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리학 카페]
{영화 ‘정글북’의 숨은 코드…문명과 자연의 대립 뛰어넘어}
정글에 버려진 모글리,정글을 재창조하다
(사진) 영화 ‘정글북’의 한 장면

[김진국 문화평론가·융합심리학연구소장] 영화 ‘정글북’은 어린이 눈높이로만 보면 인간과 동물 사이의 사랑과 갈등을 다루는 모험 영화다. 정글에서 자란 늑대 소년 모글리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가는 성장 영화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심층심리학적 시각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인간은 고도로 정밀한 도구를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도구의 인간’이란 뜻을 가진 호모 파베르(Homo Faber)란 별명도 여기서 나왔다.

도구를 사용하는 ‘문명’과 그렇지 않은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정글북’은 문명과 자연의 갈등을 다루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도구 사용’을 둘러싼 동물들의 갈등

도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립 구도는 다음과 같다. 모글리에게 ‘너는 정글에서 우리와 같이 살고 있다. 인간들이 사용하는 도구를 사용하지 마라!’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락샤(늑대 암컷)와 아킬라(늑대 수컷) 그리고 바기라(표범) 등이다.

그들의 대척점에는 모글리로 하여금 도구를 사용하게 해 벌꿀을 얻고 싶어 하는 천진난만한 바루(곰)와 인간 문명의 상징인 불을 이용해 정글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원숭이 사원의 루이(오랑우탄)가 있다.

세상이 그러하듯 정글은 양면성을 띤다. ‘생명’을 상징하는 각종 동식물이 살고 있는 반면 짙게 드리운 그림자 너머에는 뭔가 음습한 ‘죽음’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숲은 우리가 찾아내야 할 비밀이 들어 있고 직면해야 할 기억과 감정들이 들어 있는 무의식을 상징하기도 한다.

정글 속에도 선과 악, 성(聖)과 속(俗)의 대립이 존재한다. 평화의 수호자들인 락샤·아킬라·바기라·바루 등은 선을 상징한다. “모글리! 넌 항상 내 아들이야. 내가 너를 지켜 줄게!” 모글리를 키우며 사실상 모글리의 엄마 역할을 하는 락샤는 모성 본능을 상징한다.

바기라는 모글리를 훈도하는 엄격한 스승이자 아버지로서 부성 본능을 상징한다. 바기라는 정글의 법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원칙주의자로서 냉철한 이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모글리의 도구를 이용해 먹잇감을 구하기도 하는 바루는 따뜻하고 순수한 감성을 상징한다.

반면 쉬어칸(호랑이)과 카아(뱀)는 악의 상징이다. 상처 입은 맹수 쉬어칸은 루이 왕처럼 도구를 이용한 정글의 지배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모글리의 아버지에게 입은 화상으로 한쪽 눈을 잃고 오로지 인간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다.

쉬어칸의 애꾸눈은 그가 트라우마 때문에 세상을 온전하게 보지 못하고 편향돼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카아는 에덴동산의 뱀처럼 교활한 유혹자를 상징한다.

속세에 선악이 존재하듯이 성스러운 종교의 세계에도 선악은 있다. 어둠의 제사장 루이 왕이 파괴적인 본능을 상징하는 악의 축이라면 코끼리는 신성하고 거룩한 창조적인 본능을 상징한다. ‘그들이 상아로 만든 골짜기에는 생명의 물이 흐른다!’ 정글의 동물들은 코끼리를 숭배한다.

한편 정글과 외계(인간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담당하는 캐릭터도 있다. 바기라와 쉬어칸이 그들이다. 바기라는 고아가 된 모글리를 정글로 데려온 주인공으로, 모글리를 다시 인간 세계로 돌려보내야만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의무감을 갖고 있다.

쉬어칸은 인간 세계에서 온 모글리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인간 모글리에게 복수하려고 모글리가 인간 세계로 돌아가려는 것을 방해한다.

빛과 그림자가 합쳐져야 물체를 온전히 인지할 수 있고 음과 양이 합쳐져야 만물이 창조된다. 융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성과 감성, 부성과 모성, 선과 악, 성과 속, 창조와 파괴 등 우리 주변의 각종 대립물들은 서로 간의 조화 혹은 갈등을 겪으며 융화돼야 새로운 차원에서 재창조될 수 있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 모글리와 사용하지 않는 동물들이 융화하고 이성(바기라)과 감성(바루), 부성(바기라)과 모성(락샤)이 힘을 합칠 때에야 비로소 어둠의 세력인 루이 왕과 쉬어칸을 제압하고 진정한 재창조를 위한 합일(unity)을 이룰 수 있다.

불에도 생산과 파괴의 양면성이 있다. 불을 악용하려던 어둠의 제사장 루이가 바벨탑 같은 원숭이 사원이 무너지면서 그 밑에 깔려 죽고 쉬어칸이 모글리에 의해 불구덩이에 떨어져 죽는 ‘불의 심판’을 거치면서 정글의 구체제가 소멸되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마지막에 모글리가 코끼리를 타고 나타나 그들과 함께 일하는 장면은 바로 새로운 정글의 재창조를 위한 도구적 인간(모글리)과 창조적 신성(코끼리)의 합일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