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들르는 ‘포차’로 월 매출 1000만원…단골만 100여 명

지하철 5호선 마포역 4번 출구 옆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간판조차 없는 ‘실내 포차’가 눈에 띈다.

예전에는 ‘마포역 버들골’으로 불리며 간판이 있었으나, 최근 간판을 아예 떼어냈다. 이 포장마차의 이름을 묻자, 김수범 사장은 대뜸 ‘무제’라고 소개한다. 문자 그대로 ‘이름 없는 술집’이라는 뜻이다.

장사하는 집에 ‘가게 이름’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싶다만, 이곳은 그야말로 ‘가게 이름이 필요 없는’ 집이다. 취재 중 만난 한 손님은 “간판 보고 찾아오는 집이 아니다”며 “‘한국판 심야식당’과 같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심야식당’은 늦은 밤 술집을 찾은 단골손님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치유를 받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술을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기 위해’ 찾는다는 얘기다.
‘한국판 심야식당’으로 단골손님 붙잡아
◆퇴근길 들르는 ‘포차’로 월 매출 1000만원…단골만 100여 명

김 사장이 이 포장마차 운영에 뛰어든 것은 2년 전인 2014년 7월 무렵이다. 지인이 운영하던 가게를 인테리어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넘겨받아 장사를 시작했다. 이곳은 1층이라고 해봐야 고작 13.2m²(4평) 정도의 좁은 공간에 테이블 4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복층 구조로 돼 있는 2층 다락방엔 테이블 5개가 더 마련돼 있다. 원래도 손님이 없던 가게를 물려받은 탓에 장사를 시작하고 첫 3개월간은 하루 매출 20만원도 안 되는 때가 부지기수였다. 원래 테이블이 많은 집이 아니지만, 하루 4개의 테이블을 채우기도 힘겨운 시절이었다.

6개월쯤 지나자 가게 분위기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두 번 씩 꾸준히 이곳을 찾는 단골손님이 생기기 시작했다. 김 사장이 가게를 넘겨받은 지 정확히 1년 만에 매출이 2배 이상 뛰어올랐다. 현재는 월 평균 1000만원 이상을 거뜬히 올리고 있다.

김 사장은 “가게를 시작하고 1년 동안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사람을 많이 얻었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마포역 상권의 특성상 주거지역에 가까이 있다 보니, 퇴근길 혼자 술로 목을 축이려고 포장마차를 찾는 손님들이 적지 않았다.

그럴 때면 김 사장은 이들과 함께 두런두런 살아가는 얘기를 나눴던 게 전부다. 그러다보니 손님과 주인의 관계를 넘어 속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됐다.

언젠가 한번은 김 사장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주일 동안 가게 문을 닫아야 할 때가 있었다. 이 사정을 들은 단골 중 한명이 자진해서 가게 문을 열고 영업을 대신한 적도 있었다. 실제로 가게에 일손이 바쁠 때면 단골들이 알아서 음식을 서빙하거나 테이블을 정리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퇴근길에 심심해서 그냥 들러봤다”는 한 손님은 이곳에서 우연히 먼저 자리를 잡은 지인들을 만나 술자리에 합석했다. 한 동네 이웃들과 얼굴 트고 지내기도 힘든 서울 한복판에서, 이곳은 ‘동네 친구’를 사귀기에도 더없이 좋은 장소가 됐다. 그러니 김 사장이나 단골들이나 스스럼없이 서로를 ‘우리 편’이라고 부른다.

김 사장은 가게를 홍보하는 데 따로 비용을 쓰지 않는다. 단골이 단골을 낳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인간미 넘치는 이 포장마차의 분위기에 반한 ‘우리 편’들이 지인을 데리고 오면, 그들 또한 ‘우리 편’ 중의 하나가 된다. 그렇게 형성된 단골만 현재 100명이 넘는다.

의도적으로 ‘단골 마케팅’을 내세운 건 아니었지만, 주거지와 오피스를 끼고 있어 뜨내기 손님이 적은 마포역 상권에 딱 들어맞는 영업 전략이었던 셈이다.

김 사장은 앞으로 단골이 아무리 늘어나고 장사가 잘 되더라도 지금과 같은 ‘좁은 가게’를 그대로 유지할 생각이다. 가게가 커지고 손님이 많아지면, 이 포장마차 특유의 분위기까지 사라질 것이란 점에서다.

그는 “우리 가게는 크기도 작고 테이블이 가깝게 붙어있어서인지, 단골들끼리도 쉽게 마음을 터놓고 친구가 된다”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함’이야말로 수많은 동네 단골들이 우리 가게를 찾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경비즈니스 이정흔 기자, 주재익 인턴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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