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식품 '카누', 지난해 7억 개 판매
남양유업·롯데 네슬레도 원두로 중심 이동

1주일에 12.3회. 국민 한 사람이 커피를 마시는 평균 횟수다. 같은 기간 1인당 평균 쌀밥을 먹는 횟수는 7회였다. 한국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2014년을 기준으로 한국인의 식습관을 조사한 결과다. 그야말로 ‘밥보다 커피’를 많이 먹는다는 게 통계로 확인된 셈이다.

이처럼 열렬한(?)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1976년 동서식품에서 선보인 국내 첫 커피믹스 ‘맥스웰하우스’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89년 출시된 국내 최초 스틱형 커피믹스인 맥심커피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2000년대 중반까지 국내 커피 시장을 독주하다시피 했다. 오죽하면 ‘한국인들의 커피에 대한 입맛은 맥심으로 표준화됐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엔 이 같은 흐름이 깨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커피에 대한 사람들의 입맛이 다양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커피 전문점을 필두로 고급 원두커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커피믹스 시장의 성장 또한 멈춰선 지 오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동서식품과 남양유업을 비롯한 커피믹스 제조업체들은 ‘인스턴트 원두커피’의 성장에 새로운 희망을 걸고 있다.
달디단 커피미그의 맛에 길들여졌던 소비자들이 다양한 커피 맛을 즐길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원두커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달디단 커피미그의 맛에 길들여졌던 소비자들이 다양한 커피 맛을 즐길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원두커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싸고 달고 간편하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식후 커피 문화’를 퍼뜨린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커피믹스의 절대적 장점이다. 그 덕분에 커피믹스는 국내 커피 시장에서 오랫동안 가장 큰 카테고리를 차지해 왔다.

실제로 aT의 ‘가공식품 세분화 시장 보고서-커피편’에 따르면 2011년을 기준으로 국내 커피류 출하액 중 커피믹스는 89.1%로 압도적이었고 원두커피 점유율은 10.9%에 불과했다. 일본을 비롯한 해외시장에서 원두커피가 커피 시장의 60% 이상 차지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처럼 국내 커피 시장을 지배했던 커피믹스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4~5년 전이다. aT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1년을 기준으로 커피믹스는 출하액 점유율이 전년 대비 19.7% 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눈에 띄는 것은 같은 기간에 원두커피의 출하액 점유율이 5.9% 포인트 뛰며 상승세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내리막을 걷고 있는 커피믹스 시장과 달리 인스턴트 원두커피는 ‘나 홀로 성장세’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시장조사 기관인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국내 커피믹스 소매 매출액은 2012년 1조2389억원에서 2013년 1조1665억원(감소율 5.8%), 2014년 1조565억원(9.4%)까지 떨어졌다. 2015년에도 1~3분기 매출액은 751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기간 인스턴트 원두커피 시장 규모는 2012년 500억원에서, 2013년 1200억원, 2014년 1500억원, 2015년 18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4년 사이에 시장 규모가 3배 이상 커진 것이다.

커피믹스에서 인스턴트 원두커피로 ‘왕좌의 교체’가 일어난 것은 국내 커피 문화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장 먼저 꼽히는 요인은 예전과 달리 ‘다양한 취향’의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커피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커피 전문점을 필두로 캡슐 커피, 에스프레소 커피 머신 등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달디단 커피믹스의 맛에 길들여졌던 소비자들이 다양한 커피 맛을 즐길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원두커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동서식품, 커피믹스 점유율 83.9%

‘맥심 vs 프렌치카페’에서 ‘카누 vs 루카’로….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에 따라 국내 대표적인 커피믹스 제조업체들 또한 빠르게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동서식품과 남양유업의 대결 구도가 커피믹스 브랜드에서 인스턴트 원두커피 브랜드로 무게중심이 옮겨 가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커피 업체인 동서식품은 지난 35년간 줄곧 독보적인 1위를 지켜 온 커피믹스 시장의 절대 강자다. 국내 첫 커피 생산, 국내 첫 커피크리머(프리마) 생산, 국내 첫 커피믹스 생산 등 국내 커피 산업의 발전을 이야기할 때 동서식품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닐슨코리아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커피믹스 시장의 점유율은 동서식품이 83.9%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남양유업은 10.0%, 롯데 네슬레가 5.2%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동서식품의 강점이자 약점이 됐다. 전체 매출에서 약 75%를 차지하던 커피믹스 시장이 흔들리자 동서식품 전체가 휘청거리게 된 것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2015년 3분기 동서식품의 누적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3% 감소한 1조1195억원이다.

