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해운업]
{한진해운은 아직 ‘오리무중’…양사 합병 가능성 여전히 열려 있어}

[한경비즈니스=이홍표 기자] ‘해운·조선·철강·석유화학·건설.’
한국 경제를 좌우하는 핵심 업종이다. 이들 산업은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 바로 ‘구조조정’이다.

전형적인 경기 민감 업종인 이들 5대 산업은 글로벌 경기 부진의 여파로 경쟁력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업종인 만큼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려 있다.
현대상선, 용선료 협상 난제 풀고 해운동맹 가입도 ‘청신호’
해운업의 구조조정이 2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1막의 주요 이슈였던 현대상선 용선료 협상이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해운업 구조조정은 ‘빅2’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대상선 1차 구조조정의 핵심 이슈는 ‘용선료’였다. 지난 2월부터 이어진 선주들과의 용선료 협상은 6월 초 마무리됐다. 용선료 인하는 현대상선이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남을 수 있느냐를 좌우하는 핵심 과제였다.

KDB산업은행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지난 2월부터 진행한 용선료 협상 결과 용선료 21%를 6월 10일 인하했다. 현대상선이 컨테이너 선주사와 20% 수준의 용선료 조정에 합의했고 벌크선주사로부터 25% 수준의 용선료 조정에 대한 합의 의사를 확보한 것이다.

이번 협상으로 현대상선은 앞으로 3년 6개월간 지급할 예정인 용선료 2조5000억원 가운데 약 5300억원을 아낄 수 있게 됐다.

협상이 가능했던 것은 현대상선이 제시한 조건이 선주들이 납득할 만한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조정액 가운데 일부는 신주로, 나머지는 장기 채권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현대그룹 지분율 1.4%로 줄어

현대상선 1차 구조조정의 키포인트는 용선료와 채무 재조정이었다. 채무 재조정은 지난 6월 1일 마무리됐다. 현대상선은 5월 말부터 잇달아 열린 사채권자 집회에서 8042억원 규모의 무보증사채와 무보증신주인수권부사채의 만기 시점을 모두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채무 재조정안은 회사채를 50% 이상 출자 전환하고 잔여 채무를 2년 거치, 3년 분할 상환하는 내용이 골자다. 원금에 대한 이자는 모두 연 1%로 낮추고 분기별로 변경 지급한다.

경영 정상화 방안이 이행되면 현재 5309%인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올해 말 226%로 낮아진다. 대주주인 현대계열 지분은 기존 22.6%에서 1.4%로 줄어들고 그 대신 채권단 지분이 40%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2차 구조조정의 핵심은 현대상선의 얼라이언스(해운동맹) 가입이다. 현대상선과 같은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대형 해운사는 얼라이언스 가입 없이는 사실상 영업 자체가 어렵다. 그래서 정부는 현대상선의 용선료 협상과 채무 재조정이 사실상 마무리됨에 따라 얼라이언스 편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현대상선, 용선료 협상 난제 풀고 해운동맹 가입도 ‘청신호’
◆해운동맹 ‘2M’가입 막바지 단계

하지만 현대상선의 얼라이언스 가입이 늦춰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초 두 가지 난제가 해결됨에 따라 정부 및 현대상선은 얼라이언스 가입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은 6개 선사가 동맹을 맺은 3위 규모의 ‘더 얼라이언스’에 가능성을 타진했다.

6개 선사 중 3개 선사가 현대상선이 기존에 속했던 동맹인 ‘G6’ 출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얼라이언스의 선사들은 현대상선의 가입에 대해 묵묵부답이었다. 특히 업계에서는 더 얼라이언스 소속이자 국적 선사인 한진해운이 현대상선의 가입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는다는 이야기기까지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현대상선은 6월 23일 방향을 바꿔 세계 최대 해운동맹인 ‘2M’에 가입하는 것으로 선회했다. 2M은 글로벌 해운사 1, 2위 업체인 덴마크의 머스크, 스위스의 MSC가 결성한 세계 최대 얼라이언스다.

현대상선 사정에 정통한 핵심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한진해운 등의 입장 표명 유보로 ‘더 얼라이언스’ 가입을 포기하고 ‘2M’ 참여를 위해 막바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현재로선 가입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이 편입되면 ‘2M’은 선복량 면에서 경쟁 동맹체를 완전히 압도하고 세계 전역의 항로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현대상선이 2M에 가입하면 채권단 자율 협약을 위한 조건이 모두 충족돼 경영 정상화 작업이 본격 진행된다. 오는 8월 초 채권자들의 출자 전환이 완료되면 대주주가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으로 바뀌게 된다.

