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
{정해진 답은 없어…입체적 사고가 미래의 해법}
토끼는 왜 물만 먹고 갔을까
(일러스트 김호식)

[한경비즈니스=김경집 인문학자(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초등학교 때 ‘옹달샘’이라는 동요를 배웠을 것이다(한국의 동요라고 여기지만 사실 이 노래는 독일 노래에 윤석중이 우리말로 가사를 붙인 노래다).

우리의 교실 수업은 대부분이 그 과목의 기능과 지식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음악 시간에는 음악의 요소, 즉 ‘선율·박자·화성’ 등 음악의 기본 요소들과 음악가· 음악사 등 음악적 지식을 배우고 기능, 즉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익히는 등으로 채워진다.

20세기에는 세상의 흐름이 ‘속도와 효율’이 중심이 됐기 때문에 교육 또한 그런 방식으로 이뤄졌다.

동요 ‘옹달샘’을 배우는 음악 시간에 선생님은 피아노를 연주하며 학생들에게 선율을 익히게 한다. 가사에 대해 꼼꼼하게 짚어본 적은 없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가사가 참 간단하다. 이제 하나씩 따져보자. 노래의 주인공인 토끼는 왜 그렇게 새벽에 일찍 일어났을까. 가사에 있다. ‘세수하러’ 그렇게 일찍 일어났다. 토끼의 소망은 깨끗한 물에 세수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이걸 거창하게 말하자면 ‘행복추구권’이다. 행복추구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그런데 이 토끼가 이상하다. 세수하러 왔는데 세수를 하지 않다니. 왜 세수를 하지 않은 걸까. 우리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방식대로 생각할 권리’가 있다. 누가 생각을 강요했나. 아니다. 자신이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다.

그걸 개념적으로 설명하면 바로 ‘사상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이것 또한 헌법에 보장된 자유고 권리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자. 자신은 한 가지 또는 몇 가지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이 모두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다른 친구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른 친구의 다른 생각은 그의 권리다. 그런데 자기 생각에 그런 다른 생각들이 덧붙여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하나의 답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고 자기 생각에 다른 친구들의 다른 생각들이 더해지면 생각이 확장되고 서로 얽혀 복합적인 생각이 될 수도 있다.

‘생각의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이 바로 집단지성의 훈련이다. 우리가 혼자 공부하지 않고 학교에 함께 모여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그런 목적 혹은 효과 때문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친구들 가운데 꼭 이상한 대답을 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녀석들이 있다. 선생님이 토끼가 세수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을 때도 그런 이상한 대답을 하는 친구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속으로 어떻게 생각할까. ‘뭐 저런 놈이 있냐?’ 혹은 ‘쟤 바보 아냐?’ 그러거나 ‘아, 재수 없어!’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그 친구에 대해 판단한다.

선생님이 다시 물어본다. “넌 왜 그렇게 생각하니?” 그 친구가 더듬더듬 대답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 보라. 아까 그 친구가 대답했을 때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기 친구의 영역에서 지워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전부 다 동의할 수는 없어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거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직선적·평면적 사고 넘어서야

여기에 두 가지 생각할 거리가 있다. 우선,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남 눈치 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표현의 자유’다.

앞에서 말했던 권리, 즉 사상의 자유와 묶어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음악 시간에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배운다니까 이상한가.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사회나 윤리 시간에 개념으로만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배워 그저 하나의 지식으로만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실감하고 단순히 머릿속에 담긴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으니 아무리 일찍 익혀도 부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그러면 다른 한 가지 생각할 것은 무엇일까. 아까 어떤 친구가 이상한 대답했을 때 속으로 비난하거나 비웃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대답을 듣고 어떤 점에서는 일리가 있고 동의하고 공감할 점도 있다. 그러면 자신이 너무 성급했던 셈이다.

개념이나 원리로 배우고 머릿속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그 내용과 구체적 상황을 배우고 가슴속에 느낄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 정의로운지 늘 기억할 것이다. 이런 게 입체적 사고다.

그저 속도와 효율, 즉 문자적 지식만 습득하는 것은 그에 반해 ‘직선적 사고’ 혹은 ‘평면적 사고’일 뿐이어서 실제로 구체적인 일이 닥치면 내용과 흐름을 정확하게 인식해 판단하며 실천하지 못하기 쉽다.

따라서 다양한 시각과 생각으로 느끼고 늘 그 깨달음을 품으면서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정의를 떠올릴 때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교육의 혁명이 필요하다.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가 21세기의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고 행복한 미래, 멋진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 망설일 까닭이 없고 그럴 여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