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 요즘 ‘절벽’이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띈다. 이 단어는 급격한 변화에 따른 경각심과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인구 절벽’이라는 말도 생소하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저출산·고령화’는 한국의 가장 큰 구조적 문제로 꼽힌다. 한국의 생산가능연령인구(15~64세)는 2016년 3700만 명으로 정점에 달했다가 내년부터 감소해 2050년에는 2500만 명 수준으로 32%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가능연령인구가 이처럼 급속히 줄어드는 반면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추세대로 가면 2050년에는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이 40% 수준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지난 10여 년간 수많은 대책이 발표됐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 많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인구정책은 정권과 무관하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입안되고 추진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급박한 현안으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그나마 마련된 정책도 단기적인 미봉책에 그치고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지 않는 것이 많았다.
한국 인구구조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였다. 20년이 지난 2006년에서야 ‘새로마지 플랜 2010’이라는 이름으로 제1차 저출산·고령화 기본 계획이 발표됐고 그 이후 5년 주기로 후속 계획이 발표돼 지금은 작년에 나온 3차 기본 계획 ‘브리지 플랜(Bridge Plan)’이 추진되고 있다.
물론 1, 2차 계획이 전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합계 출산율이 2005년 1.08에서 2015년 1.24로 증가했다. 하지만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1차 기본 계획은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시키기는 했지만 대책이 보육 관련 부문에 편중돼 ‘일·가정 양립’이 미흡했고 민간 부문의 참여가 저조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차 기본 계획은 저출산의 근본 원인이 주택·교육·일자리의 구조적 결함에 있다고 보고 육아휴직 급여 인상, 맞벌이 부부 보육료 지원 확대, 임금피크제 활성화, 농어업인 연금보험료 지원 등에 77조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사회적 대타협이 결여된 정부의 일방적 결정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3차 기본 계획에서는 그간의 미시적이고 현상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종합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저출산 문제가 정부 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회의 인식과 문화 전반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바람직하다.
출생에 대한 사회 책임 강화, 일·가정 양립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정책 도입, 인구영향평가제 도입 추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실효성을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정책의 중심을 기혼 가구 보육 부담 경감에서 고용·주거 등 만혼·비혼 대책으로 전환한 것도 특징적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한국이 어떤 인구구조를 가져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지향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
브리지 플랜이라는 용어 자체가 인구 보너스(bonus)기에서 인구가 줄어드는 인구 오너스(onus)기로 이행하는 과도기를 안정적으로 잇겠다는 정책 의지를 반영한 것이기는 하지만 정책 목표가 합계 출산율, 생산가능연령인구 등 여전히 총량적 지표에 집중돼 있다.
2020년까지 합계 출산율을 1.5까지 끌어올리고 이를 2045년까지 인구 대체 수준인 2.1까지 제고하겠다는 목표를 구체화한 측면은 있지만 지금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한 현실적인 목표로 보기는 어렵다.
현시점에서 출산율을 제고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출산율 지표에 집착한다면 한국의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를 들어 혼외 출산율이 50% 내외 수준에 달하는 서구 국가들이 현실적으로 한국의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
생산가능연령인구 감소에 대한 두려움을 가중시켜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것보다 1인당 소득수준을 높이면서 동시에 소득 불평등을 완화해 나가는 방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인구정책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적정인구 규모가 어느 수준일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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