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신라 ‘동북아 대표 면세점’ 노려}
{H&M, 명품 브랜드와 협업으로 이미지 높여}

[강성호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재계 리더 두 사람의 활짝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기사가 게재됐다. 한 사람은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었다.

기사의 내용은 서울 용산의 아이파크신라 면세점 개장에 관한 소식으로,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이 공동출자로 설립한 ‘HDC신라면세점’이 운영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HDC신라면세점을 통해 세계적인 업체와 겨룰 수 있는 동북아 대표 면세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세계 면세점 시장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몸집 불리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과 근접한 중국·일본·홍콩 등 모두 면세점을 대형화하는 추세다. 용산 아이파크신라 면세점은 이에 대응하는 선봉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신라면세점의 운영 노하우와 현대산업개발의 탁월한 입지가 결합된 ‘신의 한 수’라고 평가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기업 간에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을 ‘컬래버레이션’이라고 한다.

기업 간의 브랜드나 기술 등을 공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조직 내에서 다양한 역량을 융합해 시너지를 제고하는 것 또한 컬래버레이션이라고 한다. 이러한 컬래버레이션이 최근 들어 주목받고 있고 이와 관련된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

컬래버레이션이 기업에서 주목해야 하는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은 아무래도 빠르게 변하는 기업 환경이다. 정보통신기술(ICT) 및 데이터기술(DT)을 비롯한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산업 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또한 고객에게 제공되는 인포메이션의 양이 증가하며 고객의 니즈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 경영의 스피드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스피드를 높일 수 있는 대안 중 하나가 바로 컬래버레이션이다. 앞선 언급한 현대산업개발과 호텔신라의 면세점 공동 사업도 마찬가지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경쟁자의 덩치 키우기 경쟁에서 자칫하면 뒤처져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 호텔신라가 부지를 조성하고 현대산업개발이 면세점 운용 역량을 확보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두 회사가 협업함으로써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1+1=10’ 컬래버레이션의 마법
(사진=H&M 제공) 지난해 서울 명동의 H&M 매장 앞에서 소비자들이 H&M과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발망의 한정판 협업 제품을 사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 레고, ‘심슨가족’으로 수요층 넓혀

이처럼 컬래버레이션은 신속하게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하나의 전략적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를 통해 고객에게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다양성·신선함·재미 등으로 나타난다.

스웨덴의 스파(SPA : 제조·판매 일괄형 의류) 브랜드 H&M은 명품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상품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있다. H&M은 2004년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인 칼 라거펠트와 협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을 핵심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삼고 있다.

그간 소니아 리키엘과 지미추·랑방·베르사체 등 수많은 명품 프리미엄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 왔다. 2012년 출시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와의 합작품은 한국에서 전 세계 통틀어 최단 시간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완판’에 소요된 시간은 불과 3시간 반이다. H&M은 이러한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명품 디자이너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명품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 행사 때 몰려드는 고객 때문에 홍역을 치르곤 한다.

2014년에도 H&M은 알렉산더 왕과의 컬래버레이션을 국내에 출시해 1200여 명이 명동·압구정 등 매장 입구에서 줄을 섰다. 이 중에는 이틀 전부터 기다렸던 사람도 있었다.

작년 말의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발망과 함께 제작한 ‘발망×H&M 컬렉션’에는 무려 6일 이상 노숙을 하며 대기한 고객까지 있었다. 심지어 판매 당일에는 1인당 구매량을 스타일·사이즈별 1개로 제한함에 따라 고객들 간의 몸싸움도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H&M이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명품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지속하는 것은 H&M의 브랜드 이미지 상승효과를 유발한다. 이뿐만 아니라 저렴하게 고급 디자인의 패션을 경험하고 싶은 고객을 만족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반면 명품 브랜드로서는 자신의 디자인을 대중적으로 알림과 동시에 장기적으로 명품 브랜드로 유입될 수 있는 가망 고객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상호 이익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영화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제임스 본드카’ 역시 강력한 브랜드 간 컬래버레이션 작품이다. ‘007’의 컬래버레이션 파트너는 애스턴 마틴이다. 영국의 스포츠카 애스턴 마틴은 ‘본드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별명은 애스턴 마틴의 일관된 마케팅 전략의 산출물이다. 애스턴 마틴은 ‘007’ 영화 시리즈 외에는 대중매체에 잘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생산량도 많지 않다. 1년에 4000대 이상은 만들지 않는다. 100년이 넘는 업력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까지 생산된 자동차는 7만5000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007’ 영화에는 온 힘을 쏟는다. 지난해 개봉된 ‘007 스펙터’에는 애스턴 마틴의 ‘DB10’이 등장한다. 애스턴 마틴은 오로지 이 영화만을 위해 수십 개월을 연구하고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강력한 브랜드는 제품을 뛰어넘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애스턴 마틴의 전략적 판단 때문이다. 고급스러우며 행동이 민첩한 ‘007’만큼 애스턴 마틴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는 캐릭터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브랜드 상호간에 비슷한 이미지를 갖추고 유사한 고객군을 보유하고 있을 때 보다 강력한 브랜드 영향력을 갖는다. 이런 점 또한 애스턴 마틴이 ‘007’ 영화에 집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애스턴 마틴의 애호가들은 차를 몰면서 마치 영국 정부의 비밀 첩보 요원이 된 듯한 느낌을 갖는다고 한다. 앤디 팔머 애스턴 마틴 최고경영자(CEO)는 “멋진 브랜드끼리 힘을 모으면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10이 되는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며 컬래버레이션을 통한 마케팅을 강조한다.

