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줄어드는 직장 내 소통…지나친 ‘고독’은 성과 저하 불러
[신현만의 커리어 업그레이드] 고독하되 고립되지는 말자
[신현만 커리어 케어 회장] “늘 상대방의 안색을 살펴야 하는 생활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낼 수는 없을까. 굳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얽혀 부대끼고 싶지 않다. 상대방이 쏟아내는 말과 행동에 연연하지 않고 조용히 나 홀로 삶을 살고 싶다.”

가끔씩 이렇게 말하는 직장인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사람들과 섞이는 것을 피곤하고 불편해 한다. 심지어 사람들에게 염증을 느낀 적도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을 최소화하면서 조용히 자기 혼자만의 삶을 살려고 한다. 세상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자신을 바꾸기보다 있는 그대로, 주어진 그대로 살고 싶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본 직장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른 일에 간섭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즐겁다. 남의 일에 간섭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간섭받기 싫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가능하면 간섭하지도, 간섭받지도 않는 조용하고 독립적인 직장 생활을 꿈꾼다. 최근 들어 ‘혼술’이니 ‘혼밥’이니 하는 말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고독’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현대인의 삶

직장인들이 이렇게 자신만의 삶을 꿈꾸면서 소통과 관계 맺기를 꺼리는 첫째 이유는 익숙하지 않아 불편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가족의 공동체 문화가 사라지고 핵가족이나 1인 가족의 개인주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예전처럼 의무적으로 관계를 맺고 소통해야 하는 일이 크게 줄었다.

그 대신 컴퓨터나 모바일을 통해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고 의견을 공유하는 일이 늘어났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직접 대면하는 방식의 소통과 관계 맺기는 점점 더 낯설고 불편해지고 있다.

둘째는 소통과 관계의 대한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치관이 다양해지고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직장에서 승진 욕구는 예전보다 훨씬 약해졌다. 소통과 관계 맺기는 자신의 역할을 확대하고 위상을 높여 더 높은 직급과 직책을 획득하려는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런데 직급과 직책에 대한 관심이 약해지고 회사 조직도 수평적으로 바뀌면서 이에 대한 필요성이 감소한 것이다.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과 보상만 유지된다면 승진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게다가 직접 얼굴을 맞대지 않고도 자신의 역할을 입증하고 능력을 뽐낼 수 있는 방법이 많아졌다.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지명도를 높인 사람들이 순식간에 저명인사로 떠오르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이전처럼 직접 만나거나 얼굴을 보이지 않아도 존재를 알리고 공감대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소통이나 관계 맺기는 이제 필요에 따라 원할 때만 해도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엮이지 않고도 충분히 원하는 것을 얻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고 자신의 일이 간섭당하는 것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직장 생활을 일정하게 경험한 30대 직장인들의 상당수는 직장 생활에서 오는 소통과 관계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피하고 싶어 한다. 굳이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될 사람이라면 가급적 마주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소통과 관계로 인한 피로가 누적된 직장인들은 이제 독립적으로 일하는 곳을 찾고 있다.

소통과 관계를 피하려는 직장인들은 기업 문화를 상당히 바꿔 놓고 있다. 우선 회식이나 동호회 등 직장 내 모임이 대폭 줄고 있다. 업무상 필요한 소통은 e메일·메시지·메신저로 대신한다. 감정 같은 다른 요소가 불필요하게 개입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와 인간적 관계가 사라지고 업무적 관계만 남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조직원들 사이의 관계가 변하면서 소통이 부진해져 업무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기업 경영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바로 ‘소통’인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경영자들은 갈수록 시들해지는 직장 내 소통을 어떻게 활성화할지 고민하고 있다. 그들은 특히 직장 안에서 소통이 사라지고 고독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고립주의’가 등장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고독이 지나치면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독’은 꼭 필요한 것일 수도

전문가들은 고독이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고독은 혼자 있고 싶고 당분간 떨어져 스스로와 대화하고 싶은 상태다. 미국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에겐 생각하기 위해 고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동안 올바르게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생각을 하려면 육체 활동을 멈추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아렌트는 이렇게 육체 활동을 멈추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상태가 고독인데, 인간에게는 고독을 즐기려는 속성이 내재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고독은 인간에게 매우 필요한 감정이다. 사람들과 관계에서 오는 긴장과 피로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고독해질 때 조금씩 해소된다. 고독을 느낄 때 복잡하게 엉켜 있던 관계의 실타래가 비소로 하나둘씩 풀린다.

