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기부 vs 나쁜 기부 ‘법안 전쟁’
[FOCUS]기부 활성화 vs 편법 견제

[머니=한용섭 기자]20대 국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며 상속 관련 법안을 의욕적으로 내놓고 있다. 특히 공익법인에 대한 법안은 여야가 확연한 입장차를 보이며, 향후 진행될 상속법안 전쟁의 서막을 예고했다.

여야가 20대 국회 들어 상속 관련 입법 경쟁을 펼치며 공익법인의 주식 기부와 관련해 이른바 ‘착한 기부, 나쁜 기부’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공익법인의 주식 기부 비과세 상한선인 ‘5%룰’과 관련해 ‘기부 문화 활성화(착한 기부)’와 ‘재벌의 편법 상속·증여 방지(나쁜 기부)’라는 다소 이질적인 주장이 서로 맞서고 있는 것.

한쪽은 개인 기부가 늘고 있는 가운데 구시대의 규제가 기부 확산을 막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쪽은 재벌들의 편법 상속·증여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를 좀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니 ‘물과 기름’이 따로 없다.

여야 국회의원들의 이 같은 입장차는 부자감세 등 여론의 영향을 많이 받는 상속법안의 특징을 감안하면 향후 20대 국회에서 벌어질 상속 관련 입법 전쟁의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다. 이에 발맞춰 국책연구원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6월 22일 ‘공익법인제도 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하며, 내년 세법 개정의 가능성까지 열어놔 분위기는 한껏 달아오른 상황이다.

◆공익법인 법 개정 놓고 여야 신경전

20대 국회에서 7월 18일까지 발의된 상속 관련 법안을 살펴보면 약속이나 한 듯이 공익법인에 대한 주식 출연과 관련된 법안들로 채워져 있다. 법안 전쟁의 포문을 연 것은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 의원으로 지난 6월 7일 재벌들의 편법 상속·증여를 막겠다며 법률 개정안 4종 세트(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 개정법률안,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 법인세법 일부 개정법률안, 상법 일부 개정법률안)를 대표 발의했다.

이 중 개정안에는 성실공익법인제도를 폐지하고,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재는 공익법인에 특정 기업의 주식을 기부(출연)하면 5%까지, 성실공익법인에 지정되면 10%까지 세금을 내지 않는다.

성실공익법인은 운용소득의 80% 이상을 공익목적사업에 직접 사용하거나, 출연자 또는 그의 특수관계인이 공익법인 등의 이사 현원의 5분의 1을 초과하지 않고, 외부 감사를 이행하고, 결산서류 등의 공시를 이행하는 등의 조건을 모두 충족한 법인을 말한다.

성실공익법인의 경우 일반 공익법인의 2배인 10%까지 증여세를 면제받고, 총자산 기준에 따른 주식 보유 비율은 전혀 제한받지 않도록 하고 있는데, 재벌들이 이를 편법적인 상속·증여 및 계열사 지배 강화에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 박 의원 측 주장이다.

같은 당 박용진 의원은 지난 7월 5일 대표 발의한 일부 개정법률안에서 상속·증여세 과세가액에 산입되지 않는 한도를 내국법인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 등의 20%로 확대해 기부를 장려하는 한편, 출연 받은 주식 등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제한해 주식 기부가 편법 상속·증여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했다. 두 의원이 같은 당 소속이지만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에서는 온도차가 있는 것이다.
착한 기부 vs 나쁜 기부 ‘법안 전쟁’
새누리당 의원들은 재벌들의 편법 증여보다는 공익법인의 활성화에 무게중심의 추를 두는 분위기다. 함진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6월 27일 대표 발의한 일부 개정법률안에서 공익법인 등에 내국법인의 주식 등을 출연(기부)하는 경우 상속·증여세 과세가액에 불산입되는 한도를 공익법인은 발행주식 총수의 5%에서 10%로, 성실공익법인은 10%에서 20% 올리도록 했다. 현행 면세 범위가 기부문화 활성화 측면에서 상당히 미흡하다는 판단에서다.