한때 파산 위기에 몰렸지만 이를 극복하고 최근 ‘기업 혁신의 교과서’라고 평가 받는 기업이 있다. 바로 덴마크를 대표하는 완구 기업 레고다. 레고의 경영 위기 극복에는 다양한 전략들이 동원됐는데, 그중 하나가 컬래버레이션이다. 현재 레고 매출의 20%는 성인 고객이다. 이러한 성인 고객을 유입하는 데 컬래버레이션이 전략적으로 크게 기여했다.

대표적인 예가 레고 심슨하우스다. 이 상품의 탄생 배경은 미국 방송사 FOX에서 방영 중인 ‘심슨가족’이라는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이다. 미국의 방송 역사 중 시트콤 및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최장수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 성인 애니메이션 대중화에 공헌한 작품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레고의 심슨하우스는 바로 이 프로그램의 스토리와 캐릭터를 블록으로 만들어 완구화한 상품이다.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은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이 바로 블록 완구 레고다. 그런데 성인들을 웃게 만들었던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이 블록 완구로 나왔다. 이는 어른이 돼 이미 어린 시절의 추억과 즐거움이 사라진 사람들에게 다시 레고로 눈을 돌리게끔 만들었다.

심슨하우스는 시리즈로 지속 출시되며 어린 시절의 감성을 지닌 키덜트(kidult)를 끌어들이며 새로운 레고의 고객층으로 자리 잡게 했다.

이처럼 컬래버레이션은 기업의 내부 역량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데에도 유용한 콘셉트다. 인시아드의 모튼 한센 교수는 “앞으로 기업의 경쟁 우위는 조직 내부에 흩어져 있는 자원을 효과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컬래버레이션 역량이 될 것이다.

특히 컬래버레이션은 그 속성상 남이 쉽게 모방하기 힘들기 때문에 지속적인 경쟁 우위 요소가 될 것”이라며 기업 내부의 컬래버레이션을 강조했다.
‘1+1=10’ 컬래버레이션의 마법
◆ 조직 문화와 시스템 정비 필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경영진이 기업 구성원들에게 컬래버레이션을 강조하더라도 구성원들이 잘 따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타 구성원을 돕거나 협업하는 것이 자신에게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2010년 그래그 팍스 워싱턴주립대 교수의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공동 목표를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구성원이 오히려 주변 동료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로버트 프랑크 코넬대 교수는 이러한 요인을 기업의 평가 및 보상 시스템에서 찾는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채택하고 있는 상대평가와 이에 따른 차별적 보상은 구성원들에게 제로섬 인식을 준다.

즉, 누군가는 최우수 등급을 받으면 그만큼 누군가는 최하위 등급을 받아야 하는 구조다. 이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남을 돕는 것이 손해라고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심하면 동료의 성과를 깎아내리게 된다.

따라서 조직 내의 컬래버레이션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평가 제도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딱히 뚜렷한 개선 방향을 찾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캐럴 드웩 스탠퍼드대 교수는 자기 학습에 대한 평가를 제시한다.

평가 지표로 자기 학습 관련 비율을 높이면 구성원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위해 더 많은 탐색 활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컬래버레이션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준비 안 된 컬래버레이션은 오히려 ‘독’

또한 조직 내의 컬래버레이션이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도록 조직 문화와 시스템에 대한 정비도 필요하다. 미국의 애니메이션 전문 영화사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Braintrust)가 좋은 예다.

브레인트러스트는 픽사를 대표하는 핵심 멤버들과 영화감독·제작팀이 한자리에 모여 제작 중인 영화의 이슈를 공유하고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회의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구성원들은 매우 긴밀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만드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박스 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 회의는 어느 회사에나 있지만 픽사의 성공적 운영에는 참가자 간에 공유된 문화와 룰이 존재한다. 이를 통해 참가자 간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아이디어 교환이 쉽게 이뤄지는 분위기가 유지된다. 예를 들면 참가자들은 브레인트러스트에 참석할 때 이슈 해결을 위한 미팅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참석한다.

또한 이 자리에는 상사의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사는 한 사람의 참여자로 조언할 수 있지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지는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이 회의에서는 의견 충돌을 미덕으로 삼는다.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창조적 갈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 IDEO에는 ‘튜브(Tube)’라는 내부 컬래버레이션 시스템이 있다. 튜브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구성원들이 협업할 수 있도록 구축한 일종의 인트라넷이다.

튜브는 HR 데이터베이스, 자산 관리 시스템, 전자메일과 같은 기존 업무 시스템과 블로그, 위키, 실시간 화면 공유와 같은 소셜 네트워킹 툴을 결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상호간 업무 공유와 학습을 유도하고 있다.

단순히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해서 컬래버레이션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튜브 시스템은 IDEO 직원들이 어떻게 협업하는지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구성원들이 정보를 어떻게 나누는지, 나누지 않는다면 어떤 요인인지 등을 면밀히 조사하고 수많은 고민의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출시 6개월 후 이를 통한 1000개 정도의 프로젝트 페이지가 탄생했고 14개월 후에는 1만 개 프로젝트 페이지가 탄생했다. 약 95%의 구성원이 자신의 블로그를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다양한 주제에 대한 공유와 학습이 진행되고 있다.

협업 경영 전문가인 에이미 에드먼스 하버드대 교수는 점차 함께 일해야 하는 산업들이 증가한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여러 분야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업무 능력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자신의 분야를 넘어 다른 전문가에게 손을 내미는 능력이 우수한 인재의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내부 자원뿐만 아니라 타 기업의 자원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향후 기업의 경쟁력을 가늠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