아닌 기타 주류로 분류됩니다.”

골든블루는 어떤 제품입니까.
“골든블루 개발 당시 한국인 특유의 위스키 음용 습관에 주목했어요. 위스키 한 잔을 물에 희석하면 위스키 특유의 단맛과 과일향·오크향 등 다양한 풍미를 즐길 수 있습니다. 서양인들은 자연스레 위스키 한 잔에 물 한 잔을 섞어 마시죠. 위스키를 즐기는 겁니다.

반면 국내 소비자는 위스키 한 잔을 스트레이트로 들이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독한 알코올 때문에 위스키 특유의 풍미를 느끼기 힘들어요. 비싼 술을 마시는 의미가 없는 셈이죠. 골든블루가 스카치라는 명칭을 포기하고 36.5도 위스키로 탄생하게 된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원액 숙성 기간 표기 등에 대한 논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출시 초기에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글로벌 위스키 회사들도 우리 제품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죠. 하지만 골든블루가 기존 스카치위스키 시장을 위협하면서 ‘저도수·무연산인데도 가격이 비싸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음해하는 거죠.

골든블루는 스코틀랜드 현지의 마스터 블렌더 노먼 메디슨과 협업해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최적의 조합을 거쳐 탄생한 제품입니다. 위스키 원액의 종류만도 40개 정도 돼요. 100곳이 넘는 증류소마다 생산하는 원액의 맛과 향이 약간씩 다르고요.

한 증류소의 원액만 사용하는 싱글 몰트위스키와 달리 블렌딩 위스키는 다양한 원액의 조합을 통해 특유의 특성을 지닌 위스키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조합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굉장히 다양한 셈이죠. 골든블루는 스코틀랜드 현지 전문가와 상의해 한국인의 위스키 음용 습관과 입맛에 맞는 최적의 조합을 찾아냈습니다.

연산에 따른 가격 논란은 현재로서는 무의미합니다. 병에 연산을 표기하는 위스키 시장과 더욱 다양한 조합을 통해 맛과 향으로 승부하는 무연산 시장이 따로 존재합니다. 이게 전체 위스키 시장의 트렌드를 증명하는 겁니다.”

글로벌 위스키 업체의 가격 정책은 어떻습니까.
“경쟁사인 페르노리카코리아의 제품을 살펴보면 임페리얼 17년산과 발렌타인 17년산의 가격이 큰 차이를 보여요. 임페리얼 17년산의 출고가(450mL 기준)는 4만62원, mL당 89원인데 반해 발렌타인 17년산의 출고가(700mL 기준)는 12만2375원으로 mL당 174.8원입니다.

같은 회사에서 만든 동일 연산의 제품이지만 가격 차이가 약 2배 정도 나는 거죠. 연산이 가격의 잣대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죠.

페르노리카는 지난해 골든블루를 겨냥해 무연산 위스키 등 두 가지 제품을 출시했는데요.
임페리얼 네온이라는 무연산 스카치위스키는 출고가(450mL 기준)가 2만2385원, mL당 50원입니다. 같은 무연산 제품에 도수를 31도로 낮춘 에끌라 바이 임페리얼의 출고가(450mL 기준)는 3만6300원, mL당 81원으로 임페리얼 네온보다 가격을 오히려 높게 책정했습니다.”

침체된 국내 위스키 시장은 어떻게 보십니까.
“연산보다 맛이나 개성을 중시하는 위스키 트렌드는 이미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국내시장에서도 40도 위스키의 매출이 감소하는 반면 저도주 위스키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고요. 국내 위스키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연산이나 도수 차이에 따른 가격 논란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골든블루는 위스키 시장을 재성장시키기 위해 2030세대를 타깃으로 한 새로운 마케팅 캠페인과 신제품 개발로 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계획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일본의 ‘재패니스 위스키’처럼 한국산 위스키 원액을 사용한 ‘코리안 위스키’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choi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