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트렌드]
조이스틱 결합해 몰입감 극대화…HTC, 중국서 VR방 첫 시도

‘VR방’이 PC방 대체한다
가상현실(VR) 기기를 체험하는 행사장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시야를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는 안대 형태의 기기를 쓰고 고개를 사방으로 두리번거리거나 손발을 허우적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호기심에 줄을 섰다가 저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다며 되돌아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런데 막상 그 ‘이상한’ 짓을 한 번 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몰입감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평면 화면의 영상을 보는 것과 전혀 다른 ‘가상현실’의 경험은 ‘이상함’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준다. VR가 세상을 바꿔 놓을까. 이 질문을 경험자들에게 던진다면 “예”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VR 기기의 원리는 간단하다. 이용자의 시점을 따라 바뀌는 영상을 보여줌으로써 실제 현실과 다른 새로운 3차원 공간에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자기 두 눈이 자신의 두뇌를 속이는 셈이다.

오큘러스 터치, HTC 바이브 등 첨단 VR 기기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꾸는 기술과 손에 쥐는 형태의 컨트롤러를 채택해 더 정교하게 이용자를 속인다. 자기 눈과 귀와 손이 속임수에 총동원돼 두뇌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기가 더 어렵다.

특히 손에 쥐는 형태의 컨트롤러는 VR 콘텐츠 이용자를 ‘관찰자’에서 ‘주인공’으로 바꿔 준다. 시선이 컨트롤러 역할을 하는 기존 VR 기기의 경험은 가상의 세계를 엿보는 느낌에 머물렀다. VR 게임과 조이스틱의 결함은 이런 한계를 뛰어넘는다.

오큘러스 터치로 1인칭 시점의 총싸움 게임을 해보니 몰입감이 극대화된다. 금속 갑옷으로 무장한 두 팔과 손에 쥐어진 총이 보이는데, 게임 속 캐릭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손의 움직임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캐릭터의 움직임은 자신이 게임 속에 실재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를 봤다면 자기 영혼이 다른 이의 몸속에 들어가 움직이는 그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3D TV로는 흉내 내지 못할 놀라운 경험을 제공하는 VR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오큘러스·HTC·소니 등 해외 기업들이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공격적인 행보에 나섰고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기업들도 관련 제품을 출시하며 대응 중이다.

◆소비자 체험 기회 늘리기 주력

시장조사 업체 슈퍼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VR 기기는 전 세계에 5600만 대 정도 보급될 전망이다. 또 다른 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VR 시장 규모가 70억 달러에서 700억 달러로 연평균 77.8%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에픽게임스의 팀 스위니 대표는 10년 내 10억 대의 VR 기기가 보급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숫자는 엇갈리지만 소비자용 디바이스 중 스마트폰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보급될 것이라는 점에선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관련 업계의 뜨거운 분위기와 달리 대중에겐 VR가 아직 먼 세상처럼 느껴진다. ‘경험’의 차이다. 그래서 HTC는 소비자들이 좀 더 손쉽게 VR를 경험할 수 있도록 ‘VR방’을 보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PC방 업체 순왕커지와 손잡고 중국 최초의 가상현실 PC방을 중국 전역에 오픈하기로 했다. 중국의 VR방은 PC방 시장을 대체하며 연 2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일반 소비자들이 VR 게임을 집에서 이용하려면 고사양 PC와 함께 VR 전용 기기와 컨트롤러를 구입해야 하는 등 비용 부담이 크다. 그러나 VR방에서는 5달러 수준의 이용료를 내면 별도의 공간에서 10분간 VR 게임을 즐길 수 있다. HTC는 진입 장벽이 낮은 VR방을 통해 자사의 VR 기기인 바이브의 이용자 저변을 빠르게 넓히겠다는 계산이다.

중국 시장조사 기관 즈멍리서치는 VR를 경험했거나 관심을 가진 잠재 이용자가 2억86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VR방을 통해 잠재 이용자가 늘어나는 만큼 VR 시장은 더 빠르게 성장할 전망이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양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소니는 오는 10월 13일 VR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VR(PSVR)’를 출시한다. 한 발 늦게 시작했지만 이미 사전 예약 판매에서 매진을 기록하는 등 반응이 뜨겁다.

오큘러스·HTC와 함께 3대 VR 기기 업체들이 연내에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선보이는 한편 국내외에서 VR방까지 등장하면 어느 순간 VR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돼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빠져들 ‘제2의 세상’

새로운 첨단 기술이 대중화될 수 있을지 가늠해 보려면 아이들을 관찰하면 된다. 말문도 떼지 못한 아이들의 손에 스마트폰을 쥐여 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미 부모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터치와 스와이프 등의 기능을 스스로 익히는가 하면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찾아보며 까르르 웃기도 한다.

때로는 어른들이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용도로 스마트폰을 활용하기도 한다. 과거에 매여 있는 어른들은 화면이 큰 휴대전화 혹은 화면이 작은 PC나 TV로 여기는 스마트폰을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무엇으로 받아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따분하고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려는 아이들의 본능은 막기 어렵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공부 외에 빠져드는 그 무언가를 막기 위해 애를 쓰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온라인 게임에 빠져드는 아이들을 막아보려고 ‘셧다운제’까지 도입한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학부모들에게 VR는 PC 온라인 게임보다 더 위험한 존재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VR용으로 제작된 성인 콘텐츠가 ‘우동’이라는 은어로 불리며 암암리에 공유되고 있고 청소년들도 상당수가 여기에 노출돼 있다. 홀로 기기를 쓰고 이용하는 VR의 특성상 남들은 어떤 콘텐츠를 보고 있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게다가 가상의 세계를 현실로 인식하게 만들 만큼 몰입감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일반 게임, 영상 콘텐츠보다 중독성이 더 강하다.

이런 부작용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과 아이들 사이에서 VR는 급속도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VR를 접하면서 자라난 신세대들은 VR와 함께 등장할 새로운 산업과 경제의 주역이 될 수 있다.

2003년 린든랩(Linden Lab)이 출시한 온라인 게임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는 이름 그대로 이용자들에게 ‘제2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가상의 세계를 제공해 많은 이용자를 모았다. 게임 이용자를 주민(residents)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실제 돈과 교환할 수 있는 린든 달러(L$)라는 가상화폐도 발행했다.

이 가상의 세계에서는 부동산을 사고팔거나 임대하는 것은 물론 옷과 가구 등 가상의 재화를 만들어 판매하는 경제활동이 벌어졌다. 서비스 6년 만에 ‘세컨드 라이프’의 경제활동 규모는 5억6700만 달러, ‘주민’들의 연간 총소득(Gross Resident Earnings)은 5500만 달러에 달했다.

뜨거웠던 관심은 식었지만 놀랍게도 ‘세컨드 라이프’는 여전히 건재하다. 최대 110만 명에 달했던 월 이용자 수(MAU)는 9년이 지난 현재 90만 명 수준으로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물론 10명의 주민이 부동산 30% 이상을 차지하는 등 현실 세계 못지않은 변화도 있었지만 여전히 가상 세계의 경제는 건재하다.

VR가 영화·게임 등 기존 콘텐츠의 몰입감을 높여주는 보조적인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 미래는 상상하는 만큼 더 커질 것이다.

이규창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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