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뷰] 김영란법 논란, 힘들어도 원칙대로 가라
(일러스트 김호식)

[장태평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한국은 유난히 교통사고율이 높다. 교통사고의 원인은 차량 결함, 도로 환경, 제도적 문제 등 복합적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태도 등 인적 요인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국내 교통사고의 약 95%가 인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조사될 정도다.

선진국일수록 교통신호를 엄격히 지킨다. 차량과 보행자가 거의 없는 새벽 시간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복잡한 건널목에서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어도 꼬리를 문다.

음주를 하고도 용감하게 운전대를 잡고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사람도 많다.

행동 성향이 사고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7배 수준으로 높다.

교통사고를 조사해 보면 대부분이 이런 부주의가 사고의 원인으로 밝혀진다.

교통사고 연관 관계에서도 이런 점은 여실히 드러난다. 나쁜 운전 습관은 사고를 유발할 때가 많다. 당연한 얘기다.

평소에 약간이라도 신호를 무시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결국 그 습관이 사고를 일으킨다.

모두가 항상 신호를 엄격하게 지키고 주변을 살피며 운전해야 한다. 그것이 습관이 돼야 사고율도 낮아진다. 그런데 이런 이론이 교통 분야에만 적용되겠는가.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규칙과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너무 꼼꼼하게 지키면 “융통성이 없다”, “답답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적당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경우에 따라 더 호감을 주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옛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다. 사소한 일이라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나쁜 일을 자주 하는 사람은 결국 큰 잘못을 범하게 된다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일례 중 대표적인 것이 거짓말이다. 선의나 농담으로 또는 피해가 없다며 작은 거짓말을 쉽게 하다 보면 결국 큰 거짓말도 거침없이 하게 된다.

그것이 자연적 이치다. 작은 것에서 적당히 하게 되면 큰 것에서도 적당히 하게 된다.

거짓말은 작아 보이기 쉽다. 하지만 결코 작지 않다. 거짓말은 사람들이 서로 신뢰할 수 없도록 하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파괴한다.

이 때문에 사회적 관계가 무너지게 된다. 시장 자본주의나 민주주의에서 거짓말이 무성하면 성과는 한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성경의 십계명에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항목이 포함돼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런 가치관을 물려받은 서양 선진국에서는 거짓말을 죄악시하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공직자의 거짓말은 용서하지 않는다. 그런 성향이 있는 사람은 중요한 순간에 큰 거짓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과 관련해 몇 번의 거짓말과 은폐 시도 때문에 의회에서 탄핵이 결의되고 결국은 대통령직을 사임하게 됐다.

이번에 임명된 경찰청장은 인사청문회에서 과거 음주운전이 문제가 됐다. 음주운전은 공직 사회에서는 더 무겁게 다뤄진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청장이 당시 경찰관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정황상 여러 가지 은폐 행위가 더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적당히 넘어갈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다. 경찰청장은 공직 중에서도 특별히 청렴이 중시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는 소위 ‘김영란법’으로 많은 논란을 빚고 있다.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고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는 이미 선진 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가 더 비싼 밥을 먹고 더 큰 선물을 주고 씀씀이가 커서 지금 당장 이 기준을 지키기 힘들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것은 오히려 우리 사회가 더 빨리 정상화돼야 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적당히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들더라도 원칙대로 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발전한다.

교통신호를 어기는 것처럼 원칙과 제도를 적당히 어기면 사고가 빈발하게 된다. 원칙과 제도는 사회적으로 엄격하게 습관화돼야 한다.

우선은 예외 없이 적용해야 한다. ‘악법도 법’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말만 하고 주장만 하는 형식주의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독배를 마시는 소크라테스의 태도를 따라야 한다.

이렇게 해야 공직 사회도 바로 서고 국가의 경쟁력도 향상된다. 또 최근의 많은 사회 경제적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적당주의를 몰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