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리학 카페]
지독한 음치인 영화 ‘플로렌스’ 속 여주인공…카네기 홀 공연은 성공할까
‘아부와 열정 사이’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나
(일러스트 김호식)

[김진국 문화평론가·융합심리학연구소장]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햄릿의 말에 부화뇌동하는 폴로니우스의 모습이 재미있다.

“저 구름이 꼭 낙타 같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예, 정말 꼭 낙타 같군요.” “내 생각엔 족제비 같은데.” “예, 꼭 족제비 같습니다.” “아니지, 고래 같지 않나?” “예, 정말 고래 같군요.” “오, 폴로니우스! 그대는 고결한 마음의 소유자로군!”

◆불행은 타인에 대한 기대와 비교에서 출발

이한우 단국대 교수의 ‘아부의 즐거움’에 따르면 아부는 ‘홀로 설 자신이 없는 정치인이 큰 정치인의 파벌 속 일원이 되려고 하는 행위’다. 반면에 아첨은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알랑거리는’ 행위다. 이 교수는 또 아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아부는 하는 자와 받는 자, 지켜보는 자 3자로 구성된다고 말한다.

아부와 아첨 없는 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아부꾼과 아첨꾼들의 에피소드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영화 ‘플로렌스’에도 희대의 아첨꾼이 등장한다. 주인공 플로렌스(메릴 스트립 분)는 백만장자 소프라노다.

문제는 그녀가 듣는 이를 포복절도하게 하는 음치라는 것. 더 문제는 그녀가 자신이 음치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못 말리는 음치 플로렌스. 그녀의 주체 못할 열정은 급기야 카네기 홀에서 개인 공연을 갖겠다는 야무진 꿈으로까지 발전한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것은 베이필드(휴 그랜트 분)로 대표되는 ‘아첨하는 자’의 탓이 크다. 베이필드는 플로렌스의 남편이자 매니저다. 평소 그녀의 이런 엉뚱한 행동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하면서 끝없이 그녀에 대한 찬사, 그러니까 아첨으로 일관하며 ‘아첨 받는 자’ 플로렌스의 눈과 귀를 막아 왔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사람들이 그녀의 음악을 원한다!’고 극찬하며 돈 주고 산 가짜 관객들을 호텔에 모아 놓고 사랑하는 부인의 공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행여 그녀에 대한 악평이 신문에 실리지 않도록 하는 일도 그의 임무였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문고리 권력’이다. 그의 곁에는 한때 ‘아첨을 지켜보는 자’에서 ‘아첨을 하는 자’로 변신한 피아니스트 맥문(사이먼 헬버그 분)이 있다.

플로렌스는 아첨꾼들에 둘러싸여 자신의 정체를 자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인기 있는 성악가를 자임하는 행복한 성악가다. 행복에 대해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불행은 대개 ‘비교’와 ‘기대’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타인에 대한 기대’와 ‘타인과의 비교’에서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대개 범사에 감사하며 자신이 즐기는 일에 몰입하고 남을 돕는 일에 적극적이다. 마침 돈이 많아 타인에 대해 ‘기대’하는 게 별로 없었던 플로렌스는 애초부터 자신에 대한 제대로 된 정체성을 가질 기회가 없었기에 타인과 자신을 ‘비교’할 여지도 없었다. 역설적으로 참 행복한 케이스다.

아첨꾼에 둘러싸인 백만장자의 억지 행복 아니냐고? 아니다. 돈이 많다고 모두 플로렌스처럼 남을 돕는 데 기꺼이 거액을 쾌척하지 않는다. 불치병에 절망하지 않고 늘 감사하는 이도 드물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깊이 몰입하는 재력가도 별로 없다. 그런 점에서 플로렌스를 높이 평가해 주고 싶다.

각설하고, 이때까지 돈 주고 산 가짜 관객들에 의해 ‘브라바(brava)’ 함성을 들었던 플로렌스. 그녀는 카네기 홀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그녀 필생의 꿈이 이뤄지고 그녀의 행복도 절정을 향해 고공비행을 지속할 수 있을까. 그녀는 멋진 날개를 단 천사일까. 아니면 그렇게 착각했다가 추락한 ‘그리스 신화’ 속의 이카로스일까.

실화에 바탕을 둔 팩션(faction : 팩트+픽션) 영화. 그러나 우리는 마냥 웃을 수는 없다. 순전히 남의 얘기로 치부하고 말, 단순 코미디 영화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메릴 스트립의 놀라운 연기, 영국 신사 휴 그랜트의 매력이 흠씬 묻어나는 흥미진진한 영화다.

영화를 보면서 도대체 아부와 열정 사이 어딘가에 똬리를 튼 ‘행복’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또 우리가 아부를 하는 자, 받는 자, 지켜보는 자 중에 어디에 속하는지 자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