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분 제도, 47년 만에 대수술
형제자매·패륜 가족 유산상속 못 받아

[법알못 판례 읽기]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4월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민법 제1112조 등 유류분 제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및 헌법소원 선고를 위해 자리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형제자매에게 유산상속 강제’는 유류분 제도 위헌이라고 선고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4월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민법 제1112조 등 유류분 제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및 헌법소원 선고를 위해 자리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형제자매에게 유산상속 강제’는 유류분 제도 위헌이라고 선고했다. 사진=연합뉴스
장남에게 유산을 몰아주던 세태 속에서 1977년 민법에 ‘유류분(遺留分) 제도’가 도입돼 1979년 시행됐다. 유류분이란 상속권을 가진 가족이 생계유지를 위해 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한 최소한의 유산 비율을 말한다.

피상속인이 “내 재산은 모두 장남에게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겼더라도 상속받는 사람은 법으로 보장된 유류분만큼은 유산을 받을 수 있다.

재산을 가족 공동 소유로 봐 자식들의 동의 없이는 아버지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었던 고대 게르만과 ‘유언의 자유’를 제한한 로마공화정의 관습이 독일과 프랑스 민법에 반영됐고 대륙법의 영향을 받은 우리 민법에도 접목된 것이다.

유류분 제도 때문에 상속이 이뤄지고 나서도 유족 간에 재산을 나눠야 한다는 소송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전국 법원에 접수된 유류분 청구 소송 건수는 2012년 590건에서 2023년 2035건으로 급증했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유류분 제도가 도입 47년 만에 수술대에 올랐다. 헌법재판소가 핵가족화 등 사회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며 2024년 4월 25일 일부 조항에 대해 처음으로 위헌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고인의 형제자매에게 유류분을 부여하는 조항은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즉시 효력을 잃었다. 학대, 유기 등 ‘패륜 가족’에 대한 유류분권 상실과 간병, 부양, 경제적 기여 등의 인정도 주문하며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해선 2025년 말까지 법 개정을 해야 한다. 더불어 기업 성장에 기여한 상속인의 경우 유류분 반환청구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향후 국회에서의 논의 과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형제자매 유류분 소송은 ‘기각’

헌재는 이날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인정한 민법 제1112조 4호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 조항은 고인의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경우 부모와 형제자매에게 법정 상속분의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보장하고 있다.

헌재는 “형제자매는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나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 등이 거의 인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류분권을 부여하는 것은 그 타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독일·오스트리아·일본 등 대부분 국가는 형제자매를 유류분 권리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위헌 결정으로 4호는 즉시 효력을 상실했다. 이에 따라 형제자매가 제기한 유류분 청구소송은 진행 중인 소송을 포함해 모두 기각될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이전에 판결이 확정된 사안은 재심청구가 인정되지 않게 된다. 비혼이 증가하는 가운데 대학 등 공익법인,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 등에게 생전 증여나 유증을 하는 경우가 늘어날 전망이다.

‘유류분 상실 사유’, ‘기여분’ 헌법불합치 결정

헌재는 부모를 장기간 학대하는 패륜적인 행위 등을 유류분 상실 사유로 별도 규정하지 않은 민법 제1112조 1~3호와 피상속인을 오래 부양한 기여를 인정하지 않은 민법 제1118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관련 내용은 2025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국회가 관련 규정을 개정할 때까지 효력을 유지한다.

민법 개정 전까지는 현재의 유류분 관련 규정에 따라 판결을 선고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유류분 소송 당사자들이 상대방의 유류분 상실사유와 자신의 기여분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재판부 역시 민법 개정의 경과를 지켜보면서 판결을 선고하면서 재판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국회는 유류분 상실사유를 정하는 과정에서 학계,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폭넓게 의견을 수렴할 전망이다.

지금까지 유류분 상실사유로 △ 피상속인 등에 대한 범죄행위나 학대, 유기 등의 부당한 행위가 있는 경우 △피상속인 등이 공증이나 법원 청구로 해당 상속인의 유류분을 상실시키는 경우 △피상속인에 대해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는 경우 등이 논의됐었다.