커피믹스 시장이 정점을 찍었던 2012년 1조5603억원을 기록한 이후 2013년 1조5303억원, 2014년 1조5056억원으로 소폭이나마 매년 주춤거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동서식품은 다양한 전략을 모색 중이다. 그중 하나가 설탕 함유량을 줄인 저당 커피다. 동서식품은 지난해 11월 설탕을 3분의 1로 줄이고 자일리톨과 벌꿀을 넣은 ‘맥심 모카골드 에스’를 출시했다.

저당 커피와 함께 동서식품이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다름 아닌 인스턴트 원두커피 ‘카누’다. 2011년 출시된 카누는 기존 커피 전문점에서 즐기던 원두커피를 저렴한 가격에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개발된 프리미엄급 인스턴트 원두커피다. 기존 커피믹스와 비교해 물에 쉽게 녹으면서도 원두의 맛과 향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2012년 2억3000만 개가 판매된 데 이어 2013년 3억7000만 개, 2014년 5억6000만 개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지난해 판매량은 7억4000만 개로 3년 새 3배 이상 증가했다. 이 같은 전략 덕분에 동서식품은 인스턴트 원두커피 시장에서도 줄곧 선두를 유지 중이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15년 인스턴트 원두커피의 물량 기준 시장의 85.8%를 동서식품의 카누가 차지하고 있다.
공유가 모델을 맡고 있는 동서식품 카누와 강동원이 모델을 맡고 있는 남양유업의 '루카스9'.(동서식품, 남양유업 자료사진)
공유가 모델을 맡고 있는 동서식품 카누와 강동원이 모델을 맡고 있는 남양유업의 '루카스9'.(동서식품, 남양유업 자료사진)
◆ 남양유업, ‘루카스9’으로 고급화

남양유업과 롯데 네슬레 등 경쟁자들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2010년 커피믹스 시장에 본격 진출한 남양유업은 무지방 우유를 첨가한 프렌치카페로 2011~2012년 단숨에 커피믹스 시장 2위로 떠오르며 각광 받았다. 김태희·강동원 씨 등 톱스타를 앞세운 TV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이 효과를 발휘한 덕분이었다.

2015년 11월에는 당 함량을 대폭 낮춘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리뉴얼 신제품을 출시하며 경쟁 업체들의 저당 커피 전략에 맞서고 있다. 기존 커피믹스의 6g 이상이던 당 함량을 4g대로 대폭 낮추면서도 가격은 그대로 유지했다.

커피믹스에 이어 동서식품과의 2차전을 위해 남양유업이 전략적으로 앞세우고 있는 제품은 인스턴트 원두커피 브랜드 ‘루카스9’이다. 2012년 2월 출시한 루카는 아로마 추출 방식과 브라질산 솔루블(동결건조 커피), 미세하게 분쇄한 아라비카 원두를 혼합해 커피향을 극대화한 제품이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현재 인스턴트 원두커피 시장에서 남양유업 루카스9의 점유율은 4.1% 수준이다.

◆ 롯데 네슬레, 원두 시장서 2위로

동서와 남양에 이어 인스턴트 커피 시장에서 만년 3위에 머무르던 네슬레도 롯데와 손잡은 뒤 인스턴트 원두커피 시장점유율 2위로 올라서며 두각을 보이고 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롯네네슬레 크레마의 점유율은 7.7%까지 올라섰다. 글로벌 커피 업체인 네슬레는 2014년 6월 롯데그룹의 종합 식품 회사인 롯데푸드와 각각 지분 50%를 투자해 롯데네슬레코리아(주)라는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합작 전인 2013년 네슬레에서 선보인 ‘수프레모 크레마’를 시작으로 올해 3월 10일에도 네슬레 본사와 코스트코가 공동 개발한 프리미엄 스틱 원두커피 ‘네스카페 리저브’를 출시하는 등 인스턴트 커피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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