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강과 동이리 주상절리
연천으로 향하는 길은 소란하지 않았다. 고요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한적하고 인적도 드물었다. 임진교를 지나 합수머리 즈음에 도달했을 때 동이리 주상절리가 눈에 들어왔다. 초록빛 담쟁이덩굴에 가려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주상절리 절벽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임진강과 어우러지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 연천역과 증기기관차 그리고 급수탑
연천 지도를 살피니 재미있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동두천역에서 출발하는 경원선 기차가 멈춰서는 9개의 역 중 7개의 역이 연천에 있다는 것이다. 이 작은 마을에 7개의 역이라, 아이로니컬하다는 생각을 하며 연천에 왔으니 연천역에 가보기로 한다.
간발의 차이로 상행, 하행 두 대의 열차가 연천역에 정차했다. 열차 시간 즈음에 잠시 북적였던 역은 열차가 떠나자마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침묵했다. 역사 담벼락의 증기기관차 벽화를 따라 걸으니 자그마한 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벽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작은 증기기관차 모형도 볼 수 있었다.
증기기관차는 수시로 물을 보충해야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경원선 열차는 서울과 원산을 오가며 이곳 연천역에서 급수를 한 뒤 달렸다고 한다. 공원에는 두 개의 급수탑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네모난 급수탑은 1914년, 둥근 기둥 모양의 급수탑은 1930년대에 지어졌다. 한국전쟁 당시 총탄을 온몸으로 받아내고도 거뜬했나 보다. 곳곳에 남은 총탄 자국을 슬며시 어루만져보았다.
◆ 군남댐과 두루미 테마파크
연천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군남댐 방류로 시끌시끌했던 것이 떠올랐다. 북한의 기습 방류에 대비해 세운 군남댐의 현재 상황은 어떨지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군남댐을 가고자 했지만 그보다 먼저 반기는 건 두루미 테마파크였다. 이 일대는 대표적인 겨울철새인 두루미와 재두루미, 흑두루미가 최대 200마리 이상 월동한다.
2011년 문을 연 테마파크는 ‘두루미가 들려주는 평화와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평화의 북, 소원나무, 두루미 조형물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군남댐의 진입관문이라는 테마파크의 소개대로 두루미 테마파크를 지나쳐야 군남댐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서인지 군남댐의 수위는 제법 줄어 있었다. 눈으로 보기엔 여느 댐과 다를 바 없었지만 댐 유역의 97%가 북한 땅이라는 사실에 괜스레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게 됐다. 군남댐에서는 임진강의 절경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숲길을 걷는 연강 나룻길에 오를 수도 있다. 임진강의 옛 이름을 딴 연강 나룻길은 군남댐~옥녀봉~중면사무소코스로 7.7km에 달한다.
◆ 태풍전망대와 임진강 평화습지원
휴전선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로 향하는 발길은 기대 반 긴장 반이었다. 태풍전망대가 가까워 올 무렵 중면사무소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어째 익숙한 이름이다 싶었더니 지난 2014년 북한의 고사기관총탄 낙탄지라는 표지판을 보며 ‘아하’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북한의 총탄이 날아올 수 있을 만큼 북한에 가까이 와 있다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태풍전망대에 가려면 민간인통제선을 통과해야 한다. 신분증을 제출하고 잠시 조회가 끝나면 출입이 가능한데, 임진강 평화습지원도 가겠다고 했더니 군인 한 명이 동승했다.
태풍전망대에서는 미세먼지나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덕분에 북한 땅의 모습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망원경을 통해서는 코앞에 있는 것처럼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농장에서 밭일을 하는 주민들, 언덕 위 북한군의 탱크와 붉은 현수막까지도.
“북한이 정말 가까이 있네요”라는 기자의 말과 동시에 쩌렁쩌렁한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북한의 대남방송이었다.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남북 대치 상황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살짝 긴장한 상태로 태풍전망대를 내려와 임진강 평화습지원으로 향했다. 군남댐 조성으로 기존에 있던 두루미 서식처가 사라지게 되자 조성한 인공습지란다. 두루미를 비롯해 청둥오리와 기러기 등 철새들이 날아든다.
민간인통제선 내에서 임진강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소개답게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과 강바람에 바스락거리는 갈대, 파릇파릇 돋아난 율무 싹들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흔들그네에 앉아 잠시 여유를 느껴본다. 조금 전 긴장과는 상반되는 평화로움과 고요함이 이질적이었다.
연천 여행은 처음부터 줄곧 고요했고 평화로웠으며 잔잔했다. 물론 작정하고 찾아보면 화려한 볼거리도 많겠지만, 번잡한 도심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 삼은 조용한 힐링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중간중간 마주한 약간의 긴장감은 이 순간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깨닫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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