‘기여분’은 이미 상속재산 분할을 전제로 한 기여분 규정 및 판례들이 존재하고 있다. 대법원도 ‘기여상속인이 피상속인으로부터 기여에 대한 대가로 받은 생전증여를 특별수익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인한 민법 개정 과정에서 해당 개정 내용의 효력발생 시점에 대해 결정을 해야 한다. 아직 법무부와 국회의 개정 방향이 마련되기 전이지만 개정 규정이 소급해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기업승계 분쟁 치열해지나

기업 오너들이 후계자에게 지분을 몰아준 경우 사후에 배우자와 다른 자녀들 사이에서 유류분 반환청구소송이 제기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경영권 분쟁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어 가업승계 ‘걸림돌’로 여겨져 왔다.

헌재는 사망한 사람이 생전 증여한 재산의 가액을 유류분에 가산하는 민법 제1113조 조항에 대해 합헌 판단하며 공익 기부와 가업승계 등을 목적으로 증여한 재산도 유류분에 예외 없이 포함된다는 기존 법리를 유지했다.

다만 피상속인이 공익단체에 증여하거나 가업승계를 위해 지분을 증여한 경우까지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에 포함되는 것에 대해 일부 재판관이 위헌 취지의 보충 의견을 제시했다.

김형두·이영진 재판관은 “피상속인이 공익단체에 증여한 경우 또는 가업승계를 위해 가업의 지분을 증여한 경우까지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에 산입한다면 궁극적으로 피상속인의 의사에 배치되고 공익에도 반할 수 있다”며 입법의 필요성을 밝혔다.

이는 향후 국회 개정 과정에서 반영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유류분 상실 사유’와 ‘기여분’은 기업승계 등 기업의 지배구조 등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돋보기]
배우자 유류분 비율도 논의될까

헌재는 자녀와 배우자의 유류분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현행 규정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생존 배우자의 유류분을 자녀보다 우대해야 한다는 별개 의견이 나와 주목된다.

민법 제1112조는 사망한 사람의 유증이나 유언이 있더라도 자녀·배우자는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을, 부모와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상속 재산으로 보장한다.

헌재는 “법원이 재판에서 구체적 사정을 고려해 유류분 권리자와 각 유류분을 개별적으로 정하도록 할 경우 심리의 지연 및 재판비용의 막대한 증가 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일률적 유류분 비율은 현행법상 정당하다고 봤다.

다만 김형두·이영진 재판관은 별개 의견을 통해 “사망한 사람의 배우자가 생존권을 보호받아야 할 필요성은 자녀보다 더 절실하다”며 “자녀와 배우자의 유류분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법조계는 배우자가 상속에서 직계비속보다 우대받아야 한다는 별개 의견이 국회의 개정 작업에 반영될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행 배우자 상속분이 이혼 시 재산분할보다 불리하게 적용되는 만큼 더 많은 유류분을 배우자에게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생전에 이혼하게 되면 혼인 기간에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가사와 양육 등을 전담한 경우에는 최대 50%까지 재산분할이 인정된다. 더욱이 그 재산분할에 대해서는 증여세나 양도소득세 등 어떠한 세금도 부담하지 않는다.

반면 상속받을 경우에는 자녀 등 공동상속인의 숫자에 따라 상속분이 급격하게 줄어들 뿐만 아니라 50%에 달하는 상속세를 부담해야 한다. 특히 기업승계를 전제로 하는 최대주주 지분에 대해서는 60%의 실질 세율이 적용되는 실정이다.

법무법인 세종의 상속·자산관리팀을 이끄는 백제흠 대표변호사는 “배우자의 상속분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이혼을 장려하는 법’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며 “배우자 선취분에 대한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공청회도 갖지 못한 채 무산됐다”고 지적했다. 배우자 선취분은 배우자가 50% 상속분을 우선 분배받고 나머지 50%는 배우자 포함 현재와 동일한 비율로 분배하는 것을 말한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