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콘텐츠 없으면 거품 될 수도…개발보다 ‘사용자 만족’이 우선} (사진) '2016 스마트 테크쇼'에서 한 참가자가 4D VR 가상현실 게임 퓨처바이크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동훈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실감 미디어 시대다. 실감 미디어는 사용자의 만족을 위해 가상의 환경에서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실재감과 몰입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현장의 감각적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를 의미한다.
◆ 대거 쏟아지는 VR 기기들
실감 효과를 위한 증강현실(AR : Augmented Reality), 가상현실(VR : Virtual Reality), 오감 효과, 동작 인식 등의 기술은 스마트폰, 4D 영화관 혹은 게임 콘솔 시장에서 상용화되기 시작했고 급격하게 성장한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과 스마트폰 시장에 의해 다양한 실감 미디어 서비스들이 출현, 서비스되고 있다.
먼저 페이스북이 23억 달러에 인수해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오큘러스리프트(Oculus Rift)가 2016년 3월 28일 첫 배송을 시작한 것을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게임 플랫폼인 스팀(Steam)과 손잡은 HTC의 바이브(Vive), 이미 가정에 널리 보급돼 있는 플레이스테이션과 연동되는 플레이스테이션 VR, 오픈 소스를 지향하는 레이저(Razer)의 OSVR(Open Source Virtual Reality), 가장 넓은 시야각을 자랑하는 스타(Star) VR 등 다양한 가상현실 하드웨어가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물론 아이트래킹 기능과 뇌파를 활용한 컨트롤러 등 다양한 기능을 포함한 하드웨어가 2016년 소개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렇게 쏟아지는 가상현실 기기와 달리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들리지 않는 듯하다. 아무래도 초기 시장이다 보니 기기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하드웨어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역시 콘텐츠이기 때문에 가상현실 서비스가 어떻게 제공될지 궁금증과 함께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보니 언젠가 비슷했던 상황이 기억난다. 영화 ‘아바타’ 이후 2010년 초부터 전 세계가 3D 열풍에 빠졌던 바로 그 상황…. 전국의 극장은 3D 영화를 볼 수 있는 시설로 바뀌었고 유료 채널은 물론 지상파 방송사에서도 3D 영상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3D 카메라와 리그 등 영상 관련 기기와 시설 전환이 주요 이슈가 됐다.
영상 산업 전반에 걸쳐 3D를 언급하지 않으면 시장을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3D 광풍이 분 시기였다. 정부 역시 새로운 먹거리 사업으로 3D 시장을 바라보며 육성책을 발표해 분위기를 달궜다.
이러한 시장의 흐름을 이끈 것은 다름 아닌 TV 제조사다. 연일 광고를 통해 3D에 대한 관심을 높였고 당시 시장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프리미엄 TV는 3D 시청이 가능할 정도로 발 빠르게 대응했다. 심지어 3D 기능이 없는 TV를 찾기 힘들 정도로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주축으로 하는 가전사는 3D TV의 시장점 유율을 높였다.
인터넷 가격 비교 사이트 ‘다나와’가 제공하는 판매 대수를 기준으로 TV 판매량을 분석해 보면, 2010년 3월 2%였던 3D TV 판매량 점유율은 그해 12월 10%를 넘더니 2014년 50%를 넘어서며 3D 열풍의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를 기점으로 3D 영상에 대한 관심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해 3D TV의 판매가 급격한 감소를 보이더니 2016년 1분기에 8%로 급락하며 2010년 상황으로 돌아갔다.
3D TV는 왜 이렇게 급격히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시장을 들여다보면 3D TV의 성장을 위한 생태계가 제대로 구성되지 못한 점을 들 수 있다.
3D TV라는 하드웨어와 하드웨어에서 편하고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콘텐츠가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빠른 3D TV의 보급에 비춰 봤을 때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킬러 콘텐츠가 부재했고 이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콘텐츠의 양과 질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3D 엔터테인먼트 시장 초기에 몰려들었던 콘텐츠 제작비 투자는 계속되는 실패를 맛보게 되고 콘텐츠 수요가 줄게 되니 콘텐츠 제작 여력도 없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결국 세계 최초의 지상파 3D 방송도, 세계 최초 실시간 3D 전용 채널 ‘스카이 3D’ 서비스도 콘텐츠 부족과 시청자 관심 부족으로 문을 닫게 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 4년 만에 사라진 3D TV 붐
가상현실에 대한 관심은 2010년의 3D와 비교했을 때 결코 뒤지지 않는다.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ES)와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전시된 가상현실 관련 제품이나 솔루션·콘텐츠 등은 당시 상황과 비슷하고 가상현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기업군을 보면 3D를 능가한다.
가상현실에 대한 큰 기대를 갖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각 분야 대표 선수들의 관심이 단순히 호기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리프트를 인수하고 2년 뒤인 2016년 ‘MWC 2016’에서 삼성과 함께 “최상의 가상현실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하며 플랫폼 사업자와 단말기 제조업자와의 돈독한 협력 관계를 보여준 바 있다.
중국의 알리바바는 가상현실 업체인 매직리프(Magic Leap)에 투자하고 가상현실을 도입한 새로운 온라인 쇼핑 생태계를 만드는 중이다.
아마존도 자체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고 마이크로소프트는 홀로렌즈(HoloLens)를 소개하며 시장에 충격을 준 바 있다. 이와 같이 혁신의 선두에 서 있는 기업들이 가상현실에 거는 기대는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혈투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거세다.
3D TV의 교훈을 되새겨 보면, 결국 킬러 콘텐츠 또는 웰메이드 콘텐츠가 시장에 공급되는 양에 따라 대중화의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상현실 콘텐츠가 적용될 수 있는 분야는 현재 디스플레이에 구현되는 영상 콘텐츠와 관련된 시장이 모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TV·모니터·모바일 기기 등 디스플레이에서 재생되는 영상 콘텐츠 분야는 이론적으로 모두 적용될 수 있다. 또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은 가상현실 시장의 가늠할 수 없는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라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사용자 경험이다. 가상현실 환경에서 사용자 경험은 이미 ‘가상현실 사용자 경험(VRUX : Virtual Reality User Experience)’이라는 전문 용어가 새롭게 만들어질 정도로 성공의 핵심 요인이다.
VRUX는 온전히 테크놀로지를 통해 가상현실 또는 증강현실을 즐기는 것이기에 사용자 경험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상현실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콘텐츠와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총체적 결과물이다.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이 어떤 수준으로 제공될 것인지가 실감 미디어의 성공 여부를 좌우할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높은 수준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반의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몰입감이 높은 환경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서 이것이 결정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로 설명되는 이러한 현상은, 테크놀로지가 제공하는 가상현실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갑자기 강한 거부감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은 가상현실을 제공하는 테크놀로지가 현실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제공되면 다시 호감도가 증가하게 되는데, VRUX는 바로 불쾌한 골짜기에 빠지지 않는 최적의 파라미터(매개 변수)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개발자들은 제품 개발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 하지만 기업은 개발이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기업이 최종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제품을 사용할 사용자가 최적 경험을 통해 만족도를 갖게 하는 것이다. 기술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기술 만능주의를 버려야 한다.
우리는 이미 3D 영상 산업의 실패를 바로 몇 년 전에 경험한 바 있다. 가상현실을 새로운 산업의 돌파구로 삼으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까 걱정이다.
그래서일까. 오큘러스리프트를 인수한 페이스북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가상현실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최소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말한 것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3D TV의 교훈으로부터 가상현실 시장이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혜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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