반면 한진해운의 구조조정은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현재 한진해운은 채권단 조건부 자율 협약이 지난 5월 4일 개시됐고 22개 선주사와 용선료를 협상 중이다. 또 사채권자 채무 조정을 위한 집회 추진이 예정된 상황이다.

한진해운은 경영난으로 지난 4월 채권단에 자율 협약을 신청했고 채권단은 지난 5월 4일 조건부로 자율 협약 개시를 결의했다.

특히 한진해운은 용선료나 채무 조정과 별도로 연말까지 1조원의 부족한 운영 자금을 채워야 한다. 이에 따라 한진해운은 자율 협약을 신청하면서 4000억원대의 자구안을 제출하면서 채권단에 일부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채권단은 회사 내에서 해결할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구조조정의 전제 조건인 용선료 인하와 사채권자 채무 재조정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지원할 수 없다는 얘기다. 채권단은 “경영 정상화 때 우선매수청구권을 줄 테니 1조원을 지원하라”며 그룹 및 회장 사재 투입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규모의 경제냐 경쟁 통한 효율이냐

이에 따라 현재 한진해운은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홍콩·유럽계 펀드 등과 접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진해운이 7월까지 추가 자금 유치에 성공하면 채권단과 자율 협약도 지속시키고 용선료 인하 협상도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용선료 협상이 생각만큼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캐나다의 선주사 시스팬은 한진해운의 용선료 인하 협상 요구를 거부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용선료를 인하할 바에는 한진해운에 대여한 컨테이너선을 모두 거둬들일 것이라는 주장까지 내놨다.

물론 정부 및 채권단으로서도 국내 1위이자 세계 8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을 법정 관리로 내몰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정부 및 채권단과 한진해운 간의 ‘빅딜’이 있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합병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구조조정이 순조롭게 진행된 현대상선과 달리 한진해운은 잘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만약 한진해운이 현대상선의 성공 모델을 따르게 된다면 결국 한진해운 역시 한진그룹이 아닌 채권단이 최대 주주로 남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때 정부 및 채권단은 양 사를 합병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지, 아니면 양 사를 분리 운영해 ‘효율적 경쟁 체제’를 이룩할지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공통으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경영진 개편, 선박 신규 건조 등 중·장기 경쟁력 강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업계 이해도가 높은 해운 전문가를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선임하는 등의 경영진 교체와 거버넌스 체제를 개편하는 등 지배 구조를 개편해 나갈 예정이다.

영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선대 합리화 등 원가절감 노력과 함께 장기 운송 계약과 해외 터미널 확보 등 안정적인 영업 기반을 마련하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선박 신규 건조, 노후 선박 정리 등 선대 개편을 통해 운임 경쟁력을 확보하고 터미널 이용료·하역비 등 기타 원가절감을 추진하기로 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미 마련한 12억 달러의 선박 신규 건조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해 컨테이너선 10척을 발주하는 것도 지원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해운업 구조조정은) 해운업은 용선료 인하 등 정상화 기반 마련 시 선박 신규 건조 등을 지원할 것”이라며 “강도 높은 자체 정상화 노력 아래 정부(채권단)도 필요한 부분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 용선료 협상 난제 풀고 해운동맹 가입도 ‘청신호’
◆해운업 왜 어려워졌나

국내 1~2위의 해운사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경영이 어려움에 빠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근본적인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IMF 외환 위기가 진행되던 1998년 3월 당시 은행감독원은 53개 국내 재벌 기업에 1999년 말까지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이른바 ‘문어발 확장’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해운사들은 이를 맞추기 위해 보유한 선박을 팔고 빌려 쓰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한국 해운사들이 배를 내다 판 직후인 2003년부터 중국과 동남아를 중심으로 전 세계 해운 호황이 시작됐다. 이때 배가 없던 우리 해운사들은 앞다퉈 비싼 용선료를 지불하며 배를 빌렸다. 결국 이런 관행이 최근까지 이어졌다. 최근 3년간 국내 해운사들이 매년 지급한 용선료만 2조~3조원에 달한다.

해운업 위기는 한국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물동량 자체가 줄어든 데다 업체 간 경쟁 심화로 운임마저 낮아진 게 원인이다. 결국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한 한국의 해운사들은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이 있는 것이다.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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