강렬한 고독은 다시 사람에 대한 진한 그리움으로 바뀌어 가족이나 친구, 동료와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만들어 낸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고독은 그래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반면 고립은 다른 사람과 사귀고 어울리지 못하거나 도움을 받지 못해 외톨이가 되는 것을 뜻한다. 고독이 주체적 의사 결정의 산물이라면 고립은 다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피동적 상황이다. 고독과 고립은 둘 다 홀로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고독은 혼자만의 주관적 심리 상태이고 고립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객관적 상태라는 점에서 전혀 다르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고립돼 있을 때 고독을 느끼지만 고독하다고 해서 반드시 고립돼 있는 것은 아니다.

고립이 문제가 되는 것은 심해지면 부정적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고립 증후군’이다. 이는 고립된 공간에서 생활했을 때 감정과 행동이 더 격해지는 심리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마치 좁은 공간에 함께 있으면 작은 자극에도 서로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현상은 남극에 파견된 연구원들과 군인들을 통해 많이 연구됐기 때문에 ‘남극형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고립으로 인한 또 다른 문제는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다.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세계시장의 추세와 동떨어진 채 자신들만의 표준을 좇다가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다. 이 용어는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정보기술(IT) 산업이 자국 시장에만 안주한 결과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고립되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갈라파고스는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독자적으로 진화한 종들이 고유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육지와 교류가 시작돼 외부종이 유입되자 면역력이 약한 고유종들이 대거 멸종되거나 멸종 위기를 맞았다.

일본 IT 기업들은 1990년대부터 일본 시장에 특화한 독자적 기술과 서비스, 제품을 발전시키면서 국제 표준과 세계시장의 흐름에서 벗어났다. 이에 따라 글로벌 영향력이 약해졌고 마침내 국내시장마저 빼앗기게 됐다. 세계 최첨단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도 세계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국내시장마저 내주게 된 것이다.

고립은 또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우울증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미래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휩싸이게 한다. 수면과 식욕 저하로 이어져 직장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유발해 자신감을 잃게 만든다. 그래서 우울증이 심해지면 정상적인 직장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고립은 이렇게 심각한 문제들을 불러일으킨다. 자칫하면 개인과 기업을 파국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의 경영자들은 자신이 속한 기업이나 직원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앞서 말한 대로 고독은 인간이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기업인들은 고독을 즐기는 직원을 우려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고독은 언제든지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은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직원들에게 소통과 관계 맺기를 장려하고 때로는 반강제적으로 소통과 관계의 장으로 직원들을 끌어내기도 한다.

◆직장 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달콤한 고립’

고독을 즐기되 고립되지 않아야 한다. 특히 한창 지식과 경험을 쌓고 인맥을 확대해 성장 발전을 추구하려는 30대 직장인은 고독이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30대는 외부와 교류하면서 끊임없이 지식과 경험을 빨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고립되면 외부의 에너지 공급이 차단돼 성장이 멈출 수 있다. 우리는 가끔 30대에 고독을 즐기다가 40대 이후 파국을 맞은 사람들을 만난다.

고독은 고립이 아니다. 고립과 전혀 다른 것이다. 하지만 고립과 고속도로로 연결돼 있어 잠깐 경계를 늦추면 순식간에 고립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한 번 고립에 빠지게 되면 헤어나기가 참 어렵다. 고립은 자신의 시야를 좁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남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책임지고 신경 써야 할 일이 줄면서 일시적으로 마음이 편해진다. 하지만 그곳이 영원한 보금자리는 아니다. 따라서 최대한 빨리 빠져나와야 하는데 이 과정이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고립에서 벗어나려면 도전을 감행하는 큰 용기,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30대의 고독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를 풀어주는 달콤한 차와 같다. 하지만 고립과 경계가 불확실해 고독을 즐기는 과정에서 고립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때가 있다. 따라서 고독에 너무 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고독은 생각보다 중독성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