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팅에 '시간' 개념 더해
찍어낸 제품이 설정에 맞춰 모양·크기 변신

스스로 자라는 물체 '4D 프린팅의 마법'
4D 프린팅은 3D 프린팅에 ‘시간’의 개념이 더해진 기술이다. 3D 프린터로 제품을 만드는 것은 동일하지만 시간이 지나 제품이 특정 환경 조건에 반응해 스스로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즉 물·온도·압력 등 외부 환경 변화에 반응하는 특수 소재로 제품을 만들면 그 제품이 이후 다른 모양으로 바뀔 수 있다. 따라서 4D 프린팅을 사용하면 제품의 모양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바뀔지 미리 설정해 상황에 맞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스마트 제품을 만들 수 있다.

◆ 형상기억 소재 개발이 핵심

아직은 공상과학 속 기술로만 여겨지지만 4D 프린팅의 가능성에 주목한 여러 선진국들은 핵심 역량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과학재단(NSF)은 4D 프린팅의 연구에 3000만 달러를 투자했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역시 4D 프린팅의 주요 기술 확보 및 응용 연구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호주 전기신소재연구소는 외부 자극에 의해 형태가 바뀌는 물체를 만들 수 있는 4D 프린팅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고 한국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역시 4D 프린팅을 미래의 유망 기술 중 하나로 선정했다.

3D 프린팅과 달리 4D 프린팅의 개념이 등장하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2013년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자가조립연구소의 스카일러 티비츠 교수가 TED 강연회에서 ‘4D 프린팅의 출현’이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강연하면서 4D 프린팅이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됐다.

티비츠 교수는 여기에서 1차원의 선들이 물속에서 3차원 정육면체로 변하는 과정을 시연했다. 그는 이처럼 특정 환경에서 형태가 변형되는 소재를 활용한다면 상황에 따라 필요한 기능을 위해 크기와 모양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티비츠 교수의 강연은 온라인에서 수백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같은 대학의 다니엘라 루스 교수는 3D 프린팅으로 외부 자극에 의해 변신할 수 있는 작은 로봇을 만드는 실험에 성공하면서 4D 프린팅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들은 전기회로가 이식된 형상기억합금을 사용해 종이접기 모양의 로봇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전기를 가해 로봇이 개구리 형체로 변신하는 과정을 선보였다.

4D 프린팅이 실현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형태를 바꿀 수 있는 소재의 개발이다. 어떤 종류의 소재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4D 프린터 제품의 특성이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온도와 수분 등 특정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재를 사용하거나 혹은 원래 형태를 기억하고 있다가 일정한 외부 자극이 주어지면 초기 형태로 돌아가는 형상기억합금을 개발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향후 각종 용도에 맞는 특수 소재가 개발된다면 4D 프린팅의 상용화가 한층 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소재와 함께 제품 설계 및 제작 기술도 4D 프린팅의 주요 과제다. 기존 3D 프린팅과 달리 환경에 민감한 특수 소재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소재의 형상 제작 및 가공을 위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또한 주로 단일 소재를 이용하는 3D 프린팅과 달리 여러 조건에서 다양한 모양으로 변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종류의 소재를 동시에 활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복합 소재를 다룰 수 있는 기술 역시 4D 프린팅의 핵심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4D 프린팅의 파급효과는 3D 프린팅 이상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4D 프린팅이 3D 프린팅의 본질적 한계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D 프린터로는 출력할 수 있는 물체가 작기 때문에 크고 복잡한 물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3D 프린터로 만든 부품을 모아 조립해야 한다.

그러나 4D 프린팅은 물체를 작게 출력한 후 시간이 지나 부피가 커지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큰 제품도 훨씬 수월하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잠재력을 반영해 4D 프린팅 시장이 2025년에는 5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파이프가 스스로 수축·팽창

4D 프린팅을 여러 분야에 적용하기 위한 실험도 계속되고 있다. 티비츠 교수는 4D 프린팅의 파급효과가 큰 대표적인 분야는 바로 ‘극한 환경 산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즉 너무 방대하거나 혹은 위험성이 높아 현재 기술로는 어려운 건설 및 우주개발에서 4D 프린팅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해 티비츠 교수는 건설 엔지니어링 기업 지오신텍(Geosyntec)과 함께 4D 프린팅으로 흐르는 물의 속도와 양에 따라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파이프를 연구하고 있다. 만일 파이프의 크기가 너무 작으면 물을 충분히 수용하기 어렵고 반대로 너무 크면 파이프 인프라가 낭비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는 물의 상태에 반응해 자유롭게 수축 및 팽창할 수 있는 파이프라면 이런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나아가 파이프의 크기 조절 기능 덕분에 펌프 없이도 물이 흐르게 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스스로 자라는 물체 '4D 프린팅의 마법'
◆ 쉽지 않은 상용화…아직은 미지 영역

의학계에서도 4D 프린팅의 발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대개 치료를 위해 체내에 특별한 물체를 삽입하기 위해서는 수술 등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칠 때가 많다. 이에 따라 4D 프린팅으로 의료 제품을 만든다면 이런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체내 조직이 손상됐을 때 실제 크기의 인공 조직을 만들어 삽입하는 대신 4D 프린팅으로 아주 작게 만들어 손쉽게 삽입한 후 시간이 지나면 원래 크기로 돌아와 다른 조직과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 존스홉킨스대는 몸속에서 스스로 조립해 암세포를 치료할 수 있는 마이크로 로봇을 개발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4D 프린팅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3D 프린팅을 활발히 도입하고 있는 항공 기업 에어버스는 비행 환경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비행기 엔진 소재를 연구하고 있다. 독일의 다국적 화학 기업 바스프(BASF)도 바이오 프린팅 기술을 가진 포이에티스(Poietis)라는 프랑스 스타트업과 공동으로 4D 프린팅 연구에 나서고 있다.

한편 4D 프린팅은 디자인 업계에서도 큰 화제를 낳았다. 너브스 시스템(Nervous System)이라는 미국 디자인 기업은 2014년 4D 프린팅을 적용한 드레스를 발표했다. 작은 조각으로 이뤄진 이 드레스는 접힌 상태로 출력되지만 곧 원래 모양으로 변형되도록 고안됐다.

출시 당시 큰 화제를 불렀던 너브스 시스템의 드레스는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될 정도로 혁신성을 인정받았다.

물론 4D 프린팅이 단시일 내에 여러 분야에 쓰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제작자의 의도대로 자유롭게 모양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합한 특수 소재의 생산부터 소재를 다루는 첨단 제조 기술의 개발 등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난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향후 고도의 4D 프린팅 역량을 얻기 위해서는 정보기술(IT)은 물론 나노·바이오·물리학·화학 등 각종 과학과 공학 지식이 총망라돼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용화까지 쉽지 않은 여정에도 불구하고 4D 프린팅의 등장은 이제까지 불가능했던 도전을 성공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아직 4D 프린팅을 위한 뚜렷한 기술 트렌드조차 자리 잡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궁무진한 시장 기회를 선점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연구·개발 경쟁이 한층 첨예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4D 프린팅은 새로운 미래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승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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