같은 당 윤상현 의원은 지난 6월 22일 일부 개정법률안에서 공익기부와 관련한 유류분(법정상속인 몫으로 유보해 놓은 상속재산의 일정 부분)제도의 개선을 추진했다. 피상속인이 상속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공익 목적으로 기부하는 경우 직계비속과 배우자는 그 법정상속분의 3분의 1로, 피상속인의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그 법정상속분의 4분의 1로 각각 유류분을 축소하도록 한 것. 현행법에서는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직계비속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로,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3분의 1로 유류분이 규정돼 있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도 유사한 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식 기부 비과세 상한선인 ‘5%룰’은 다소 상향 조정하는 대신 재벌 계열 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대목은 국책연구원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주최로 비슷한 시기(6월 22일)에 진행된 공익법인제도 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다. 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윤지현 서울대 교수는 공익법인이 보유 중인 재산의 일정 부분을 반드시 공익 활동에 쓰게 하는 ‘의무지출제도’를 대안으로 내놨다. 공익재단의 투자 자산 중 매년 5%에 해당하는 금액을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의무지출제도’를 도입한다면 1994년 이전처럼 기업 주식 보유 한도를 20%로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세법 개정안 발표를 앞두고 개최된 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의무지출제도’와 ‘기업 주식 보유 한도 상향’을 언급한 대목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도 연구 결과에 대해 사전 교감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시각이다.

◆‘뜨거운 감자’, 공익법인 논란 왜?

공익법인을 통한 기부의 활성화는 경기 침체, 양극화 등으로 사회 불안 요소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국가 재정에 대한 보완 역할로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공익법인의 사정은 녹록지 않다. 한국가이드스타에서 발간한 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국세청에 신고된 전체 기부금 규모는 약 12조 원으로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였으나, 2013년에 비해서는 약 5000억 원 감소했다.

또 기업의 기부 금액은 4조9063억 원으로 개인의 기부 금액 7조926억 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고, 2014년 개인 기부금은 전년과 비교해 약 7000억 원 감소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부금 비율은 2014년 기준 약 0.81%로 기부금의 비율이 2010년 이후 조금씩 증가하다가 2014년에는 그 비중이 약 8%로 하락했다.

영국의 자선구호재단(CAF)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 평가에서도 2013년 45위에서 2014년 60위, 2015년에는 조사대상국 145개국 중 74위로 매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세계 10위권 경제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 기부 문화에 대한 자성이 높아지며 공익법인 활성화에 대한 법 개정 논의도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익법인을 둘러싼 재벌가들의 편법 상속·증여 논란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지난해 워크아웃을 신청한 지 6년 만에 금호산업을 채권단으로부터 다시 사오는 과정에서 공익·학교법인인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과 죽호학원의 출자를 받아 논란이 됐다.
착한 기부 vs 나쁜 기부 ‘법안 전쟁’
최근 검찰의 수사에 오른 롯데장학재단도 그동안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이사장이 맡고 있는 롯데장학재단은 롯데제과 8.69%, 롯데칠성음료 6.28% 등 9개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오너 일가의 그룹 지배를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 신격호 총괄회장이 2007년 기부한 공시지가 500억 원가량의 토지를 하루 만에 롯데쇼핑에 700억 원에 팔기로 하고, 두 달 뒤 다시 가격을 올려 1030억 원에 매각한 것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공익법인이 증여세 면제만 받고 재벌들의 편법 상속·증여와 지배권 강화에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며, 성실공익법인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공익법인에 대한 매도와 견제는 간혹 순수한 의도의 기부자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2002년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 창업주인 황필상 박사가 전 재산에 가까운 회사 주식 90%와 현금 15억 원을 합쳐 215억 원을 자신의 모교인 아주대에 기부했는데, 국세청이 6년여 만인 2008년 기부액의 65%에 해당하는 140여억 원을 증여세로 부과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상 공익법인에 출연한 재산은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지만 출연재산이 주식인 경우에는 발행주식 총수의 5%를 초과한 부분은 과세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2심에서 패소한 재단 측이 2011년 상고한 후 대법원이 4년 넘도록 판결을 미뤄 어느새 증여세액은 가산금이 붙어 225억 원으로 불어났다.

이와 관련 소순무 법무법인(유) 율촌 변호사는 “공익법인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 방향은 편법 상속·증여의 소지가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규제를 받지 않도록 해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규제는 자칫 제2의 수원교차로 사건을 만들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